유영민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기업인 출신인 유영민 신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지난 12일 오전 첫 보고를 받으며 "장황한 회의 자료를 만드느라 낭비하는 시간부터 줄이라"고 말했다. 유 장관은 전날 취임식에서도 "보고서 작업에 매몰되면 결국 '정책 고객'인 기업과 국민 목소리를 듣는 시간이 줄어든다. 모든 보고서를 한 페이지짜리로 바꾸라"고 지시했다.

미래부가 시즌2를 맞아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미래부는 창조경제 업무를 중소벤처기업부에 떼주고 과학기술 혁신과 4차산업혁명 주관 부처로 재출범한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전담 부처라는 인식으로 존속 여부조차 불투명했지만 '수퍼 부서'로 오히려 위상과 역할이 강화됐다.

차관만 3명… 4차산업혁명·과학기술 주무 부처로 급부상

미래부는 문재인 정부에서 차관을 3명이나 둔 부처로 위상이 높아졌다. 지난달 발표된 정부 조직 개편안에 따르면, 미래부 산하에는 과학기술혁신본부가 신설된다. 기존 1·2 차관과 별도로 과학기술정책을 총괄하는 차관급 조직이다. 본부장은 장관과 함께 국무회의에도 참석한다.

과기혁신본부는 연구개발(R&D) 사업에 대한 예산 심의·조정과 성과 평가까지 맡게 된다. 이는 기획재정부가 갖고 있던 예산 관련 권한 일부를 가져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각종 연구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가 기획재정부에서 미래부로 넘어온다. 그동안 과학계에선 국가 R&D 사업조차 비용 대비 효과만 따지면서 기초·원천 연구에 대한 예산 배정이 미흡하다는 불만이 많았다. 이와 함께 정부 출연 연구기관 운영비와 인건비 조정권도 갖게 된다. 정부 내에서는 "역대 어느 부처도 갖지 못했던 예산 권한에 차관 숫자도 가장 많은 막강 부처"라는 말이 나온다.

이뿐이 아니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정책 실행과 예산 집행도 미래부가 맡게 된다. 4차산업혁명위는 대통령 공약에 따라 민간인이 위원장(총리급)을 맡고, 미래부 장관과 청와대 정책실장이 공동 부위원장을 맡아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에 따른 사회·경제·산업적 변화에 대응하는 기구다. 유 장관은 취임식에서 "4차산업혁명의 핵심인 과학기술과 ICT를 가장 잘 아는 미래부에 다시 기회를 준 것"이라며 "죽다 살아났다는 절박감으로 일하자"고 말했다.

"통신 요금 인하, 과기 예산권 확보… 난관 많아"

대통령 주요 공약인 가계통신비 인하는 유 장관이 어떻게든 풀어야 하는 숙제다. 현재 스마트폰 구매 보조금 대신 선택하는 요금 할인율 상향(20%→25%), 월 2만원대의 요금제 도입, 노인층 등 취약계층 기본료 폐지가 주요 정책으로 나와 있다. 하지만 통신업계는 행정소송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요금 할인율을 정부 임의로 인상할 경우, 할인액이 스마트폰 구매 보조금보다 더 많아지는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통신업계 한 임원은 "법률 검토 결과, 정부가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나온다"며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게 부담스럽지만 손해가 커지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유 장관은 통신업체들의 반발과 관련, "대화와 설득을 위해 최고경영자든 누구든 만날 준비가 돼 있다. 그러나 법률 개정이 필요없거나 이견이 크지 않은 인하 방안은 곧바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예컨대 삼성전자·LG전자 등 스마트폰 제조업체들도 받아들이겠다고 밝힌 제조사 보조금 분리공시제나 취약계층 대상 통신 기본료 폐지 등은 조기 도입될 가능성이 크다.

과학기술 R&D 예산권을 가져오는 문제로 논란을 빚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유 장관은 공식 배포된 취임사에서 "과학기술 정책과 R&D 예산 조정 주도권을 갖고 유관 부처 협력을 이끌어 내겠다"고 강력한 의지를 보였지만 "돈을 쓰는 부처에 예산 심의와 사업 평가까지 맡길 수 없다"는 기재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통신업계의 한 고위 임원은 "통신업계에서는 신임 장관이 IT 기업에서 오랫동안 몸담기는 했지만 통신 산업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는 시각이 있다"면서 "유 장관이 4차산업혁명을 이끌 리더십과 식견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