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 기업 켐트로닉스
화학에서 전자로 확대… 센서기술로 급성장
세계적 반도체 기업과 스마트 안테나 개발

켐트로닉스는 해외 공장 재정비를 통해 생산 효율성을 높였다. 사진은 베트남 공장 모습.

"귀사와 전략적 파트너가 되고 싶습니다."
2015년 4월. 켐트로닉스 본사를 찾은 세계 1위 차량용 비메모리 반도체 회사 'NXP' 관계자는 엄격한 실사를 마친 뒤 켐트로닉스에 차량용 스마트 안테나 공동 개발을 제안했다. 켐트로닉스의 높은 기술력을 인정한 순간이었다.

켐트로닉스가 신성장사업으로 ‘자율주행 자동차용 통신(V2X)’ 모듈 개발을 추진한 지 1년 만의 성과다. 켐트로닉스가 화학과 전자를 주요 사업으로 벌여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결과다. 게다가 NXP는 올 하반기 세계 1위 모바일 반도체 회사 ‘퀄컴’에 인수·합병될 예정이어서 더욱 의미가 남다르다.

김보균(64⋅사진) 켐트로닉스 대표는 “화학과 전자사업을 기반으로 성장해 왔지만, 항상 새로운 사업 모델을 찾고자 고민해 왔다”며 “아직까진 자율주행 자동차 시스템 관련 매출은 미미하지만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 자동차·사람·교통 인프라 연결
켐트로닉스는 현재 NXP와 자율주행 자동차용 통신(V2X) 모듈을 적용한 스마트 안테나를 개발 중이다. AM·FM 라디오, LTE 통신, GPS 등 차량에 적용할 수 있는 여러 무선통신을 한 번에 지원한다는 목표다. 기존 자동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어 지느러미 모양으로 모듈화에 성공하면 여러 안테나 부품과 전선을 통합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차량 무게도 25kg쯤 줄일 수 있다.

스마트 안테나에 적용되는 켐트로닉스 모듈 기술의 핵심은 상호 간 통신 기능이다. 자동차와 사람(휴대전화), 자동차, 교통 인프라가 하나의 네트워크 속에서 유기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본 원리는 1km 내에서 실시간으로 차량 간 통신하며 추돌 사고를 사전에 막는 것이다. 교통정보도 주고받으며 도로 흐름을 원활하게 유지하는 기능도 한다.

전 세계적으로 4개 업체만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생산할 수 있는데, 국내 업체 중에는 켐트로닉스가 유일하다.

켐트로닉스가 세계 1위 차량용 비메모리 반도체 회사 NXP와 공동 개발한 ‘스마트 안테나’.

이 회사는 이를 위해 2014년 8월 ICT연구소를 설립하며 화학에서 전자로, 전자 사업에서 자율주행 자동차 시스템 개발로 사업영역을 과감하게 바꿨다. 이미 국내에선 자율주행 자동차용 통신(V2X) 시범 사업자로서 단말기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독일에서 이 기술을 도입한 트럭 간 동시 주행을 성공리에 마쳤다. 지난 6월엔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 주변 1.5km 도로에서 시연에 성공하며 상용화에 대한 가능성을 높였다. 김보균 대표는 “자율주행 자동차 사업의 전망이 좋은 만큼 올해는 턴어라운드를 넘어 높은 성장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오는 2020년 글로벌 자율주행 자동차용 통신 시장 규모는 약 7조원 정도로 예상된다. 차량 대수로는 2380만대로 2025년엔 4350만대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미국에선 오는 2023년까지 미국 내 판매되는 모든 승용차에 자율주행 자동차용 통신 기능을 장착하도록 법제화가 진행 중이다.

켐트로닉스는 1983년 서울 양재동에 설립한 ‘신영화학’으로부터 출발했다. 주로 화학 원자재를 유통하다가 제조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2000년에는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사명을 켐트로닉스로 바꾸고 전자 사업에 뛰어 들었다. 이미 군용 탱크의 연료감지 센서를 납품하고 있던 터였다.

2005년에는 감지 센서 기술을 응용한 가전용 터치센서 칩을 개발했다. TV, 모니터, 세탁기, 정수기 등 가전제품에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국내 스위치 관련 터치센서 모듈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년 후 코스닥 시장에 진입했고, 회사 매출 비중은 화학과 전자 사업이 절반씩 차지했다. 화학 유통사업 25년 만에 전자 사업에서도 입지를 구축한 것이다. 다시 화학 분야에서 성장의 기회가 왔다. 세계적으로 휴대전화 시장이 커지면서 유리 식각 공정 분야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덕분이다.

지난 2007년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디스플레이 패널의 유리를 얇게 만드는 공정에 필요한 화학제품인 ‘식각액’을 자체 개발했다. 식각 공정은 휴대전화의 해상도, 두께, 무게 등을 좌우하는 핵심 기술 중 하나다.

식각 공정(Thin Glass) 관련 매출은 2013년 회사 전체 매출(3148억원)의 20%인 615억원에 달했다. 켐트로닉스는 초박형(0.2mm) 식각 공정 기술을 보유할 정도로 기술 경쟁력이 우수하다.

◆ 휴대전화 무선 충전기 시장 성장 기대
켐트로닉스를 바라보는 우려의 시각도 있다. 2013년 3148억원에 달했던 매출이 2014년 2787억원, 2015년 2656억원, 2016년 2461억원으로 감소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산업이 2014년부터 정체를 보이며 주문이 대폭 감소한 것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식각 공정 설비에 추가로 투자한 것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켐트로닉스는 올해 큰 폭의 매출 상승을 기대하고 있다. 2008년 시작한 무선 충전 소재 및 모듈 사업은 올 하반기 애플이 아이폰에 무선충전 기능을 적용할 경우 성장 가능성이 크다.

김보균 대표는 “애플이 차기 아이폰에 무선충전 기술을 넣으면 향후 새 자동차 모델 대부분은 무선 충전기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 PLUS POINT
김보균 켐트로닉스 대표
"화학·전자 사업으로 회사 발전…꾸준히 신성장동력 발굴할 것"
김보균 켐트로닉스 대표는 승부사다. 회사 주력사업이 가장 잘나갈 때 또 다른 사업을 구상했다. 치열하게 공부하고, 비즈니스 트렌드를 예측하며 철저하게 분석했다. 회사가 어려울 때에도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했다. 켐트로닉스가 설립 이후 34년간 지속적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물론 우여곡절도 적지 않았다. 1997년 IMF 당시에는 회사가 부도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김 대표는 주로 거래하던 은행조차 문을 닫아 현금 조달이 불가능해지자 한 대기업을 찾아가 돈을 빌린 일화로 유명하다. 그는 “40만달러만 빌려 달라. 갚지 못하면 사업을 통째로 넘기겠다”고 제안했다.

회사를 살리고 나니 경쟁 업체들이 줄줄이 파산하며 다시 기회가 왔다. 대기업으로부터 안정적인 납품 제안이 들어왔고, 빌린 돈을 갚고 재기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화학 제조 및 유통 사업은 날개를 달았다.

2007년에는 식각액을 자체 개발하며 사업은 전환기를 맞았다. 휴대전화, 노트북, 모니터에 들어가는 초박형 유리를 생산하는 데 필수적이어서 매출은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터치센서 모듈, 무선 충전기 모듈 분야 국내 점유율도 1위다. 김 대표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자율주행 자동차용 통신(V2X) 시장에 도전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