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공약인 ‘한국해양선박금융공사(가칭)’ 설립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금융권과 조선·해양 업계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조선·해양산업의 경기 회복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정부 기구를 설립해 지원하는 것은 형평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또 관련 부처 간의 의견 조율도 쉽지 않은 상황에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위반 문제까지 겹쳐 공사 설립에 난항이 예상된다.

7일 정부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한국선박해양, 해양금융종합센터, 한국해양보증보험, 캠코선박운용 등 해양금융 지원기관을 한국해양선박금융공사로 통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최근 기획재정부와 해양수산부 등 관계부처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공사 설립에 대한 논의에 착수했다”며 “공사의 기능과 설립형태, 자기자본, 자산규모 등을 놓고 의견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해운·조선 금융지원 업무는 네 기관이 나눠 맡고 있다. 박근혜 정부 때 설립한 한국선박해양은 해운사로부터 선박을 사들인 뒤 이를 재임대(용선)해주는 역할을 한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캠코(자산관리공사)가 공동 출자했다. 산은과 수은, 무역보험공사가 함께 세운 해양금융종합센터는 선박금융 지원 역할을 한다. 캠코 자회사인 캠코선박금융과 한국해양보증보험도 선박금융을 취급한다.

정부는 우선 흩어진 해운·조선 금융지원 기관을 통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중복 업무를 없애고 해운·조선 전문성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해양선박금융공사 설립에 난항이 예상된다. 우선 산업계의 반발이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조선·해운만을 위한 별도 지원 기구를 설립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전망이 다소 갈리기는 하지만 조선·해운산업 경기 회복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 ‘밑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것이다. 또 이번 해양선박금융공사 설립이 부산·울산·경남(부울경) 지역 민심을 얻기 위한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대상선의 컨테이너선

한 중견 제조업체 임원은 “부울경에 조선·해양업체가 집중돼 있다보니 조선·해양 경기 침체가 지역 경제의 직격탄이 됐다”며 “문재인 정부가 해양선박금융공사를 공약한 것도 지역 민심을 잡기를 위한 포퓰리즘 정책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해운·조선 외에도 제조업체들이 모두 힘든 상황”이라며 “정부가 공사까지 설립해 조선·해운산업을 지원하는 것은 형평성에서 어긋나는 정책 아닌가”라고 했다.

지난 박근혜 정부 때도 제기됐던 ‘WTO 협정 위반’ 문제도 남아 있다. WTO는 제조업에 대한 정부의 직접적인 금융 지원을 제한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도 선박금융공사 설립을 추진했지만 WTO 보조금 협정 위반을 우려해 해양금융종합센터를 신설했다.

금융위는 WTO 협정 위반을 피하기 위해 해양선박금융공사를 공기업이 아닌 주식회사 형태로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주식회사 형태로 해양선박금융공사를 설립해도 금융공기업이 출자하는 형태가 되기 때문에 결국 정부의 우회 지원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정부 측에서는 선박금융공사를 설립한다고 해서 반드시 WTO에 위배되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정부 관계자는 “대출금리를 조달 금리에 비해 싸게 주거나 담보물 없이 저금리로 대출하는 등 특정 산업에 대한 정부의 특혜 지원이 명백할 경우는 문제가 된다”며 “정부 기관도 시장 원리에 맞게 금융 지원을 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성복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원은 “조선·해운산업의 금융지원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에 민간 금융사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