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DB

정부가 개통한지 7개월 남짓된 수서고속철도(SRT) 운영사 SR을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통합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철도 민영화 우려를 잠재우고 코레일의 적자를 줄여 공공성을 강화하겠다는 게 통합 검토의 배경이다. SR은 경쟁을 통한 국민 편익 증대를 외면한, 때 이른 처사라며 반발한다. 코레일과 SR 간 이견이 큰 3대 쟁점을 짚어본다.

◆ ‘존재의 이유’ 팽팽히 맞서는 코레일과 SR

① 코레일 수익 감소는 SRT탓일까

코레일은 지난해 12월 SRT 개통 후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공공기관경영정보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코레일은 지난 2014년 1001억원, 2015년 1136억원, 2016년 1216억원의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했다. 코레일 관계자는 “올해 1분기 478억원 상당의 영업이익 적자로 돌아섰다”며 “연말까지 최대 2000억원 규모의 적자가 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SRT 개통으로 인해 알짜노선 KTX 수송량이 줄어들어 적자가 생기고 있다는게 코레일의 입장이다. 코레일은 고속철도에서 낸 흑자로 일반철도 적자를 메꾸고 있다. 적자 누적은 공공부문 재정 악화로 이어져 철도 공공성 확보에 차질을 줄 수도 있다. 자칫 고속철도는 물론 일반철도를 이용하는 국민들의 요금인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SR의 입장은 다르다. SR은 “SRT 분리운영으로 인한 코레일의 연간 매출액 감소 예상액은 1591억원”이라며 “SR이 열차임대료 등의 명목으로 1100억원 이상을 코레일에 지급할 예정인데다가 분리로 코레일의 운영원가 710억원이 절감될 전망이기 때문에 매출 손실은 대부분 상쇄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SR도입 후 실제로 어느 정도의 KTX고객이 SRT로 이동했는지, SRT 신설로 새로 고속철도를 이용하기 시작한 승객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야만 누구의 주장이 맞는지를 가릴 수 있다고 설명한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양측의 주장을 모두 검토해보고 결론을 내리겠다”고 했다.

아울러 SR은 코레일보다 매출액 대비 더 많은 선로 사용료를 철도시설공단에 납부하고 있기 때문에 철도부채 해소와 철도 재정 건전성에도 더 기여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현재 SR은 철도시설사용료로 철도시설공단에 매출액의 50%를 내고 있다. 이는 코레일이 내는 매출액의 34%보다 16%포인트가 높은 수치다. 다만 SRT는 전국을 누비는 KTX에 비해 적은 선로를 이용하고 운행 횟수도 적어 절대적인 금액은 코레일이 많다.

② 코레일의 서비스 개선은 경쟁과 무관?

코레일은 최근 객실 편의시설과 연계 교통 등에 투자를 늘렸다. 코레일은 올해 초 KTX 객실에 전원콘센트를 대폭 확충했다. 지난해 12월 개통한 SRT에는 객실에 전원콘센트가 구비된 상태였다. 신형 SRT가 등장하자 독점으로 운영되던 고속철도가 경쟁을 통해 소비자 편익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선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코레일 측은 SRT 운행과 KTX 편의시설 확충은 상관이 없다는 입장이다. 전원콘센트 유무는 신형 열차와 구형 열차의 차이일 뿐이었지 투자 여부와 무관하다는 것이다. 또 신규 전원콘센트 확충은 SRT 출범 전인 지난해 5월 홍순만 코레일 사장이 고양 차량기지에서 구형 KTX 객실 내부 전력 배선을 개선해 설치하는 방안을 찾아내 시행했다는 게 코레일의 설명이다.

코레일은 최근 ‘광명역~사당역 KTX셔틀버스’ 시스템도 구축했다. 그동안 강남권 고객이 용산역이나 서울역으로 가야 하는 불편을 겪었는데 이를 개선하는 데 투자한 것이다. 역시 강남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SRT가 나타나자 서비스가 개선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코레일은 지난 2004년부터 꾸준히 제기된 광명역 접근성 개선을 위한 연계교통 구축의 일환이라고 설명한다. 원래 계획대로 시행한 것이 SR과의 경쟁 강화의 산물처럼 비춰졌다는 것이다.

코레일 수익감소의 또 다른 요인으로 꼽히는 마일리지 확대에 대해서도 양사의 의견이 갈린다. 마일리지 지급으로 소비자 편익이 증대했는데 SR은 경쟁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코레일은 당초 계획에 포함돼 있던 사안이라고 맞선다. 코레일 관계자는 “코레일이 SR의 최대주주인 상황에서 자회사와 경쟁할 필요가 있겠냐”고 말했다.

③ KTX가 했으면 더 좋아졌을거라는데

SRT개통으로 수도권 남부지역 주민들의 교통 편의가 확대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는 새로운 선로개통에 따른 효과일 뿐 SRT 신설과는 무관하다는게 코레일의 입장이다. 수서~평택 간 새로운 철도노선이 건설됨에 따라 수서, 동탄, 지제역에 고속철도가 새로 운행된 결과일 뿐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코레일이 신설 구간을 운영했다면 고객 편의가 더 늘어날 수 있었다고 코레일은 주장한다. 현재 서울에서 부산과 목포로만 운행되는 SRT와는 달리 여수, 포항, 마산 등 기존선에도 운행되는 KTX가 수도권 남부에서 개통됐다면 보다 많은 서울 강남권의 사람들이 고속철도를 이용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에 대해 SR은 이미 선로가 포화 상태라 추가로 고속열차를 배치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SRT는 현재 경부선 40회 호남선 20회 등 하루 60회의 하행선을 운영한다. 선로가 포화상태라 전라선 등을 증설하면 다른 지역의 열차 운행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SR 관계자는 “전라선에 4회를 운행하려면 호남선을 4회를 줄여야 한다”면서 “처음부터 수서고속철도를 KTX가 운행했다고 하더라도 결국 전국적으로 보면 운영노선이 적어지는 곳이 생겼을 것”이라고 했다.

◆ 전문가들 “일정 기간 운영하고 제대로 따져봐야”

전문가들은 철도 구조개편 방향을 먼저 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 코레일과 SR의 통합 논의가 성급하다는 의견이 많다. 최진석 한국교통연구원 철도교통본부장은 “정부의 철도 구조개편의 방향이 소비자 편익을 최대화하는 쪽이라면 SR을 유지해야하고, 한정된 국가 자산을 효율적으로 쓰는 쪽이라면 코레일과 통합하는게 좋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만 일본처럼 장거리 이동의 핵심 수단이 고속철도가 되려면 그 시발점인 SRT 도입을 통한 경쟁체계 구축의 긍정적인 효과는 분명해 보인다”며 “국토가 좁아 한 개의 고속철도 회사면 충분하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앞서 정부가 ‘흑자는 기대하지 말라’던 고속철도가 연간 5000억~6000억원의 순익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이진용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한국소비자학회장)는 “정부가 정치권력의 이동에 따라 너무 많은 것을 급하게 바꾸려는게 문제”라며 “SR은 비교적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은 이를 단정할 수 있는 단계조차 아니다”고 말했다. 이장호 한국교통대 교수도 “SR을 코레일에서 분리했기 때문에 코레일의 적자가 늘어났다면, 정확히 어느 정도 규모인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부터 이뤄져야 한다”며 “정부가 성급히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