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은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겨졌다. 침체된 유통업계에선 면세점이 유일하게 안정적 성장과 수익을 모두 가져갈 수 있는 돌파구로 인식됐다. 그러나 지금은 사업자 간의 과열 경쟁과 시장 포화, 관광객 감소, 면세 사업자에 대한 규제 등으로 성장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면세점 업계에선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에 따른 매출 타격이 심각한 만큼, 한시적으로라도 공항 면세점 등에 대한 임대료 부담을 줄이고 특허 수수료 인상 폭도 낮춰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인천공항 등 공항에 위치한 면세점 22곳은 지난해 모두 적자를 기록했다.

과하게 높아진 임대료…공항 면세점 22곳 모두 적자

롯데, 신라 등 면세점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공항면세점의 임대료가 너무 비싸다”고 지적한다. 그나마 면세점 업체들은 시내 면세점에서 돈을 벌어 공항 면세점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만회해 왔는데, 시내 면세점마저 경쟁 격화에다 유커(중국 관광객) 감소로 손실이 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2015년 인천국제공항공사가 3기(2015년~2020년) 면세점 사업 운영자를 선정했을 때 롯데ᐧ신라ᐧ신세계 등 대기업들은 치열한 입찰 경쟁을 벌였다. 과열 경쟁의 결과로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장의 임대료도 치솟았다. 인천공항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인천공항 내 면세점 사업자들이 낸 임대료는 총 8656억원에 달했다. 사업 규모가 가장 큰 롯데와 신라는 연간 매출의 40% 수준인 4518억원, 2639억원을 각각 임대료로 지급했다. 신세계는 매출의 37%인 742억원를 냈다.

이달 3일 면세사업 특허권을 반납한 한화갤러리아 제주공항 면세점도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사업을 포기한 사례다. 매월 내야 하는 임대료가 약 21억원인데, 관광객 급감 이후 올 4월과 5월의 월간 매출액은 17억원 안팎에 그쳤다.

인천공항 면세점 전경

시내 면세점은 각자 매입하거나 임대한 건물에서 영업하지만, 공항 면세점은 매년 매출의 40%에 육박하는 돈을 임대료로 내야 한다. 임대료가 비싸도 공항에 들어가는 이유는 공항면세점이 일종의 광고판 역할을 해 전세계 여행객을 대상으로 홍보할 창구가 되기 때문이다. 공항에선 큰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브랜드를 널리 알린다는 의미에서 공항 면세점에 진출하고 실제 수익은 시내면세점에서 더 많이 거두기 위한 전략이었다.

내년부터 크게 오르는 면세점 특허수수료, 많게는 10배까지 증가

면세점 업계에선 특허수수료나 강제휴무 개정안 같은 규제를 완화하고 면세점을 국가전략 산업으로 키울 수 있게 국가가 지원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면세점을 포함해 월 1회 및 추석, 설날에 강제 휴무를 의무화하고 있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한 국내 면세점 관계자는 “면세 소비자의 70~80%가 외국인이고 수출 산업이나 다름이 없는데 일반 대형마트와 동일하게 규제해선 안된다”고 했다.

면세 사업자들이 매년 내는 면세점 특허수수료도 부담이다. 올해까지는 점포당 매출의 0.05%를 특허수수료로 냈지만, 내년부턴 점포의 매출 규모에 따라 수수료가 많게는 10배까지 불어난다.

인천국제공항 전경

기획재정부와 관세청은 올 2월 관세법 시행규칙을 개정하고 면세점 특허수수료율을 연 0.05%에서 연 0.1%~1%로 올렸다. 점포의 연간 매출이 1조원을 넘는 구간에 대해선 1%의 수수료를 물리고, 2000억원 이상 1조원 미만은 0.5%, 2000억원 이하는 0.1%를 부과하기로 했다. 면세업계에선 특허수수료 인상이 ‘사드 사태’로 인한 관광객 감소를 고려하지 않았던 정책인 만큼, 특허수수료를 감면해줘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그러나 면세점 사업자에 부과되는 특허수수료는 인하될 가능성이 낮아, 올해 면세점 업체들의 부담은 커질 수 밖에 없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작은 점포의 경우엔 수수료가 2배, 큰 면세점은 많으면 8~9배까지 증가하는 것"이라면서도 "그렇다고 해도 (면세사업자의) 전체 영업이익률에 미치는 수준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에 (수수료를) 인하할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규제 완화하고 임대료 한시적으로 낮추는 방안 검토해야

임대료 과잉 인상 문제를 해결하려면 현행 5년으로 한정된 면세사업 특허제도가 과거처럼 10년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3년 관세법 개정으로 면세점 특허기간이 10년에서 5년으로 줄었다. 이 때문에 면세점 사업자들은 5년마다 특허권을 취득하기 위해 입찰 경쟁을 벌여야 하고, 이때마다 특허권을 낙찰받기 위해 높은 입찰가를 써내야 한다.

이와 더불어 면세점 업계에선 지나치게 임대료에 의존하는 공항공사의 수익 구조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3기 면세점 사업자 입찰이 시작된 2015년엔 인천공항공사 전체 수익 중 항공수익은 36%에 불과했고, 임대료 등 비항공수익은 65%에 달했다.

국내 한 면세점 관계자는 “여객 사업 등 항공 부문을 통해 수익을 올려야 하는 공항이 상업시설 수익에 치중하기 때문에 면세점 임대료가 최근 몇년간 비싸졌다”며 “공항 밥값이나 환전율이 비싼 것도 같은 이유다. 공항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에 부담이 전가될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현재 면세점 업계는 공항 사업장에 대한 한시적 임대료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인천공항공사는 지난 2009년에도 금융위기 등의 이유로 면세점 임대료를 인하한 적이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시적(2009년 3월~2010년 12월)으로 면세점 임대료를 낮췄고 메르스(2015년) 사태로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기자 항공사 착륙료를 면제해준 적이 있다.

김도열 한국면세점협회 이사장은 “면세산업은 사업 특성상 ‘규모의 경제’를 갖춰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성장하는 단계에 있는 기업을 과하게 규제해선 안된다”며 “면세산업을 ‘특혜’산업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보기 보다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