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바라본 고리 원전 1호기.

이미 탈(脫)원전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다른 나라에서도 이에 대한 찬반 여론은 아직 들끓고 있다. 독일 등 탈원전의 길에 먼저 들어선 국가들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데까지 길게는 수십년이 걸렸다.

◆ 전세계 원전 447기·건설 계획 164기...일부 국가는 탈원전 선언

30일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원전은 올해 3월 초 기준 전세계 40개국에서 총 447기가 운영되고 있다. 미국이 가장 많은 99기가 가동되고 있고, 프랑스가 58기, 일본 42기, 중국 36기, 러시아 35기, 한국 25기, 인도 22기, 캐나다 19기 등 순으로 원전이 가동되고 있다.

현재 건설이 진행되고 있는 원전은 전세계에 총 59기이다. 중국이 21기를 건설하고 있고, 러시아가 7기, 인도가 5기, 미국과 아랍에미리트(UAE)가 각각 4기, 한국이 3기, 일본과 슬로바키아, 벨로루시가 각각 2기, 프랑스가 1기를 건설하고 있다. 핀란드와 브라질, 아르헨티나도 각 1기씩 건설중이다.

현재 원전을 건설하고 있는 국가들 중 상당수 국가는 원전 확대 정책을 펼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164기의 원전이 건설될 예정인데, 중국은 특히 신규 원전 건설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올해 5월 기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40기의 원전을 더 지을 계획이다.

러시아도 2030년까지 원전 발전 비중 확대 방침에 따라 25기를 더 지을 예정이다. 러시아는 전체 전력 생산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을 현재 25% 수준에서 30%로 높일 계획이다. 인도는 아시아에서 원전 확대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인도 정부는 20기의 원전을 건설해 차세대 원전 기술까지 선점하려는 계획이다. 오는 2030년까지는1500억달러(약 170조원)를 투자해 최대 30기의 원전을 건설하고, 이 원전을 통해 2050년까지 전체 전력의 25%까지를 충당한다는 방침이다.

일부 국가들은 원전을 추가로 지을 계획이 없지만 원전 가동률을 높여 원전을 적극 활용하는 정책을 펴기도 한다. 영국은 섬나라라는 지리적 여건을 극복하고 에너지 안보를 키운다는 차원에서 친원전 정책을 펴고 있다.

영국은 현재 16기의 원전을 운영하고 있는데, 앞으로 20년 동안 노후 원전을 단계적으로 폐쇄하고 2030년까지 신규 원전으로 대체할 방침이다. 체르노빌 사건을 겪었던 우크라이나도 2012년 가동 원전 15기의 수명을 2030년까지 연장해서 운용 중이다. 스웨덴은 신규 원전 건설 금지 정책을 최근 철회했다.

2017년 3월 1일 기준 전세계 원전 운영 및 건설 현황

반면 원전 폐지로 방향을 잡은 국가는 독일과 벨기에, 스위스, 대만 등 4개 국가가 있다. 이들 국가들은 현재 가동중인 원전을 폐쇄, 원전 자체를 줄일 계획이다.

전체 에너지의 36.4%를 원전에서 얻는 스위스는 1984년부터 네 차례 국민투표를 통해 원전 중단을 결정하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나 지난 5월 58.2%의 찬성으로 원전 중단이 결정돼 5기의 원전을 폐쇄하기로 했다. 33년 만에 이뤄낸 결과다. 스위스 정부는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원전을 대체하겠다는 방침이다. 전력의 55%를 원전에 의존하고 있는 벨기에는 2025년까지 원전 7기를 모두 폐쇄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 정부 탈원전 롤모델 대만에서도 찬반 논쟁 불붙어

찬반논쟁이 뜨거운 국가도 있다. 대만은 지난해 5월 차이잉원 총통이 취임한 이후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처음으로 ‘탈원전’을 선언했다. 지난 1월 대만 입법원(의회)는 2025년 탈원전을 목표로 하는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가결시켰다. 대만에는 3개 원자력발전소에서 6기의 원자로를 가동하고 있었는데 이 중 1기만 남기고 단계적으로 가동을 중지했다.

문제는 이달 초에 발생했다. 기온이 35도를 넘나드는 기습적인 더위가 대만을 덮치면서 전력예비율이 3.7%까지 떨어져 전력 수급 경고가 발령됐다. 대만전력공사는 수력발전 가동률을 높이고 비상 발전기를 가동시켰다. 이어 본격적인 여름이 찾아와 전력 수요가 늘어날 것에 대비해 대만 원자력위원회는 지난 9일과 12일 가동을 중지했던 원전 2기의 재가동을 각각 승인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대만 정부는 ▲제4핵발전소(7,8호기)는 건설을 중단하고 폐기할 것 ▲제1핵발전소(1,2호기)는 각각 2018년과 2019년에 운영 마감 ▲제2핵발전소(3,4호기)는 각각 2021년과 2023년 운영 마감 ▲제3핵발전소(5,6호기)는 2024과 2025년 운영마감 등을 탈원전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번에 재가동된 2기의 원전은 사용 기한이 남아 정비를 마친 뒤 재가동 되기로 예정됐던 원전이다. 각각 2021년과 2025년에 폐기 예정되었기 때문에 재가동은 탈원전 정책과는 무관하다.

대만의 원전 운영 현황.

홍선한 대만녹색공민행동연맹 사무부총장은 "6월에 핵규제기구에서 2기 가동을 결정한 것은 핵발전소의 운영기한 내에 있는 재가동일 뿐인데, 수리와 부품교체 공사 후에 재가동을 하는 것을 정부의 비핵정책의 실패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만 정부의 원전 재가동으로 인해 대만 내 탈원전 논쟁에 불을 지폈다. 대만 국민당의 싱크탱크인 국가정책연구재단이 최근 대만의 성인남녀 1070명을 대상으로 원전의 재가동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7.0%는 지지한다고 밝혔고, 32.5%는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발생하는 전력난을 참을 수 있다는 응답자는 48.5%, 참을 수 없다는 응답자는 46.5%로 비등했다.

전체 응답자의 53.9%는 모든 원전의 가동을 중단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33.0%는 전력부족의 위험이 있더라도 원전폐기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탈원전 정책에 대한 여론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대만 내에서도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에 대해선 응답자 중 52.6%가 ‘더 내기를 원치 않는다’고 답했다.

◆ 탈핵 공론화에만 25년 걸린 독일

원전을 보유한 전 세계 나라 가운데 독일은 ‘탈원전’에 가장 앞장서고 있다. 독일에서는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발생하자 원전 폐지 논의가 시작됐다. 이후 1998년 사민·녹색당이 집권에 성공해 연립정부가 들어서면서 2000년 신규 원전 건설을 금지하는 ‘원자력 합의’를 이끌어냈다. 2002년에는 원자력법을 개정했고, 2011년에는 독일 내 원전 17기의 가동을 모두 멈추겠다는 ‘탈핵’ 선언을 했다.

원전 폐지 논의부터 탈핵 선언까지 약 25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탈핵 정책을 독일 정부가 처음 내놨을 때 독일 내에서도 원전 폐지 찬반 논란이 일었고, 독일 정부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탈핵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했다. 원전 폐지시 일어날 수 있는 변화에 대해 국민들과 토론하고 논쟁했다. 특히 신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을 높이는 과정에서 전기요금 상승은 불가피하다는 점을 국민들이 받아들이도록 정부가 나서 설득했다.

특히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를 만들었다. 위원회엔 시민사회와 학계, 성직자 등 각계 각층 대표 17명이 참여했다. 핵 관련 공학자나 관계자들은 배제해 이권이 개입될 가능성을 차단했다. 그 결과 독일 국민들은 현재 약간 더 비싸더라도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 후손에 더 나은 미래와 환경을 건네주는 것이고, 최종적으로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해 지구 온난화를 야기하는 화력발전과 원자력 폐기물 보관과 폐로 문제 등으로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갈 수 있는 원자력 발전보다 신재생에너지가 더 저렴하다는 것에 동의했다.

그러나 순조롭게만 보이던 독일의 탈핵 선로에 뜻하지 않은 복병이 나타난다. 지난 1월 말 독일에 흐리고 바람이 없는 날이 길게 이어지면서 태양광·풍력 발전량이 평소 6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고, ‘블랙아웃(대정전)’ 직전의 아찔한 상황이 발생했다. 독일은 남아있던 하나의 예비 발전소를 가동시켜 위기를 넘겼다.

이후 독일은 기상조건이 맞지 않는 상황에 대비해 태양력과 풍력의 비율을 늘리는 속도를 낮추고 현재 수준인 40~45%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에너지 정책을 수정하자는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국민적 합의가 두텁게 자리 잡은 독일에서도 실제 에너지 수급에 문제가 발생하면서 에너지 정책의 속도를 늦추자는 논의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