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대전광역시 서구에 있는 중소기업청에서 긴급 간부 회의가 열렸다. 주영섭 청장이 이날 외부 행사 일정을 갑자기 취소하고 과장 이상의 전(全) 간부를 소집한 것이다. 주 청장은 "현재 국·과별 업무에 소홀하지 말고 긴장감을 갖고 하반기 각종 정책을 점검해 달라"고 했다. 중소벤처기업부로 승격을 앞둔 상황에서 조직을 이끌 장관 선임이 계속 늦어지자 전임 정부에서 임명된 주 청장이 분위기 다잡기에 나선 것이다. 주 청장은 작년 1월부터 중소기업청을 이끌고 있다. 중기청의 한 관료는 "이달 내에 하반기에 추진할 주요 정책을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주 청장이 더 꼼꼼하게 현안을 챙겨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장관급 부처로 승격을 앞둔 중소기업청은 문재인 대통령의 일자리 창출 정책을 이끌 핵심 부서로 꼽힌다. 하지만 장관 인선과 조직 개편 작업이 늦어지면서 내부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새 정부는 현(現) 중기청에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산업 지원, 미래부의 벤처 지원, 금융위의 기술보증기금관리 업무 등을 이관해 중소벤처기업부(部)로 승격할 계획이지만, 아직 뚜렷한 청사진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중기청 안팎에서는 "각 부처에서 업무를 인수받아 기존 정책과 융합시키는 데에도 상당한 진통이 불가피할 것"이라면서 "하지만 새 정부 출범 후 두 달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어 직원들이 답답해한다"고 말했다.

◇부(部) 승격 늦어지고 초대 장관도 오리무중

중기청 안팎에서는 박영선 의원, 윤효중 의원, 홍종학 전 의원, 이상직 전 의원 등 전·현직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중소벤처부 장관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신설 부처인 만큼 새 정부의 국정 철학을 이해하는 정치인이 와야 조직이 제대로 방향을 잡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장관 인사가 앞으로 한 달 이상 걸릴 가능성도 적지 않다. 청와대가 선(先) 부처 신설, 후(後) 장관 인사의 원칙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조직 개편안이 통과되기 전에 장관을 내정하면 정치권에서 잡음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 조직 개편은 장관 청문회 등 주요 현안에 밀려 이달 말로 끝나는 임시 국회 회기 내 통과는 사실상 물 건너간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중기청 직원들 사이에서는 '타 부처 관료들이 중소벤처부 핵심 보직을 차지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돌고 있다. 중소벤처부는 부 승격과 함께 차관과 실장(3명) 등 고위직 4자리가 새로 생긴다. 중기청 관계자는 "다른 부처에서 중기청 내부에 차관·실장을 맡을 만한 인력풀이 취약하다는 이야기를 퍼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소상공인연합회와 전국유통상인연합회 관계자들이 지난 2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신설되는 중소벤처기업부 내 소상공인 담당 부서를 확대할 것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신설을 담은 정부 조직 개편안의 국회 통과가 지연되면서 중소기업청 조직이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3조원대 추경 예산 늦어져… 돈 없어 소상공인 지원 사업 난항

중소벤처부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소상공인·중소기업계에서는 벌써부터 각종 요구를 쏟아내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지난 21일 국회 앞에서 "신설 중기부가 벤처·창업 조직만 강화하고 소상공인 지원 조직은 오히려 약화하고 있다"며 집회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중기청은 이런 기대치에 맞춘 신규 정책을 고민할 겨를이 없다. 기존 사업마저도 중단될 위기다. 대표적으로 소상공인 지원 사업은 올 상반기 소상공인들의 지원 요청이 급증하면서 벌써 전체 예산의 80% 가까이 소진했다. 이 지원 사업은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에게 2%대 무담보 저리 융자를 해주는 생계형 지원 사업으로, 3조5000억원의 추경 예산 확보가 늦어질 경우 지원 사업이 아예 중단될 수도 있다. 중기청 관계자는 "내수 침체가 예상보다 심각해 소상공인들의 신청이 폭주했다"며 "현재 추세대로라면 다음 달이면 관련 예산이 '제로'가 된다"고 말했다. 한국여성경제인협회 한무경 회장은 "신임 장관, 부처 신설, 추경 확보 등 한꺼번에 난제가 돌출하면서 중기 정책이 꼬이고 있다"면서 "중소벤처부를 이끌 리더십을 빨리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호철·양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