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95) 총괄회장이 한·일 롯데그룹의 지주회사격인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직에서 24일 물러났다. 신 총괄회장이 지난 1948년 ㈜롯데를 창업한 이후 70여년 만에 ‘신격호 시대’가 막을 내린 것이다.

신 총괄회장은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롯데제과, 호텔롯데, 롯데쇼핑 등 한국 롯데 주요 계열사 이사직에서 퇴임했다. 이사로 등재돼있는 계열사는 롯데알미늄이 유일하다. 이마저도 임기가 만료되는 오는 8월 물러날 가능성이 크다.

신 총괄회장은 1948년 도쿄에서 롯데홀딩스의 전신인 껌 회사인 ㈜롯데를 창업했다. 롯데는 이후 초콜릿, 캔디, 아이스크림, 비스킷 등을 잇달아 내놓으며 종합 제과기업으로 입지를 굳혔다. 이를 바탕으로 롯데는 1980년대 중반 롯데상사와 롯데부동산, 롯데전자공업, 롯데리아 등을 거느린 재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신 총괄회장은 일본에서 창업한 지 10년여가 지난 1959년 한국으로도 사업을 확장했다. 롯데화학공업사를 세워 껌, 캔디 등 제과류를 생산했다.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인 1967년에는 롯데제과를 설립했다. 롯데는 쥬시후레쉬, 스피아민트, 빠다쿠키 등 히트상품을 발판삼아 업역을 넓혀나갔다.

신 총괄회장은 음료·빙과 등 식품회사를 인수해 사업을 키우는 한편 관광·유통·건설·석유화학에도 진출했다. 1973년에는 서울 소공동에 지하 3층, 지상 38층 규모의 롯데호텔을 준공했다. 1974년과 1977년에는 칠성한미음료와 삼강산업을 각각 인수해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삼강(현 롯데푸드)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1979년에는 롯데호텔 옆에 롯데백화점을 열고 유통업에도 진출했다. 평화건업사(현 롯데건설)와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을 인수한 것도 이 즈음이다.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춘 롯데는 고속성장했다. 연이은 인수·합병(M&A)을 통해 국내 재계 서열 5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올해 초에는 신 총괄회장의 숙원사업이었던 롯데월드타워도 개장했다.

하지만 ‘신격호 시대’에도 균열이 생겼다. 2015년 7월 장남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경영권 분쟁을 벌이면서다.

신동빈 회장은 같은해 7월 16일 열린 일본 롯데홀딩스 정기이사회에서 대표이사 부회장에 선임돼 한·일 롯데의 ‘원톱’ 자리에 올랐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신 총괄회장을 앞세워 일본 롯데홀딩스에서 신동빈 회장을 해임하는 ‘쿠데타’를 시도했다. 하지만 신동빈 회장 등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 6명이 이를 ‘불법적 결정’이라고 규정하고 되어 신 총활회장을 대표이사 부회장에서 해임했다.

형제의 경영권 다툼으로 인해 신 총괄회장의 치부도 드러났다. 두 사람이 후계 문제를 다투는 과정에서 신 총괄회장의 정신건강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다. 법원의 성년후견인 지정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 신 총괄회장이 2010년부터 치매약을 복용해온 사실이 밝혀졌다. 정신감정을 이유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가 나흘만에 무단으로 퇴원하기도 했다. 결국 법원은 신 총괄회장의 한정후견인을 지정했다.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직 재선임안이 주총에 상정되지 않은 것도 한국 법원의 결정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신 총괄회장의 불명예 퇴진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일에 욕심을 내다 후계구도 정리 시점을 놓쳤다는 지적이다. 2011년 신동빈 당시 롯데그룹 부회장이 회장에 오르면서 신격호 회장은 ‘총괄회장’에 올랐다. 후계 구도를 정리하지 않고 ‘영원한 현역’을 자처한 것이다. 당시 롯데그룹은 “양국을 오가며 활동해온 신 회장은 총괄회장 취임 후에도 양국에서 업무보고를 받고 경영 현안을 직접 챙길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재계 관계자는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큰 성공을 거둔 신 총괄회장의 성과는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면서도 “적절한 시점에 후계 구도를 정리하지 못한 것이 말년의 추락으로 직결됐다”고 했다.

신동빈 회장의 경영권에 신동주 전 부회장이 도전하는 구도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신동빈 회장은 이날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도 승리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상정한 본인 등 4명의 이사 선임안과 신동빈 회장 등 현 경영진의 이사직 해임안이 부결됐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무한 주총’을 통한 경영권 탈환 의지를 굽히지 않으면서 롯데의 후계구도를 둘러싼 잡음이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