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고추장·간장 등 영세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주로 하는 골목 상권에 대한 대기업의 진입을 억제하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규제'가 새 정부에서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20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국정기획자문위원회와 중소기업 간 간담회에서 중소기업인들은 올해 말로 사실상 효력이 정지되는 적합업종 규제를 연장하고 법제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이개호 국정자문위 경제2분과 위원장은 "새 정부는 과거 정부보다 더 강력하게 영세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규제를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20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정책간담회에서 이한주(왼쪽부터)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경제1분과위원장, 이개호 국정기획위 경제2분과위원장,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장, 최수규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 이재한 민주당 중소기업특별위원회 위원장, 이봉승 한국귀금속가공업협동조합연합회장이 새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과 관련한 논의를 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2개의 관련 법안이 계류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당시 생계형 중소 적합 업종 법제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중소기업 적합 업종 규제는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 해소를 위한 불가피한 보호 정책이라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기업의 자율성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올해 중기 적합 업종 49개 해제

중소기업 적합 업종 규제는 1979년 23개 품목을 지정하는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에서 시작됐다. 1987년 최대 237개 품목으로 확대됐다가 '외국 기업의 국내 시장 진입을 인위적으로 제한한다'는 통상 논란이 불거지면서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폐지됐다. 이후 대기업의 중소기업 골목 상권 침해 문제가 거세지자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 정책으로 부활했다. 하지만 법적 강제력은 없고 동반성장위원회가 내놓은 적합 업종 지정 권고안에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합의하면 최종 지정이 이뤄지는 자율조정 방식이다. 동반성장위는 매년 2차례 대기업의 동반성장지수를 공개하는 식으로 합의 이행을 촉구해왔다.

이 중소기업 적합 업종 규제는 최대 6년으로 기한이 정해져 있다. 이에 따라 올해 74개 품목 중 49개가 규제에서 풀리면서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의 골목 상권 침해가 다시 재개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서도 강갑봉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은 "전국에 15만개 있던 수퍼마켓이 현재 4만개로 대폭 줄었다"며 "유통 대기업들이 무분별하게 사업을 확장한 탓"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새 정부의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위의 이개호 위원장은 "과거 정부에서 SSM(기업형 수퍼마켓) 업체의 영업 시간만 규제했다면 문재인 정부는 (여기에 더 해) 업종 규제와 품목 규제까지 하겠다"고 화답했다. 이 위원장은 간담회가 끝난 뒤 기자들에게도 "오늘 논의한 내용을 관계 부처에 통보해 정부의 의지가 하루빨리 뿌리내릴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중소기업계는 생계형 적합업종을 아예 법제화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재의 권고 형태로는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중소기업중앙회의 관계자는 "현재 적합 업종 규제는 대기업이 어겨도 강제할 아무런 수단이 없는 반쪽 짜리"라며 "명확한 법적 근거와 제재 수단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에는 올 초 이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이 계류돼 있다. 이 법안은 대기업이 정부가 정한 생계형 적합업종 사업에 진출할 경우 부담금(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최근 인사 청문회에서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겠다"며 한 목소리를 냈다.

기업 자율권의 과도한 침해 논란

하지만 중기적합 업종 규제는 기업 자율권에 대한 과도한 침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식품이나 제과 등 특정 분야에 집중하는 중견기업이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게 막는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70여년간 간장·고추장·된장 사업에만 주력해온 중견기업 샘표식품은 적합 업종 규제 탓에 오히려 주력 분야인 장류 사업을 더 키울 수 없는 모순에 빠진다는 것이다.

적합 업종 규제가 국내 대기업만 대상으로 하는 바람에 외국 기업과의 역차별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외식 시장에서 CJ의 계절밥상, 신세계의 올반 등 국내 대기업들은 점포 확장에 제한을 받는 반면, 외국계 펀드들이 인수한 치킨업체 BHC, 놀부 등은 매장을 급속히 확대했다는 것이다. 통상 마찰 문제도 거론된다. 올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 정부는 대기업의 참여를 막는 중소기업 적합 업종을 점진적으로 축소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작년 이 제도를 무역장벽으로 지목한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