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4년간 고의로 교통사고를 내 보험금 1억원 가량을 챙긴 자동차학과 대학생 17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별다른 죄의식 없이 보험사기를 저질렀다. 사소한 보험범죄는 처벌할 필요가 없다는 관용적 인식 탓이다. 이 틈을 타 보험사기는 갈수록 지능화하고 있다. 전문 브로커가 개입하는 조직형 범죄가 난무하고 있다. 조선비즈는 3회에 걸쳐 보험사기 현황과 문제점, 대안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편집자주]

지난 2014년 8월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천안삼거리 휴게소 인근. 스타렉스 승용차가 갓길에 서 있던 8톤 화물차를 들이받았다. 조수석에 타고 있던 운전자의 아내는 숨졌으나 운전자는 안전벨트를 맨 상태여서 큰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 캄보디아 출신 아내는 임신 7개월의 몸이었고 안전벨트를 매지 않아 즉사했다. 뱃속 아기도 같은 운명이 됐다.

수사 결과 남편이 아내 명의로 26건의 보험에 가입했으며 이 보험금이 98억원에 달했다. 남편이 보험금을 노리고 교통사고로 위장해 아내를 살해한 것이었다. 불운의 사고로 묻힐 뻔한 이 일은 누군가의 제보로 전모가 드러났고, 제보자는 생·손보협회로부터 역대 최고 포상금인 1억9300만원을 받았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이 이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하면서 큰 논란이 일고 있다. ‘범행동기가 분명치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병대 재판관)는 지난달 30일 남편 이모씨(47)의 상고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특별히 경제적으로 궁박한 사정도 없이 고의로 자동차 충돌사고를 일으켜 임신 7개월인 아내를 태아와 함께 살해하는 범행을 감행했다고 보려면 그 범행동기가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나야 한다"고 판단했다.

거액의 보험금을 노려 매달 보험료만 400여만원에 이를 정도로 여러 건의 보험에 들었다지만, 생활용품점을 운영하는 이씨의 월 수익이 1500만~1650만원에 이를 정도여서 보험금을 노리기에는 경제적으로 궁박하지 않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졸음운전으로는 이 사건과 같은 상황이 발생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 좀 더 과학적이고 정밀한 분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며 “그러지 않는 한 고의에 의한 교통사고라고 쉽게 속단할 수 없다”고 파기환송 이유를 밝혔다.

이씨가 사고 두달 전 30억원의 보험에 추가 가입하는 등 이상 행동을 보였고, 큰 규모의 약관대출을 통해 생활비 대부분을 보험금 대출로 쓰고 있었다는 점을 대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의 환송을 해서 당황스럽다”며 “예컨대 월 보험료 400만원 중 300만원을 약관대출 받아 생활비로 쓰는 식이었는데 이를 경제력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사건은 2013년 ’낙지살인사건‘이라 불린 보험사기 사건과 닮았다. 여자친구를 살해한 뒤 낙지를 먹다 질식사한 것처럼 속여 보험금을 타낸 혐의로 남자친구가 기소됐지만, 애초에 사고사로 종결됐고 여자친구의 시신이 사망 이틀 후 화장돼 결정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됐다. 정황증거에도 대법원이 합리적인 의심이 들지 않도록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는 원칙을 채택한 것이다.

◆ 갈수록 흉악해지는 보험사기...해마다 10%씩 증가

최근 3년간 보험사기 증가추이

2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2016년 한해동안 적발된 보험사기 금액은 7185억원으로 전년보다 9.7% 증가했다. 이는 지난해 지급된 총 보험금(39조4000만원)의 1.8%에 해당한다.

적발 액수도 늘었지만 살인 등 강력범죄를 일으키는 방식으로 보험사기 양상이 흉악해지고 있는 점이 문제다. 보험금을 노리고 살인을 저지를 때는 피보험자가 범죄로 사망한 것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자연사·재해사·자살·교통사고 등으로 위장하거나 강도를 당해 살해당한 것으로 속이기 때문에 적발이 쉽지 않다.

최근 중소기업 사장이 여직원을 거액의 종신보험에 가입시킨 후 사무실 내 물품창고로 유인해 둔기로 뒤통수를 내리쳐 살해하는 등 과거와는 보험사기 형태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보험사기 브로커의 주도로 여럿이 공모해 역할을 분담한 후 보험금을 조직적으로 타내는 범죄 조직화 현상도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채한기 생명보험협회 보험범죄방지센터장은 "예전에는 자해 같은 것이 많았지만 요즘에는 거의 없다"며 "이는 단순히 자신의 몸을 해치는 초기단계 보험사기에서 대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다치게 하는 등 완전 범죄를 위해 보험사기가 진화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번 적발되지 않은 보험사기는 또 다른 형태의 보험사기를 유발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거액의 보험금을 받으면 보험사기의 유혹을 쉽게 뿌리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기도 동두천 조직폭력배 출신 박모씨는 처, 친동생, 처남 등 세 명을 살해한 후 내연녀의 남편까지 살해하려다 지난 2012년 붙잡혔다. 그가 10여년에 걸쳐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것은 보험금 때문이다. 세명을 살해해 20억원의 보험금을 타냈고 내연녀의 남편을 교통사고로 위장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박씨는 처남을 살해한 후 보험사기를 숨기기 위해 보험금 12억원 가량을 장모 통장으로 받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 특별법 통과 8개월...민관은 보험사기와의 전쟁중

보험범죄를 막기 위해 ‘보험사기방지특별법’이 제정된 지 8개월이 지났다. 보험사기를 별도의 범죄로 구분하고 관련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있는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다른 사기죄와 동일하게 형법상 사기죄로 처벌하고 있어 보험범죄 대책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또 보험사기가 늘수록 다수의 선량한 보험계약자들이 피해를 본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도 배경이다.

특별법은 제6조에서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보험사가 보험사기가 의심되는 사건이 생길 경우 이를 관할 수사기관에 고발하거나 수사의뢰하도록 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전속고발권을 갖고 있는 것과는 달리, 보험사기로 의심될 경우 민간부문인 보험사도 고발 또는 수사의뢰하도록 규정을 뒀다.

또 보험사기행위로 보험금을 취득하거나 제3자에게 보험금을 취득하게 한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이는 형법의 사기죄보다 형량을 높여 보험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려는 목적이다.

특별법을 적용받은 보험사기 사건도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직 법 시행 기간이 짧아 기소되거나 유죄 판결을 받은 사례는 없지만 검찰에 송치된 사건이 늘고 있다고 금융당국은 설명했다.

당국 뿐 아니라 민간 보험사들도 보험사기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생·손보험협회, 각 보험사들 내부에 ‘보험사기조사 전담팀(SIU)’을 꾸리고 매주 보험사기 관련 대책회의를 진행한다. SIU엔 전직 경찰 출신들이 주로 활동하고 있다. 보험업계 SIU에 몸담고 있는 전직 경찰관만 약 500명에 달한다. 생·손보협회는 보험사기 포상금을 거는 방식의 ‘보험사기파파라치’ 제도를 도입, 지난해 3769건의 보험사기 제보가 있었고 총 17억6000만원의 포상금이 지급됐다.

진태용 한화손해보험 SIU파트장은 "최근에는 보험사기 수법들이 매우 지능화되고 있어 수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보험사 역시 글로벌 소프트웨어 회사인 SAS의 보험사기 방지프로그램을 활용하는 등 보험사기 적발기법도 첨단화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 범죄 적발해도 법원 판결·보험금 환수 난항...컨트롤타워도 부재

우여곡절끝에 특별법이 제정되긴 했으나 여전히 미흡한 부분도 많다. 앞선 캄보디아 아내 살해 사건처럼 보험사기를 적발하고 송치, 기소하더라도 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과정이 순탄치 않아서다. 특히 컨트롤타워 격인 서울중앙지검 내 정부합동보험범죄전담대책반이 임시조직이라 상설기구화 하는 것이 시급하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또 초안에서 빠진 보험금 환수제 역시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기범들에게 잘못 지급된 보험금을 선량한 보험계약자에게 돌려주려면 보험금을 환수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행법에선 이를 환수·지급할 방도가 없다. 보험사들이 별도로 민사소송을 제기해 보험금을 환수해야 한다. 최종 판결을 받아내기까지 시간도 오래걸릴 뿐더러 환수율도 6~10%에 그친다.

한 보험업계 고위 관계자는 “보험범죄 적발, 판결, 환수 과정이 어렵다보니 이를 악용한 보험사기범들은 과감히 범죄를 저지른다”며 “법을 어겨서 얻는 이득이 손실보다 크다는 판단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