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후 6시 부산 기장군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 주제어실. 고리1호기 운전 담당인 신건원 고리 원자력본부 차장이 빨간색 터빈발전 수동정지 버튼을 누르자 발전기 출력 표시창의 숫자가 '0㎿h'로 바뀌었다. 발전기 터빈이 멈추면서 전력 생산이 완전히 중단된 것이다. 이어 원자로에 제어봉을 넣으면서 오후 6시 38분에는 원자로도 정지됐다.

원전의 심장인 원자로가 멈추자 평소 300도에 달하던 고리 1호기는 빠르게 온도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18일 자정(밤 12시)이 되자 93도까지 떨어졌다. 이 순간 원전 운영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은 '영구정지' 선언을 했다. 사람으로 치면 사망선고를 내린 셈이다. 원전의 '영구정지'는 원자로가 멈춘 시점이 아니라 원자로가 물이 끓지 않는 온도까지 식어, 안정 상태에 도달한 시점이다. 이로써 국내 첫 원전인 고리 1호기는 1977년 6월 가동에 들어간 지 40년 만에 수명을 다했다. 국내 상업용 원전이 영구정지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해체 작업에 15년 걸려

고리 1호기는 1972년 착공했다. 고리 1호기 총 건설 비용은 1560억원. 경부고속도로 건설비(429억원)의 3배가 넘는 돈이 들어간 당시 최대 규모 건설 사업이었다. 1977년 6월 19일 원자로가 처음 돌아가기 시작해 1978년 4월 본격적인 상업 운전을 시작했다. 고리1호기 설비 용량은 587메가와트(㎿)로 지난 40년간 생산한 전력은 1억5526만㎿h에 달한다. 부산시 한 해 전력 사용량의 34배 규모다. 2007년 6월 설계수명 30년이 끝났지만 설비 보수 등을 통해 10년간 가동을 연장했다.

추억 속으로 사라지는 고리原電 1호기 - 18일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 1호기가 바라보이는 인근 편의시설에서 시민들이 사진을 찍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고리원전 1호기는 1977년 가동을 시작한 국내 첫 상업용 원전으로 40년 만인 18일 자정 수명을 다하고 영구정지에 들어갔다. 국내 상업용 원전이 영구정지되는 건 처음이다.

고리 1호기는 우리나라가 제조업을 육성하는 과정에서 급격히 늘어난 전력수요를 뒷받침했다. 석유나 석탄에 비해 운영상 경제적 비용이 저렴했던 고리 1호기 가동은 우리나라가 1970년대 오일쇼크를 넘어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으로 산업구조를 전환하는 과정에서 밑거름이 됐다.

고리 1호기는 수명을 끝냈지만 국내 원전 업계는 '원전 해체'라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 고리 1호기는 앞으로 15년간 사용후핵연료 냉각과 방사성 물질 제거, 구조물 해체, 부지 복원 등 폐로(廢爐) 절차를 거친다. 본격적인 해체 작업은 5년간 사용후핵연료 냉각이 끝나고 2022년 시작될 예정이다.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영구정지한 원전은 160기이지만 이 중 해체를 마친 원전은 19기에 불과하다. 원전 해체 경험이 있는 나라는 미국(15기) 독일(3기) 일본(1기) 세 나라뿐이다.

18일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본부 인근 월내마을에 ‘고리원전 정지 반대’, ‘신고리 5,6호기 건설 지지’를 주장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산업계와 지역 주민들은 대안 없는 일방적 원전 폐쇄를 반대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고리 1호기 해체 비용을 6437억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원전 해체에 들어가는 돈은 1조원이 넘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고리 1호기 해체를 계기로 한국은 최대 1000조원으로 추정되는 글로벌 원전 해체 시장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딛는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폐로의 핵심은 사용후핵연료 처리이지만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건립 방안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원전 해체 기술도 선진국의 70% 수준에 그치고 있다.

국내 원전 정책 전환점 맞아

'대한민국 1호 원전' 고리 1호기가 영구정지에 들어가면서 우리나라 원전 정책도 전환점을 맞는다. 현재 국내에서 가동 중인 원전 24기가 국내 전체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 하지만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원전 안전성 문제가 줄기차게 제기되면서 원전을 유지하는게 바람직하냐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신규 원전 전면 중단과 건설 계획 백지화, 설계수명이 다한 원전 즉각 폐쇄,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과 월성 1호기 폐쇄, 탈핵(脫核) 에너지 전환 로드맵 수립 등을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산업계는 "대안 없이 원전을 없애면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어려워진다"면서 "일방적인 원전 중단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