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가상통화 관련 시장을 지켜보는 금융당국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최근 가상통화를 탈세나 범죄나 탈세에 악용하는 사례는 늘어나고 있지만, 이에 대한 국제적인 기준은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가상통화를 화폐, 재산 등 어떤 법적 지위로 정의내려야 할지 고심하고 있다.

김연준 금융위원회 전자금융과장은 지난 13일 “가상통화에 대한 전세계적 공감대가 전혀 없어서 어떤 방식으로 규율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근 ‘당국이 가상통화 시장 과열이나 관련 범죄에 손을 놓고 있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한 답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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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지난해 말부터 “금융 당국에서 아무런 말이 없으니 부작용을 키우는 것 아니냐”면서 당국에 입장을 표명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위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및 학계·법률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금융위 주도의 ‘디지털통화 제도화 태스크포스(TF)’가 출범했지만 현재까지 별다른 결과물을 내놓지는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재 국내 거래소들은 관련 규정이 따로 없어 통신판매업자로 등록하고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금융위 실무진은 해외의 금융 당국을 접촉하며 가상통화 관련 정책을 검토하는 상황이다. 김 과장은 “미국 뉴욕주에서 가상화폐 사업자가 금융 당국에 허가를 받는 제도인 ‘비트라이선스’ 담당자, 일본 금융청, 중국 은감회 등을 만나고 왔다”면서 “해외 정책 담당자들과 의견 교환해본 결과 국내보다 더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 뉴욕주와 일본을 제외하고 전세계에서 가상화폐에 대한 규제를 정한 나라는 없다. 미국 뉴욕금융서비스국(DFS)은 2013년 비트라이선스 제도 도입 후 2년이 지나서야 비트코인 송금업체인 ‘서클 인터넷 파이낸셜’에 처음으로 비트라이선스를 내줬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자금결제법에 가상통화의 개념을 정의하고, 가상통화 거래소의 등록을 의무화했다.

금융 당국은 아직 지켜보자는 입장이지만, 이미 국내 공공·수사기관에서는 가상화폐의 경제적 가치를 인정한 모습이다. 한국자산관리공사는 지난 14일 경찰이 압수한 음란사이트 운영자의 비트코인을 공매 처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해당 사건은 수사기관이 판단한 것이고 향후 금융위 규제 방향은 아직 신중하게 바라봐야 한다”면서 “이 일과 관계 없이 가상 통화에 대해 정의를 내리지 않은 상황” 말을 아꼈다.

전문가들도 가상통화에 법적 지위를 부여할 때는 신중하게 접근해야하며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지적한다. 구태언 테크앤로 대표 변호사는 “법으로 가상통화에 대해 성급하게 정하면 향후에 국가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알 수 없으므로 정부가 현재 상황을 연구하고 지켜보고 천천히 접근하는 것이 맞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유영석 코빗 대표도 “가상화폐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것 외에 가상화폐 거래소 인가 제도를 먼저 운영한다면 시장의 안정성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 “굳이 법적 지위를 부여하느라 서두르기보다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