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한국은행 창립 67주년 기념행사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이 총재는 이 자리에서 “통화정책 완화 정도의 조정이 필요할 수 있다”며 금리 인상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014년 4월 취임 이후 처음으로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총재는 12일 한은 창립 67주년 기념사를 통해 "앞으로 경기회복세가 지속되는 등 경제상황이 뚜렷이 개선될 경우에는 통화정책 완화 정도의 조정이 필요할 수 있다"며 '금리 인상'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 총재의 발언은 그동안 미국 기준금리 인상 때마다 "(한은은) 미국 금리 인상에 기계적으로 대응하지 않겠다"고 했던 입장에서 180도 전환한 것이다.

이 총재는 한은 총재 취임이후 기준금리를 내리는 결정만 해왔다. 연 2.5%였던 기준금리가 0.25%포인트씩 5차례 인하돼 작년 6월 이후 연 1.25%에 머물고 있다. 이런 저금리 기조는 가계부채 폭증과 부동산 과열의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 총재는 이날 발언 취지에 대해 기자들이 묻자 "경기회복세가 본격화되고 빨라지면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라며 "그런 상황이 되면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우리 경제는 올해 1분기 1.1% 성장률을 기록하며 6분기 만에 0%대 성장에서 탈출했다. 한은 관계자는 이 총재의 입장이 바뀐 건 경제 상황의 변화 탓이라고 전했다. 그는 "그동안 여러 지표들이 경기회복세를 나타냈고 가계부채나 주택가격 상승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면서 "이번 주 미 연준의 금리 인상이 확실하고 앞으로도 금리 인상이나 보유채권 축소 이야기가 계속 나올 것"이라고 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상할 경우 가계부채 이자상환 부담이 커질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한은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면 금융부채가 있는 가구당 연간 이자부담이 42만원 불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순금융자산이 마이너스 상태이고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비율이 40% 이상인 '한계가구'의 연간 이자상환 부담은 83만원씩 늘게 된다. 한은이 금리를 여러 번 인상하면 가계의 이자상환 부담도 그만큼 커지게 된다.

미 연준은 오는 13~14일 기준금리를 1~1.25%로 추가 인상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오는 9월 미 연준이 전망대로 금리를 한 차례 더 높이고 한은이 현행 금리를 유지한다면, 한국 기준금리가 미국 기준금리보다 낮아지는 '금리 역전' 현상이 10년 만에 재연될 수 있다.

금리 역전이 일어나면 외국인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게 가장 큰 문제다. 한미 간 기준금리 역전은 과거에도 2차례 있었다. 1999년 7월~2001년 3월과 2005년 8월~2007년 9월이다.

첫 번째 시기엔 외국인들이 한국 주식 투자를 더 늘렸고, 두 번째 시기엔 외국인들이 투자금을 회수해 간 바 있어, 미국 금리 인상 여파가 어떻게 나타날지 단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통상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한은은 짧게는 2개월, 길게는 8개월 시차를 두고 금리를 인상하는 경향을 보였다. 국제통화기금(IMF)의 마커스 로들러오 아시아·태평양 담당 부국장은 지난 4월 언론 브리핑에서 "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이 지금부터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위험 요소"라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