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기차가 유행이던데…'. 경기도 김포에 사는 회사원 김모씨는 새 차를 사려고 고민하다 문득 전기차에 눈을 돌렸다. 김씨는 서둘러 추가 보조금 추첨을 위해 시청으로 향했으나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다. 김포시가 올해 계획한 전기차 보조금 대상은 17대. 그런데 지원자가 40여 명 몰렸고 결국 추첨으로 대상자를 뽑았는데 김씨는 탈락했다. 그는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기존 신청자들이 취소를 하지 않는 이상 순번이 돌아올 가능성이 거의 없다"며 "아쉽지만 내년으로 구입 계획을 미뤘다"고 말했다.

이처럼 올해 전기차 구매 열풍 영향으로 조기에 보조금 예산이 바닥난 지자체들이 속출하면서 전기차 판매 시장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추가 보조금을 편성해 지원 대수를 늘리고 있지만, 대부분 예산 증액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김씨처럼 보조금 지급을 받지 못해 전기차 구입을 포기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올해 안에 전기차를 구입하려는 소비자 중 일부는 보조금 예산이 남은 다른 지자체로 '위장 전입'을 감행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전기차 시장을 키우려는 의지가 있다면 불균등하게 분배되어 있는 지역별 보조금 수요를 적절히 재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자체 98곳 중 55곳 보조금 신청 마감

전기차는 기본적으로 정부와 지자체 보조금 없이 사기 어려운 구조다. 기아차 쏘울만 해도 가솔린 차량은 2000만원 안팎이지만 전기차는 4000만원을 넘는다. 친환경차 보급을 늘려야 하는 정부는 올해 전국에 전기차 1만4392대를 보급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1대당 1400만원을 보조금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여기에 지자체가 예산 상황에 따라 1대당 평균 500만~600만원 정도 추가 지원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정부·지자체 예산을 합치면 연간 지원 규모는 3000억원 수준이다. 정부·지자체 보조금을 다 받으면 4000만원짜리 전기차를 2000만원 선에 구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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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지자체는 예산 사정에 따라 보조금 규모를 책정했다. 제주도는 올해 6053대에 대한 지원을 결정했고, 서울은 3438대, 대구는 1670대, 부산은 500대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규모가 작은 경북 예천군(1대), 청도군(1대), 경기 안성시(1대) 등은 지원 규모도 작다. 전남 목포·강진 등은 올해 전기차 보조금이 없다.

문제는 올해 전기차 수요가 급증하면서 보조금 신청이 조기에 마감되는 지역이 속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1~4월 전국에 등록된 전기차는 3213대로, 작년 같은 기간(454대)에 비해 7배 증가했다. 올해 전기차 보조금을 지급하는 98개 지자체 중 55곳(56%)에서 보조금 신청이 마감됐다. 대구는 1대당 600만원씩 1379대(승용차)를 지원할 계획이었으나 3월 말 신청자가 꽉 찼다. 대구시 관계자는 "대기자만 500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95대)와 울산광역시(50대) 등도 보조금 신청이 마감됐다. 보조금 신청이 마감된 지역은 올해 전기차 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

상황이 이렇자 다른 지역으로 주소를 옮겨 보조금을 타려는 시도도 나타나고 있다. 지자체별로 보조금 신청을 위한 거주 제한이 제각각인 것도 이를 부추기고 있다. 예컨대 서울이나 부산 등은 전기차 구매 신청 전일까지 주소를 두면 보조금 신청이 가능하지만, 청주는 6개월 이전에 거주 기록이 있어야 한다. 실제로 전기차 관련 인터넷 카페에는 '친척이 있는 다른 지역으로 주소를 이전해도 보조금을 주느냐'는 문의 글이 자주 올라온다. 서울시 관계자는 "주소 이전 관련 문의하는 전화가 많이 걸려 온다"고 말했다.

◇정부, 전기차 보조금 체계 개편안 만지작

자동차 업계에서는 전기차 보조금과 관련해 벌어지는 이런 현상들은 앞으로 전기차 시장을 예측할 수 있는 단면이라고 말한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전기차 시장은 기본적으로 정부 보조금에 따라 좌우된다"면서 "앞으로 2~3년 내 값이 더 싸면서 용량이 대폭 커진 '배터리 혁명'이 일어나지 않고 보조금이 사라진다면 전기차 시장은 정체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미국 조지아주는 전기차 보조금을 중단하자 전기차 판매 점유율이 17%에서 2%로 급감했고,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도 올해부터 정부가 보조금을 줄이면서 2월 전기차 판매량이 1월과 비교해 50% 줄었다.

정부도 이런 상황을 깨닫고, 전기차 보조금 체계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환경부는 이달 말 완료를 목표로 '전기차 보조금 체계 개편'에 대한 연구 용역을 진행 중이다. 환경부 청정대기기획과 담당자는 "전기차 주행거리나 연비 등에 따라 보조금 혜택을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전기차 구매가 부진한 지역에 지원하는 정부 보조금을 재조정해 수요가 높은 지역에 배정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지역별로 전기차 인프라 투자 상황, 보급 현황, 보조금 현황이 다 다르기 때문에 환경부에서 이를 잘 배분하고 조정해야 전기차 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다"며 "정부가 향후 연간 보조금 지급 계획 등 구체적인 방향을 미리 소비자들에게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