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8일 부산 기장군 고리 원전 1호기가 국내 원전 중 처음으로 영구 가동 중단하고 해체 작업에 들어간다. 1977년 완공 후 40년 만. 이어 현 정부는 설계 수명(운영 허가)이 다한 원전을 차례로 '폐로(廢爐)'한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폐로'는 5년 동안 원자로를 냉각한 다음 방사성 오염 물질을 제거한 뒤 구조물을 해체하고 부지를 복원하는 등 4단계로 진행한다. 적어도 15년은 걸린다. 폐로 대상은 2029년까지만 해도 고리 2~4호기 등 12기.

수명 끝나는 국내 원전 1호기 - 오는 18일 영구 가동 중단되는 원전 고리 1호기. 1977년 완공돼 이듬해 본격 가동된 국내 첫 원전이다.

하지만 아직 폐로 관련 기술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데다 '사용후핵연료(폐연료봉) 처리'를 위한 시설 건립 계획도 표류하고 있어 '준비 안 된 폐로 시대'란 비판이 나온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지금 추진하는 '폐로' 계획은 쓰레기장(처리장)도 없는데 쓰레기(사용후핵연료)부터 내놓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용후핵연료 처리장 국내에 없어

폐로 과정에서 관건은 방사성 폐기물 처리다. 방사능 오염도에 따라 중·저준위 폐기물은 경주 방폐장으로 보내고, 원전 부속 건물처럼 방사능 오염도가 미미한 시설은 산업용 폐기물로 배출한다. 문제는 방사능 농도가 높은 고준위 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 지진 우려가 없는 지하 500m 이상 암반에 밀폐 처리해야 하는데 아직 우리는 처리장이 없어 현재 발전소에서 임시로 자체 보관하고 있다.

정부 방침에 따라 원전을 차례로 폐쇄하고 나면 발전소에서 보관 중이던 사용후핵연료는 모두 폐기물 처리장으로 이송해야 한다. 그런데 처리장 부지조차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정부는 지난해 5월 고준위 폐기물 처리장 부지를 2028년까지 결정하고 2053년까지 완공한다는 청사진을 내놓았지만 아직 관련 법안조차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에 앞서 정부는 1983년부터 고준위와 중·저준위 폐기물을 함께 처리하는 시설을 만들려 했으나, 지역 주민들 반대에 부딪혀 9차례나 표류한 끝에 고준위 처리장은 유보하고, 2015년 중·저준위 처리장만 경주에 준공한 바 있다.

고리 1호기가 폐로에 들어가면 고준위 처리장이 없기 때문에 보관 중이던 사용후핵연료는 일단 같은 부지 고리 2~4호기 보관소로 옮겨야 한다. 그런데 이 보관소도 2024년엔 포화 상태에 이를 전망인 데다, 정부 방침대로 고리 2~4호기 역시 2023~2025년 순차적으로 폐로에 들어간다면 여기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들을 어디에 보관할지 지금으로선 대책이 없는 상태다. 김경민 한양대 교수는 "고준위 폐기물 처리장은 부지 선정에서 건설까지 해당 지역 주민들을 설득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면서 "대책 없이 폐로부터 서두르다 보면 나중에 낭패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2년 전 결정, 해외는 20년 전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영구 정지한 원전은 160기. 이 중 폐로를 완료한 건 미국(15기), 독일(3기), 일본(1기) 등 19기다. 폐로에 드는 비용은 일반적으로 한 기(基)당 1조원가량. 그런데 폐로 관련 기술에서 우리는 96개 핵심·상용 기술 중 3분의 1(32개)만 국산화가 이뤄져 있어 "폐로를 서두를수록 외국 기업들 좋은 일만 시켜준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 ‘양키 원전’ 해체 과정 - 2014년 12월 가동을 멈춘 미 버몬트주 양키 원전 해체 전, 해체 과정, 해체 후 부지 모습(왼쪽부터).

결정 과정도 다소 성급하다. 고리 1호기 해체는 2년 전인 2015년 6월 결정됐다. 하지만 해외에선 이런 결정을 5~20년에 걸쳐 치밀하게 준비한다. 미국에선 폐로에 앞서 사업자가 원자로 정지 시한 5년 전에 '폐로 비용 예비 견적서'를 내고 다양한 영향 요소를 사전에 평가한 뒤, 해체 비용을 추산해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폐로 계획서도 인터넷에 공개하며 공청회와 대중 설명회, 워크숍 등 다양한 경로로 폐로 계획을 알린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미국·독일·일본 등 원전 선진국과 달리 우리는 2015년에서야 원자력안전법을 개정해 관련 사항을 포함시킨 데다 폐로에 대한 경험과 연구가 부족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