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가계 부채 상황은 심각하다. 3월 말 기준 가계 부채 총액은 1359조원에 달한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과 비교하면 91%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70.4%보다 20%포인트 이상 높다. 또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169%로 OECD 평균 129.9%보다 40%포인트 가까이 높다.

한국은행은 지난 4월 국회에 제출한 '가계 부채 상황 점검' 보고서를 통해 "2008년 말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OECD 주요국은 가계 부채 비율이 감소했는데, 우리나라만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가계 부채의 역주행은 부동산 부양 정책과 관련이 깊다. 과거 정부들은 가계 부채 대부분을 '갚을 여력이 있는' 중산층이 갖고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경기 진작 목적의 부동산 부양 정책을 적극 구사했다. 이 과정에서 가계 부채가 실탄으로 활용됐다.

문제는 자력으로 빚을 갚기 어려운 사람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매달 소득에서 최저 생계비를 뺀 금액이 원리금 상환액에 못 미치는 '한계 가구'가 약 200만 가구로 추산된다. 대출을 갖고 있는 5가구 중 1가구꼴이다. 이들이 갖고 있는 부채는 169조원가량으로 전체 가계 부채의 26%에 달한다. 한계 가구 중에서도 저소득층과 다중 채무자가 특히 더 문제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득 하위 20%는 작년 4분기 기준 월평균 136만원을 벌어 13만5000원의 적자를 봤다. 이런 가구는 자력으로 빚을 갚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다중 채무자는 신용등급이 7~10등급으로 낮으면서 3곳 이상 금융회사에 대출을 갖고 있는 사람을 뜻하는데, 이들이 갖고 있는 부채는 총 80조원가량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이런 사람의 부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1000만원 이하 10년 이상 장기 채권의 '소각'을 약속하고 있다. 만약 이 정책이 실행되면 44만명이 1조9000억원 정도의 부채를 덜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전체 가계 부채 규모(1300조원대)를 감안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