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속수무책으로 판데믹(pandemic·전염병 대유행)을 맞아야 할까. 과학자들은 느리지만 끈기 있게 전염병에 대항할 무기를 만들고 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전염병을 예방하고 방지하는 검역(檢疫)이다. 치명적인 에볼라 바이러스가 서아프리카에서 머물고 있는 것, 2010년 아이티 지진 현장에서 발병한 소아마비와 콜레라가 조기 진화된 것도 세계 각국이 검역 체계를 강화하고 정보를 공유한 덕분이다.

하지만 메르스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전염병에 대한 완벽한 검역은 불가능하다. 또 검역을 강화하면 경제적 피해도 생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03년 발생한 사스(SARS·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는 사망자가 800명이 채 되지 않았으나 교역 중단과 교통 통제 등으로 540억달러(약 60조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다. 세계은행은 새로 판데믹이 발생하면 경제적 손실이 4조달러(약 4474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전 세계 경제가 파탄 난다는 것이다.

백신 개발·DNA 해독… 전염병 막을 '국제연합군' 뭉쳤다

에볼라 백신은 아프리카서 공급 시작

판데믹을 막을 가장 확실한 무기는 예방용 백신이다.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를 비롯해 각국 정부와 민간단체들은 백신 개발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 WHO의 마리 폴 키니 박사는 지난해 에볼라 백신을 개발해 인체 시험에 성공했다. 백신은 유럽연합의 승인을 거쳐 미국 제약사 머크가 생산하고 있다. 이 백신은 지난달 12일 에볼라가 발병한 콩고민주공화국에 긴급 투입됐다.

유전자(DNA)를 이용한 새로운 백신도 개발 중이다. 미국 바이오 기업 이노비오는 바이러스를 죽이거나 약화시켜 사람에게 넣는 기존 백신 방식 대신 바이러스의 핵심 인자가 기능 하지 못하도록 하는 DNA 조각을 넣은 백신을 만들었다. 현재 지카와 메르스 바이러스 백신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세운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재단은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신종 전염병에 대항할 '전염병대비혁신연합(CETI)'을 출범시켰다. 앞으로 5년간 10억달러(약 1조1180억원)가 백신을 개발하는 기업과 과학자들에 지원된다.

게이츠가 CETI를 설립한 것은 전염병 백신 개발 과정에서 나타나는 시장 장벽을 없애기 위해서이다. 현재의 전염병은 대부분 저개발 국가에서 유행한다. 이 국가들이 백신이나 치료제를 구매할 능력이 없다 보니 제약사들은 시장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개발에 소극적이다. 하지만 게이츠는 "전염병은 언제든 다른 나라로 확산될 수 있고,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전염병을 뿌리 뽑는 것이 곧 전 세계를 구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바이러스 50만종 DNA 해독도 시작

최근 전염병 연구에서 주목받는 또 다른 분야는 전염병 데이터베이스 구축이다. UC샌프란시스코 애보트 진단센터는 바이러스와 세균 800만종에 대한 DNA 분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다. 신종 전염병이 발생하면 환자의 몸에 있는 병원체의 DNA와 데이터베이스를 비교해 정체를 밝힐 수 있다. 찰스 치우 센터장은 지난달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1980년대에는 새로운 전염병의 원인을 밝히고 DNA를 분석하는 데 2년이 걸렸다"면서 "지금은 100분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미국 국제개발처 등이 향후 10년간 34억달러(약 3조 8000억원)를 투자하는 '글로벌 바이러스 유전체 프로젝트(Global Virome Project)'도 시작됐다. 인간과 동물의 몸 속에 살거나 외부에서 감염될 수 있는 바이러스 50만종의 DNA를 모두 분석해 전염병을 근절할 근본적인 방법을 찾겠다는 것이 이들의 목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