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새만금을 청와대가 직접 챙기겠다"고 밝히면서 26년째 지지부진한 새만금 개발 사업에 속도가 붙을지 주목된다. 1991년 첫 삽을 뜬 새만금 사업은 우여곡절 끝에 2006년 방조제를 준공했지만, 11년이 지난 지금도 상당 부분이 여전히 '물바다'이다. 새만금 산업단지에 입주한 기업도 5곳뿐이다.

총사업비 22조2000억원(국비 10조9100억원, 지방비 9500억원, 민자 10조3300억원)을 투입하는 새만금 개발에 지난해까지 4조7000억여원이 들었다. 이 중 민간 자본은 750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그만큼 민간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강한 드라이브를 거는 것도 필요하지만, 기업이 새만금에 자발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급선무"라고 지적하고 있다.

文 대통령 "새만금 직접 챙길 것"

문 대통령은 31일 전북 군산 새만금 신도시 광장에서 열린 '제22회 바다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새만금은 동북아 경제 허브, 특히 중국과 경제 협력하는 중심지가 될 수 있는 곳인데 문제는 속도"라며 "이번에 신설한 청와대 정책실을 중심으로 (새만금 사업을) 직접 챙기겠다"고 말했다. 이어 "신항만과 도로 등 핵심 인프라를 이른 시일 내에 확충하고, 필요한 부분은 공공 매립으로 전환해 사업 속도를 올리겠다"고 강조했다.

새만금 현장을 찾은 기업인과 외국인 투자자들은 물에 잠긴 땅에 변변치 않은 도로 등 기반 시설에 실망한다. 문 대통령이 매립 작업과 인프라 구축을 독려한 것도 이 때문이다. 2011년 수립된 새만금 개발 마스터 플랜에는 2020년까지 전체 매립 용지(291㎢)의 73%를 완료하겠다고 했지만, 올해 5월 현재 계획 면적의 36%만 진행됐다. 전체 용지의 55%를 민자 개발 사업으로 계획했지만, 한국농어촌공사가 민간 사업자로 참여한 새만금 산업단지 조성 말고는 뚜렷한 성과가 없다.

현재는 민간 투자자가 바다에 잠긴 땅을 메우고, 산업연구·국제협력·관광레저 등의 용지까지 조성해야 한다. 이런 비용을 선뜻 감수할 투자자가 없기 때문에 '공공 매립'이 이슈로 떠오른 것이다. 한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대통령이 말한 대로 공공 매립이 진행되면, 어떤 형태로든 공적 재원의 추가 투입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신항만 건설을 비롯해 도로·철도 등 인프라 확충도 시급하다. 새만금산업단지 입주 기업들은 "군산 항로는 수심이 얕아 대형 선박이 못 들어와 원자재나 생산품을 운송하려면 부산항이나 광양항을 이용해야 해 물류비가 많이 든다"고 말한다. 새만금 신공항 건설은 현재 수요 예측 용역을 진행 중이다.

환경 단체는 여전히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북 지역 시민사회단체 10곳으로 구성된 새만금 살리기 전북도민행동 준비위는 이날 성명을 내고 "공공 매립이 땅부터 만들자는 단순한 사고로 진행되면 안 된다"며 "4대강 사업과 똑같은 일이 새만금에서 벌어지게 된다"고 주장했다.

삼성·LG 빠지고… 투자 유치 '지지부진'

새만금은 투자 기업 유치에 애를 먹고 있다. 현재 입주한 기업은 화학 소재 기업 도레이첨단소재, 벨기에 화학사 솔베이, 국내 파이프·배관 제조업체 ECS, 열병합발전소 사업자인 OCI와 그 계열사가 전부다. 2009년 이후 삼성·LG 등 국내외 80여 업체가 투자 의사를 밝혔지만, 상당수가 투자를 철회했다.

삼성은 2021년부터 20년에 걸쳐 새만금 내 11.5㎢ 부지에 태양전지 등 그린 에너지 산업단지를 구축하는 계획을 철회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태양전지는 사업을 접었고, 화학 쪽은 사업체를 매각했다"면서 "애초 2020년까지 새만금 매립이 끝나는 것을 전제로 투자 계획을 세웠는데, 그 계획도 실현 불가능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3800억원 투자를 유치해 새만금에 '스마트팜(smart farm)'을 건설하려던 LG CNS는 농민 반발에 부딪혀 작년 9월 사업을 접었다. 작년 국정감사 때는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에서 "대기업이 농작물까지 손을 대려 하느냐"는 질타가 쏟아졌다. 새만금 관광·레저 용지도 이렇다 할 투자자가 나서지 않자 정치권 등에서 카지노 유치 방안까지 흘러 나오고 있다.

"새만금, 규제 프리존으로 만들어야"

전문가들은 "대통령 의지대로 새만금 사업에 속도가 붙으려면 규제 완화로 민간 기업의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관련법을 개정해 국내 기업도 새만금에서 최장 100년 동안 국공유지를 임차할 수 있게 한 것도 규제 완화의 일환이다.

최영출 충북대 교수는 "투자 유치 활성화를 위해 새만금을 아예 '규제 프리존(free zone)'으로 만드는 것을 전향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며 "외국 기업들이 들어올 수 있게 노동 관련 규제나 외화 송금을 자유롭게 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시·도 14곳이 전략 산업을 육성할 수 있도록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규제프리존특별법'은 민주당 반대로 1년째 국회에 계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