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매매로 재미 본 경험이 없어 스스로를 '주식 곰손(손재주가 없는 사람)'으로 부르는 회사원 정모(33) 대리는 요즘 계좌를 열어 볼 때마다 흐뭇하다. 정씨는 "상승장에서 어떤 종목을 사야 할지 몰라서 코스피지수에 연동되는 ETF에 올라탔는데 10%대 수익이 났다"면서 "ETF는 여러 종목을 담으니까 손해 본다고 해도 개별 주식만큼 심하게 물릴 것 같진 않아 크게 불안하지 않다"고 말했다.

지수 움직임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되는 상장지수펀드(ETF)에 개미들이 몰리고 있다. 주식시장에 상장되어 있는 여타 개별 종목처럼 실시간으로 사고팔 수 있고, 개별 주식과 달리 국내 ETF 매매 시 거래세(0.3%)가 면제되는 ETF의 장점을 활용하는 것이다. 3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ETF의 월평균 거래 대금은 1조1712억원으로 지난 1월과 비교하면 83% 증가했다. 지난 29일엔 ETF의 하루 거래 대금이 1조6700억원을 넘어서면서 올 들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시장 수익률도 못 따라가는 일반 주식형 펀드의 부진한 성과에 실망해 이탈한 자금도 ETF에 가세하고 있다.

김도현 한국투자증권 영업부 지점장은 "ETF는 펀드와 비슷한 구조이지만, 장중 매매로 수익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크게 차이 난다"면서 "지수 급등락이 심해질 것으로 예상될 때 ETF를 활용하면 쏠쏠한 수익을 챙길 수 있다"고 말했다.

ETF, 연초 대비 거래 대금 83% 증가

주식형 펀드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이 드는 ETF로의 자금 이동은 전 세계적인 트렌드다. 국내에서 일반 주식형 펀드에 가입하면 투자자가 내야 하는 비용은 1년에 약 1.5%지만, ETF를 활용하면 별도의 운용 역량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최저 0.045%까지 내려간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국내 주식에 투자하는 ETF 거래 시 세금이 없다 보니 장기 투자보다는 단기 투자에 더 많이 활용되고 있다. 주식처럼 실시간 매매가 가능한데 비용은 낮고 세금까지 없으니, 증시가 출렁일 때 수익을 챙기려는 자금이 ETF에 몰려 거래량이 급증하는 패턴을 갖게 됐다. 특히 굵직굵직한 사건이 터지면 ETF 거래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실제로 대통령 선거 바로 다음 날이었던 지난 10일엔 ETF 거래량이 전체 유가증권 시장 32%를 차지했다. 증시 반등을 예상한 자금은 주로 코스피200지수를 추종하는 인덱스 ETF나 지수 대비 2배 수익률을 내는 레버리지 ETF로 몰려갔다. 최창규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예전엔 소액으로 고수익을 내려면 신용거래나 미수(외상 거래)를 써야 했지만 지금은 ETF를 활용하는 것이 대세"라면서 "우정사업본부 등 큰손들도 ETF 투자를 늘리고 있어 당분간 ETF 성장세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방향 잘못 잡으면 큰 손해

국내 ETF 시장은 현재 개인 투자자가 중심축이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개인 투자자의 ETF 비중은 38.3%로, 외국인(18.5%)이나 기관 투자자(20.9%)에 비해 훨씬 높았다. 그런데 개인들이 ETF 시장에서 올해 선택한 ETF는 주가가 하락하면 돈을 버는 '인버스 ETF'였다. 같은 기간 지수 상승분의 2배 수익이 나오는 레버리지 ETF는 팔아 치웠다.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던 박스피(박스권+코스피)의 학습 효과 때문이었다는 것이 전문가들 분석이다. 이 때문에 인터넷에는 '인버스 ETF에 투자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개인 투자자들의 고민 글이 넘쳐난다. 2배짜리 인버스 ETF는 올해 하락률이 38%가 넘는다. 최준철 VIP투자자문 대표는 "주식시장의 상승 확률이 높은 시점에서 개인들의 인버스 ETF 매수는 다분히 과거 패턴에 기댄 비논리적 투기에 가깝다"고 말했다.

ETF로의 자금 쏠림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강송철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ETF는 개별 주식의 가격이 싸고 비싸고를 따지지 않고 주가지수를 단순 추적하는 상품이기 때문에 자금 유입이 많아질수록 시가총액이 큰 주식으로만 더 많은 돈이 몰리게 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향후 자금 흐름이 역전되어서 주가가 빠지기 시작하면 ETF에 몰렸던 자금이 한꺼번에 빠지면서 시장 침체를 유발하는 악순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