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부처에 근무하는 A 사무관은 정권이 바뀐 것을 스마트폰을 보며 실감하고 있다고 합니다. 상사의 업무 지시로 인해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던 스마트폰 알람이 조금 잠잠해졌기 때문입니다.

인사혁신처는 지난 3월 근무시간 외에 스마트폰을 통한 업무지시를 금지하는 지침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인사혁신처는 지난 3월 9일부터 '2017년 공무원 근무혁신 지침'을 시행한다고 밝혔습니다. 지침은 공무원들이 퇴근 직전 업무를 지시하거나 회의를 여는 일을 지양하고 퇴근 이후에 전화나 카카오톡 등을 통한 업무 지시를 자제하도록 했습니다.

공무원들은 반색했습니다. 정부 부처가 세종시로 이전한 이후로 국장급 이상은 서울, 과장급 이하는 세종시로 출근하는 상황이 빈번하다보니 스마트폰을 통한 업무 지시가 일상화 됐습니다. 스마트폰은 언제 어디서든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상사들이 이른 새벽이나 늦은 저녁에도 연락을 해와 일과 사생활의 경계가 없어졌다며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공무원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기대와 달리 지침은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인사처에서 "부서별 초과근무 실적을 분석해 앞으로 인사·복무관리에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지침을 이행하지 않았을 때 페널티가 따로 없다보니 유명무실해졌습니다. 홍보도 제대로 안돼 "그런 지침이 있는 줄도 몰랐다"는 공무원들도 있었죠.

하지만 최근 관가에선 이 지침을 적극 이행하자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합니다. 업무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부원까지 전부 단체 채팅방에 초대해 늦은 시간까지 연락을 하던 상사들이 조용히 개인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고, 오후 9시 넘어서는 연락 자체를 자제한다고 합니다.

관가에선 이런 변화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영향을 받아 생긴 것으로 봅니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퇴근 후 카톡으로 업무 지시를 근절하도록 하는 대책을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여당이 더불어민주당 소속 신경민 의원은 이런 내용의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죠.

여전히 퇴근 이후 스마트폰을 통한 업무 지시에 시달리는 공무원들이 적지 않지만, 관가에선 이런 관행이 달라질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면서 공직사회에서 금기시 되던 칼퇴근이 활성화 되고 주말 근무도 자제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큰 것이죠. 문 대통령 본인이 토요일을 온전히 쉬는가 하면 벌써 연차휴가까지 쓰는 마당이다보니 이런 분위기는 점차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기대도 나옵니다.

상당수 고위 공무원들도 "이젠 관행을 바꿀 때가 됐다"며 지침에 적극 호응하겠다는 입장입니다. 한 달에 한 번 오후 4시에 조기 퇴근하는 제도도 ‘그게 제대로 되겠나’란 의구심이 기대감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일과 사생활을 분리하는 문화가 공직사회에서 정착돼야 민간기업으로도 확산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변화가 한번의 외침에 그치지 않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