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과학자가 참여한 국제공동연구진이 2004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대지진의 원인을 세계 최초로 밝혔다. 보통 하나의 암석 판이 다른 판 밑으로 내려가는 과정인 ‘섭입’이 일어난 뒤 심층에서 지진이 발생하는 것과는 달리 수마트라 대지진은 섭입 전 지표 가까이에서 지진이 발생할 조건이 형성됐다는 게 연구의 핵심 결론이다.

송인선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박사(사진)가 참여한 국제공동연구에 의해 밝혀진 이번 연구결과는 세계적인 학술지 '사이언스' 26일자(한국 시간)에 발표됐다.

2004년 12월 26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북쪽 안다만-니코바 제도 해저에서 발생한 지진은 규모 9.2의 대지진이었다. 인도-호주판이 버마-순다판의 아래로 섭입하며 발생한 것으로 강력한 지진해일(쓰나미)을 동반해 25만명 이상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기존 해저 지진은 해저 지층이 섭입되면서 퇴적물이 압축되고 광물에서 수분이 빠져나가는 탈수 작용이 이뤄진다. 이 과정을 통해 높은 온도와 강한 압력으로 지진 발생 조건이 생긴다. 대부분 대지진은 섭입이 한참 동안 진행된 뒤 엄청난 에너지가 쌓이는 심층에서 발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2004년 수마트라 대지진과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은 기존 해저 지진과 달리 지표 가까이에서 발생했다. 지각 판이 섭입되기 전에 지진이 일어날 조건이 이미 만들어진 것이다.

새로운 양상으로 발생한 수마트라 대지진과 동일본 대지진을 분석하기 위해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26개 국가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국제공동해양탐사프로그램(IODP)’은 IODP 시추연구선을 수마트라섬 북단과 스리랑카 사이 인도양에 보내 최대 1.5km에 달하는 해저시추 작업을 거쳐 섭입 이전의 지층 샘플을 확보하고 연구를 수행했다. 지표 가까이에서 일어난 지진의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 섭입 이전의 해양퇴적물 변화과정을 분석한 것이다. 송인선 박사는 국제해저지각시추사업 지원을 받아 국내 과학자로는 유일하게 12개국 33명으로 구성된 연구 IODP 시추연구단에 참여했다.

연구진은 2016년 8월 6일부터 10월 6일까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북단의 순다 섭입대에서 서남쪽으로 약 255km 떨어진 인도양에서 연구를 진행했다. 이 지역은 수마트라 대지진의 지각 판 섭입 전 퇴적물이 모여 있는 곳이다.

시추 결과 이 지역 퇴적층은 석회질 혹은 규산염질의 침전물로 이뤄진 ‘원양퇴적층’과 이를 덮은 히말라야 산맥 기원의 퇴적층(니코바선상지)으로 구성된 것으로 분석됐다. 원양퇴적층은 백악기 현무암으로 구성된 기저암을 150~200m 두께로 얇게 덮고 있으며 니코바선상지 퇴적은 약 900만년 전 히말라야 산맥 형성 시기에 시작됐다.

연구진은 섭입 이전에 해저퇴적물이 이동하며 어떤 변화가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광물 조성, 물리화학적 성질, 압출된 지층수 화학성분 등을 분석하고 예측 모델링을 실시했다. 화학분석, 현미경 관찰, X선 회절분석 결과 원양퇴적물에서 화산 및 유기물 기반 비정질 규소가 20% 이상 함유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층이 형성될 때 암석 사이 구멍(공극)에 채워지는 지층수(해저지층에서는 바닷물과 염도가 같다)를 화학분석한 결과 염분이 깊이에 따라 서서히 높아지다가 1.3km 부근에서 갑자기 낮아졌다. 이는 니코바선상지 퇴적층이 형성되며 온도와 압력이 높아져 퇴적암의 수분이 빠져나가면서(탈수) 지층수의 염분 농도를 희석시킨 것으로 분석됐다.

송인선 박사(가운데)와 국제 연구진이 시추 코어를 분석하고 있다.

광물의 탈수 작용에 의해 퇴적물이 다져지며 단단해지는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도 지층수가 지속적으로 공급돼 암석이 파괴될 수 있는 압력이 높아진 상황에서 지각 판이 섭입하면서 섭입 직후 해저지표 가까이에서 대규모 지진이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

송인선 박사는 “이번 연구결과가 지표 가까이에서 발생하는 해저지진의 원인을 좀 더 명확하게 규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지질 재해 등 자연재해의 예측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 응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