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추진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과학계로 확대된다. 배재웅 미래창조과학부 연구성과정책관은 23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미래부가 새 정부의 일자리 공약을 실현할 방안을 제출했다"며 "곧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비정규직 연구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작업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계에서는 국정감사 때마다 논란이 된 비정규직 연구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라고 반기고 있다. 하지만 연구 인력의 유동성이 떨어져 우수 연구원을 제때 확보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정규직 전환에 들어가는 예산을 확보하느라 자칫 연구개발(R&D) 투자가 줄어들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비정규직 절반 이상 정규직 전환 예상

지난해 12월 31일 현재 25개 출연연의 전체 직원 수는 1만5899명이다. 이 중 비정규직은 3714명으로 23.4%를 차지한다. 특히 한국생산기술연구원(39.0%)·한국식품연구원(37.6%)·한국한의학연구원(36.4%) 등 8곳은 3명 중 1명꼴로 비정규직이다.

배 정책관은 "일괄 처리될지 단계별로 처리될지는 모르나 비정규직 연구원 중 절반을 훨씬 넘는 비율이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미래부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 소관 25개 출연연의 비정규직 실태와 정규직 전환 방안을 수립하도록 했다.

정부 연구소에 비정규직 연구원들이 증가한 것은 과거 여러 정부에서 공공기관 비대화를 막기 위해 연구인력 정원을 동결했기 때문이다. 이 상태에서 정부 R&D 투자 증가로 연구과제가 계속 늘어나자, 출연연들은 정원 외 비정규직 연구원들을 뽑아 연구과제를 수행했다. 하지만 같은 연구를 하면서도 정규직 연구원이 받는 성과급은 비정규직 연구원의 1.7배, 연구수당이 약 3배에 달해 국정감사 때마다 차별 문제가 제기됐다.

그나마 하루아침에 자리가 없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지난해부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위촉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희윤(41·가명)씨는 "연구프로젝트는 보통 4~5년 지속된다"면서도 "하지만 간혹 연구비 지원이 중단되거나 조직이 바뀌는 바람에 비정규직 연구원이 한 달 만에 백수가 되는 사례도 있었다"고 말했다.

인건비 예산·인력 유동성 확보가 관건

연구인력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이상천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은 "정규직 확대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할 수 있을지가 비정규직 해소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출연연 한 관계자는 "연구인력 정원 확대에 따른 인건비를 따로 확보하지 않고 기존 R&D 예산에서 충당하도록 하면 오히려 연구 환경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연구소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괄적인 정규직 전환은 오히려 연구현장에 혼란만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를테면 기술변화가 심하고 단기과제가 많은 분야에서는 필요한 인력을 프로젝트가 있을 때 비정규직으로 뽑는 것이 우수인력을 확보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상천 이사장은 "무조건 정규직 연구원만 뽑으면 첨단 프로젝트에 박사 학위를 갓 취득한 우수 인력을 투입할 수 있는 박사후 연구원(post-doctoral researcher) 제도를 운용할 틈이 없어진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미래부 배재웅 정책관은 "연구소 스스로 과거보다 더 엄격히 연구원들에 대한 평가를 해야 우수 인력을 계속 유인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학생연구원에 대한 처우 개선도 필요

비정규직에도 포함되지 않는 학생연구원에 대한 처우도 이번에 고려 대상이 돼야 한다는 의견들도 있다. 지난 정부는 비정규직 연구원의 처우 문제가 불거지자 연구소마다 비정규직 축소비율을 할당했다. 하지만 연구소들은 비정규직 연구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대신 박사후 연구원 등 비정규직을 내보내는 방편으로 비율을 맞췄다. 부족한 연구인력은 대학원생 신분의 학생연구원들로 채웠다. 이런 학생연구원들은 같은 연구를 해도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임금이 비정규직보다 낮고 4대 보험 혜택도 받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운동 기간에 "정부출연연구기관 학생연구원들에 대한 고용계약을 의무화하고 4대 보험을 보장하겠다"고 공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