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이 좋기는 한데, 길이 생각보다 너무 좁더라구요. 오늘 같은 날은 그늘이 없어서 너무 덥고…”

서울시가 서울역 고가를 탈바꿈 해 선보인 국내 첫 고가 보행길 ‘서울로 7017’이 20일 오전 10시 개장했다. 이날 오전부터 서울로 7017에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시민들로 북적였다.

서울로 7017이 20일 오전 10시 개장했다. 시민들이 고가 상부 보행길을 걷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개장부터 12시까지 1만2200명, 오후 2시까지 누적으로 2만4705명이 고가를 찾았다. 고가 위에 식재된 다양한 식물과 구비된 편의시설에 대해서는 호평이 많았지만, 이때문에 좁아진 고가가 생각보다 걷기에 불편하다는 평도 많았다. 고가 양쪽을 오가는 이들이 붐비면서 더운 날씨에 여유롭게 시설을 구경하기엔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이날 오전에는 인근 서울역 일대 청파동과 만리동에 사는 60~80대 주민들이 많이 찾았다. 일부 가족 단위, 20~30대 젊은층들도 고가를 찾았다. 이날 안전 관리를 위해 현장을 지킨 한 서울시 직원은 “개장 전부터 인근 주민들의 관심이 컸다”면서 “오전부터 등산복을 입은 주민들이 몰렸다”고 말했다.

회현역 방향으로 가는 서울로 7017 보행길에서 시민들이 걷고 있다.

서울로 7017로 재탄생한 서울역 고가는 원래 산업화가 한창이던 1970년대 교통난 해결을 위해 서울역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형태로 건설됐다. 이후 지속적인 보수에도 노후화로 도로 기능을 상실했고 1990년대 후반부터 교량 안전 문제도 제기됐다. 시는 이 곳을 철거하는 대신 보행길로 재생하는 방안을 고안, 3년여간 준비해왔다.

서울로 7017이 조성하는 총 17개 보행길은 가장 동쪽 통로인 퇴계로, 남대문시장, 회현동, 숭례문, 한양도성, 세종대로, 서울역에서 서쪽으로 공항터미널, 청파동, 만리동, 손기정공원, 중림동, 서소문공원까지 연결된다. 인근 호텔마누와 대우재단빌딩을 잇는 공중 연결 통로에서는 카페와 베이커리, 레스토랑 등 식당가를 이용할 수 있고 남산공원과 숭례문으로도 이동할 수 있다.

서울로 7017 상부 고가에서 바라본 전경.

한국 근현대 개발의 역사를 45년간 함께해온 서울역 고가가 생태·문화가 어우러진 보행길로 거듭난 셈이다. 서울시는 이 곳에 50과 228종 2만4085주의 나무를 심은 공중수목원을 만들었다. 축제와 공연이 펼쳐지는 장방형 녹지광장인 만리동광장(1만480㎡)과 인형극장(담쟁이극장), 거리 무대인 장미무대·목련무대, 방방놀이터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시설도 마련했다.

회현역 방향으로 가는 서울로 7017 보행길에서 시민들이 걷고 있다.

이날 서울로 7017을 찾은 시민들 대부분은 새롭게 바뀐 고가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날 방배동에서 서울로 7017을 구경온 한 70대 여성은 “고가 위에 이렇게 많은 식물이 심어진 것이 신기하다”며 “없이 살던 시절과 비교하면 서울시가 돈을 많이 들인 것 같다”고 말했다.

가나다순으로 식재된 다양한 식물에 대해서도 호평이 많았다. 서울로 7017의 상부(1024m)에는 구기자나무부터 회양목까지 가나다순으로 심어졌다. 만리동광장에는 대왕참나무와 황금 측백이, 퇴계로 교통섬(1800㎡)에는 수수꽃다리와 개나리 등이 심어졌다. 네덜란드의 건축·조경 전문가 위니마스(Winy Mass)가 설계했다. 대전에서 온 임수빈씨는 “조경학을 전공하고 있는데, 교수님이 서울로7017 조경을 보고 오라고 해서 왔다”며 “사진 찍을 곳이 많아 좋았다”고 말했다.

서울로 7017 상부 고가에 다양한 식물들이 식재돼 있다.

서울로 7017에는 계절적 특성을 반영해 사계절 축제가 열린다. 개장일부터 오는 27일까지는 플라워축제가 열린다. 만리동 인근의 장미무대와 퇴계로 인근의 목련무대에서는 다양한 문화행사가 연중 개최된다. 장미무대에서는 가족단위 관람객을 위한 공연·체험 프로그램이, 목련무대에서는 평일 점심시간과 주말 시간대에 인근 직장인과 지역주민을 위한 문화·놀이 프로그램이 열린다.

평일 점심에는 서울역 인근 직장인들이, 저녁에는 연인들이 데이트코스 삼아 서울로 7017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시는 ‘은하수’ 같은 야경을 위해 111개 통합폴(조명·태양광·CCTV·비상벨·Wifi 등이 함께 설치된 가로등)에 총 555개 LED 조명과 551개 수목화분(tree pot)을 둘러싼 원형 띠조명을 설치했다. 안개분수대와 특별한 날을 위한 조명쇼 등도 마련했다.

서울로 7017 만리재로 방향 야경.

이날 이 곳을 찾은 한 20대 직장인 커플은 “서울역 근처 회사에 다니는데, 앞으로 산책할 곳이 생겨서 좋다”며 “야경이 예쁘다고 해서 밤에 다시 와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울로 7017을 찾는 길 안내는 미흡해 보인다. 지하철 서울역과 회현역에서 내려 서울로 7017로 가는 가까운 출구 안내가 부족하다. 또 고가 위에 아직 정식으로 운영되지 않는 시설도 적지 않았다. 서울역에서 일하는 한 현장 직원은 “오전부터 서울로 7017로 가는 길을 묻는 이들만 수십여명이었다”며 “서울역에서는 1번 출구 승강기와 7·8번 출구 에스컬레이터, 회현역에서는 5번 출구가 고가와 가깝다”고 말했다.

서울역에 설치된 정원 예술작품 슈즈트리.

보행길 개장을 기념해 서울역에 설치한 정원 예술작품 ‘슈즈트리(Shoes Tree)’에 대해서는 혹평이 대부분이었다. 슈즈트리는 헌 신발 3만 켤레로 만든 설치미술로, 세계적인 정원 디자이너 황지해 작가가 재능기부 형식으로 설치했다. 서울로 7017에서 서울역 광장까지 100m에 걸쳐 조성됐다. 차가 다니던 도로가 이제는 사람이 걷는 길이 된다는 뜻이다. 이날 이 곳을 찾은 한 40대 남성은 “신기하기도 하지만, 흉물스러운 느낌도든다”면서 “대중적이지 못한 전시작품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서울로7017 고가에서 다음달 17일까지 20여개의 다양한 축제 및 문화 프로그램을 개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