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은 대한민국 전체 기업의 99%, 고용 인원의 88%를 차지한다. 여기서 따온 ‘9988’은 중소기업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상징한다. 새 정부 출범 닷새 만에 맞은 중소기업주간(15일~19일), 중소기업계는 문재인 정부 출범을 계기로 우리 경제 패러다임을 중소기업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에 조선비즈는 ‘대기업-중소기업’으로 이분화된 산업 구조를 진단하고 중소기업이 나아갈 방향을 진단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중소기업인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친(親)중소기업 공약을 밝혀온 만큼 새 정부의 경제 정책 패러다임이 달라질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대선 직후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중소기업인 10명 중 9명은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기대감이 크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의 친중소기업 행보는 곳곳에서 읽힌다. 대통령 취임 한 달 전인 4월 10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신분으로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을 찾은 문 대통령은 정책강연회 후 ‘중소기업 천국을 만들겠습니다’라고 방명록을 남겼다. 대통령 취임 후 1호 업무지시로 하달한 것도 ‘일자리위원회’ 설치였다. 중소기업계는 그간 경제 정책 패러다임을 성장에서 고용으로 옮겨야 한다고 당부해왔다.

중소기업계는 자신들의 염원이었던 ‘중소기업부 설치’, ‘생계형 적합업종 법제화’ 등의 중소기업 정책이 문재인 정부에서 실현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중소기업 중심 경제 패러다임으로 한국 경제가 과연 다시 뛸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이 지난달 10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을 찾아 중소기업 정책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 中企 CEO “문 대통령 국정 운영 기대”… 국정키워드로 ‘내수활성화’ 지목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기업 CEO 300명을 대상으로 지난 10일부터 15일까지 ‘제19대 대통령에 바란다, 중소기업·소상공인 의견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10명 중 9명은 문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매우 크다 61.0%·약간 크다 26.7%)고 답했다.

대통령이 중점을 둬야 할 국정 키워드(복수 응답)로는 ▲내수활성화를 통한 경제성장(56.3%) ▲국민통합(39.7%) ▲일자리 창출(36.7%) ▲부정부패 척결(23.0%)을 꼽았다.

국정 핵심과제로 먼저 채택해야 할 중소기업 공약으로는 ‘생계형 적합업종 법제화·징벌적 손해배상제 강화·일감 몰아주기 근절(24%)’을 가장 많이 지목했다. 이어 ‘중소기업 2+1 임금지원(16.1%)’, ‘중소벤처기업부 설치(15.1%)’ 순이었다. 중소기업 CEO가 사업 영역 보호와 불공정 거래 근절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경만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중소벤처기업부 설치, 불공정거래 행위 근절 등 중소기업 관련 주요 공약들이 국정 핵심과제로 차질없이 반영돼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구축하고, 나아가 한국 경제가 재도약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중기 CEO들은 또 대선 이전부터 뜨거운 감자였던 ‘중소벤처기업부’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선 ‘타 부처의 중소기업 관련 업무 조정(58.0%)’, ‘중기부의 주요기능 및 명확한 업무 정립(53.7%)’, ‘대통령의 강력한 중기부 신설 의지표명(45.7%)’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계에선 중기부 초대 수장에 실세 경제통 장관이 취임해야 위상이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박성택 중기중앙회 회장은 중소기업주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론 다른 부처 장관보다 리더십이 강력하고 정책을 구체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힘 있는 사람이 와야 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CEO ‘제19대 대통령에 바란다’ 설문결과.

◆ 기울어진 한국 경제… 중기 정책 ‘자생력 강화’에 초점 맞춰야

중소기업계에선 한국 경제의 문제점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지목한다. 사회 전반의 불공정과 불균형이 팽배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지금 우리 경제는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공정하게 거래할 수 있는 경영환경 구조가 아니다’고 인식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발간한 불공정 행위 규제에 대한 중소기업 CEO 의견조사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의 57.7%가 ‘대기업의 공정경쟁 의지가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공정위 등 정부기관의 법 집행의지 부족(20.7%), 법 처벌기준, ‘적용범위 등 실효성 부족(17.9%)’ 등 현행 법체계에 대한 문제점도 제기됐다.

대·중소기업 간 공정경쟁 문화가 정착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로는 중소기업의 대기업 종속 현상이 꼽힌다. 중소제조업체의 국내 판매처는 대부분 대기업이나 타 중소기업 납품액이 대부분의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비교적 기업 규모가 큰 중기업의 경우 2015년 국내 판매액의 49.1%가 대기업에서 발생했다.

내수 중심 체제로 인한 경기 리스크에 취약하다는 점과 연구개발 역량 부족으로 인한 기술력 확보가 어렵다는 점도 중소기업의 아킬레스건이다. 이를 돕기 위한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은 시혜적 성격이 다분하다. 혜택을 누리기 위해 굳이 회사의 성장을 원하지 않는 ‘피터팬 증후군’도 발생하고 있다.

이정희 중소기업학회장은 18일 중기중앙회관에서 열린 ‘새 정부 중소기업정책 혁신 전략과 과제’ 세미나에서 “법인세율 차등, 공공기관 입찰 우대 등 중소기업 지위 유지 시 제공되는 다양한 혜택으로 인해 중견기업으로의 성장보다는 중소기업 지원정책의 수혜를 희망한다”며 “실제로 지난해 중견기업실태조사 결과, 중견기업의 6.9%가 중소기업으로의 회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이정희 중소기업학회장이 18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에서 열린 ‘새 정부 중소기업정책 추진전략과 과제’ 세미나에서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이정희 학회장은 이어 “단편적인 지원이 아닌 중소기업이 자생력과 혁신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성장 단계별로 체계적으로 지원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며 “현재는 정부 부처마다 유사한 중소기업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이 학회장은 “유사·중복 지원 정책을 조율하기 위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며 “중소벤처기업부를 신설해 중소기업 정책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학회장은 이와 함께 ▲공정 경쟁환경 정착을 위한 공정위 위상 강화 ▲성과 공유 확산으로 인한 일 하고 싶은 중소기업 만들기 ▲대·중소기업 성과 공유로 양극화 완화 ▲네거티브 규제 정책으로 벤처·스타트업 육성 ▲연구·개발(R&D) 정책 강화 ▲생계형 적합업종 법제화 및 사회안전망 강화로 소상공인 자립기반 확보 ▲상사형 벤더기업 육성으로 수출 확대 ▲중소기업을 위한 판로정책 강화 ▲투자 중심의 금융지원 확대 등을 제안했다.

홍지승 산업연구원 중소벤처기업연구실장은 “이 학회장이 제안한 혁신전략과 세부 이행과제는 시급한 과제로 차질없이 체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며 “다만, 전략적 중요도, 이행 난이도, 추진 방법, 성과발현 시기 등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정책을 세심하게 기획하고 추진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일하고 싶은 중소기업을 만들기 위한 전략과 관련,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해결하기 위해선 중소기업에 적합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근로시간의 단축, 최저임금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격차 해소 등의 사회적 이슈를 중소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에 필요한 방향으로 실행해야 한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0일 대선 후보로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를 방문해 남긴 방명록.

◆ 반발 심한 ‘근로시간 단축’.. 문재인 정부 강행 돌파할까

최근 중소기업계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을 방문해 비정규직 문제를 거론한 것을 놓고 말이 무성하다. 문 대통령은 지난 12일 취임 후 첫 현장 일정으로 인천공항공사를 찾아 “상시·지속적 업무, 생명·안전 관련 업무는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임기 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면서 “각 부처는 올 하반기 내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실태에 대해 전면 조사하고 비정규직 문제 해소를 위한 로드맵을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대해 정일영 인천공항공사 사장은 “현 정부의 국정과제인 비정규직 정규직화 원칙에 따라 올해 내 인천공항공사 소속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포함한 1만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답했다.

이 과정을 지켜본 한 중소기업의 임원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를 다룬 것은 노동 현안을 중점적으로 다루겠다는 신호로 읽힌다”며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문제가 다음 타깃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소기업계는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한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대선 기간 모든 기업의 근로시간을 현행 최장 주당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겠다고 공약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주당 법정 근로 40시간과 연장근로 12시간을 인정한다. 여기에 고용노동부 행정해석으로 토·일요일 각 8시간씩 휴일근로 16시간을 허용한다. 모두 합하면 주 7일 최장 68시간을 일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으로 휴일근로가 연장근로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우리 노동법은 법정 노동시간을 주 40시간, 한주에 연장근로를 12시간으로 해서 52시간으로 정하고 있다. 하지만 토요일·일요일 휴일 근로는 거기서 제외되는 것처럼 해석해왔다. 이걸 52시간으로 돌리고 법정 휴가도 제대로 준수해야 노동자들이 저녁시간과 휴일, 휴가를 보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중기중앙회 정책강연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중소기업계에선 인력 부족이 심각한 상황에 근로시간까지 단축하는 건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반발하고 있다. 근로시간을 단축하면 고용이 늘어날 것이라는 정치권의 발상도 인력 미스매칭이 심각한 중소기업의 실태를 모르는 이야기라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은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 새 정부의 전체적인 개선 방향성에는 동의하지만, 기업 규모에 상관없이 일괄 적용하면 결국 소상공인과 중소기업만 고스란히 충격을 받는다”며 “업종 등을 고려해 단계별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