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다 피차이(Sundar PichaI)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17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에서 열린 구글 개발자 회의 ‘구글 I/O’에서 “세상은 ‘모바일 퍼스트(mobile-first)’에서 ‘인공 지능 퍼스트(AI-first)’의 세계로 전환했다”고 강조했다.

모바일 퍼스트 시대의 구글 최고 파트너가 삼성전자였다면, AI 퍼스트 시대의 최고 파트너로는 LG전자가 부상하고 있다. LG전자는 이날 구글I/O에서 구글의 인공지능 스피커 ‘구글 홈(Google Home)’과 연동하는 스마트 가전을 공개했다. 구글 홈은 AI 서비스 ‘구글 어시스턴트(Google Assistant)’를 탑재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서 열린 구글 연례개발자회의(I/O)에서 선다 피차이 CEO가 구글 어시스턴트 기능을 소개하고 있다.

구글 홈에 “공기청정기를 켜줘(Talk to LG to start Air Purifier)”라고 말하면 ‘LG 시그니처 가습·공기청정기’가 자동으로 작동하는 식이다. 또 구글 홈은 LG 시그니처 가습·공기청정기가 파악한 실내 공기 상태를 음성으로 알려줄 수도 있다.

반면, 모바일 운영체제(OS)인 안드로이드 공급업체와 이에 기반한 단말기 제조업체로 환상의 호흡을 보여준 구글과 삼성전자는 적이면서 동시에 친구인 ‘프레너미(friend와 enemy의 합성어)’ 관계로 변화하고 있다. 구글이 자체 단말기 ‘픽셀(Pixel)'을 내놓았고 삼성전자(005930)는 자체 OS 타이젠의 생태계를 키우고 있다. AI 비서 분야에서는 구글 어시스턴트와 삼성 빅스비가 경쟁하고 있다.

◆ LG전자-구글, 깊어지는 밀월

선다 피차이는 이번 I/O에서 “구글의 모든 서비스와 제품에 AI를 접목해 인류의 삶을 더 윤택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AI를 무기로 사업영역을 가전, 자동차, 홈 등까지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AI 제국을 꿈꾸는 구글은 LG전자(066570)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구글이 AI 등 소프트웨어(SW)를 개발한다면 LG전자가 AI가 탑재될 스마트폰, 가전 등 하드웨어(HW) 기기를 생산하는 식이다.

구글과 스마트 홈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업체들

우선 가전 분야에서 LG전자는 초프리미엄 브랜드 ‘LG 시그니처’에 구글 홈을 적용하기로 했다. LG 시그니처 냉장고·세탁기 등이 그 대상이다. 앞으로 LG전자는 LG 시그니처가 아닌 일반 에어컨·오븐·건조기·로봇청소기 등 다른 스마트 가전에도 구글 홈을 적용할 계획이다.

소비자는 LG 스마트 가전에서 구글 어시스턴트의 다양한 AI 기능을 경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음성만으로도 세탁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하고 냉장고가 얼음을 더 만들게 하는 등 스마트 가전의 동작을 제어하고 모니터링할 수 있다.

LG전자는 구글 홈과 연동하는 스마트 가전제품을 이달 미국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주요 시장에 출시할 계획이다. 특히 구글 어시스턴트가 연내 한국어 지원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인 만큼 이르면 올해부터 국내 소비자들도 구글 홈 연동 스마트 가전을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구글, LG디스플레이 1조 투자 임박

구글은 LG디스플레이에 1조원 규모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설비 투자 의향도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구글 입장에서는 스마트폰, 가전 등 여러 사업에서 필요한 OLED 패널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고, LG디스플레이 입장에서는 설비투자 부담이 완화돼 ‘윈윈(WIn-WIn)’이다. 또 LG디스플레이는 구글이라는 거대한 정보기술(IT) 거인을 신규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다.

구글은 차세대 전략 스마트폰 ‘픽셀’에 탑재되는 OLED를 LG디스플레이(034220)로부터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한편 픽셀 위탁생산은 LG전자에 맡길 예정이다. 최근 LG전자는 2018년 구글이 출시할 예정인 차세대 전략 스마트폰 ‘픽셀3’의 물량을 수주했다. 대만 유안타증권사는 HTC 종목보고서를 통해 오는 2018년 2분기부터 LG전자가 픽셀3를 생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올해 하반기 출시하는 픽셀2의 일부 물량도 LG전자가 생산하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구글이 HTC를 대신해 LG전자를 파트너사로 결정한 것은 안정적인 제품 공급과 품질 때문이다. 지난해 HTC가 생산한 픽셀폰의 경우 출시 초기 품질과 수율 문제로 인해 제품 공급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으면서 신제품 효과를 제때 극대화하지 못했다는 판단으로 구글이 LG전자를 선택했다고 풀이된다.

구글의 전략 스마트폰 ‘픽셀’

◆ 구글-LG전자, 협력 왜?…관계 애매해진 삼성전자와 ‘거리 두기’

업계에서는 구글이 LG전자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배경 관련, 여러 분야에서 점차 경쟁 상대가 되고 있는 삼성전자와 ‘거리 두기’를 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도 삼성전자는 구글 안드로이드 사업에서 가장 큰 고객사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에서 판매량 3억644만대(20.5%)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2011년 이후 줄곧 선두를 달리고 있다. 삼성전자가 구글 안드로이드 생태계를 이끌고 있다면, 구글은 삼성전자에 안드로이드 OS를 제공하는 것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안드로이드 OS에서 독립하기 위해 타이젠 OS를 개발해 중저가폰과 가전, 스마트워치, 사물인터넷(IoT) 기기에 활용하면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삼성전자가 갤럭시S8에 빅스비를 탑재하면서 구글과 AI 시장을 놓고 경쟁구도가 만들어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갤럭시S8 시리즈에 탑재돼 있는 AI 음성인식 빅스비. 왼쪽 버튼을 누르면 실행된다.

삼성전자 빅스비는 비전, 음성, 리마인더, 홈 등 4가지 기능을 갖추고 있다. 이 기능은 구글 어시스턴트가 보유한 기능과 대부분 비슷하다. 사용자가 음성으로 질문하거나 명령을 내리면 AI가 그에 대한 답을 내놓거나 결과 값을 말해주는 것이다.

선다 피차이 구글 CEO는 이번 I/O에서 빅스비의 사물인식 기술인 비전과 비슷한 ‘구글 렌즈(Google Lense)’를 공개했다. 이 기술은 어시스턴트에 탑재돼 스마트폰으로 꽃이나 식당 메뉴판 등을 찍으면 꽃의 종류, 식당의 평판이나 메뉴, 가격 정도 등을 찾아 보여준다. 이는 삼성전자 빅스비와 같이 시각을 기반으로 한 AI 컴퓨터 기술이다.

올해 연말 구글 어시스턴트가 한국어 서비스를 시작할 경우 삼성전자 빅스비와 경쟁 관계를 구축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구글의 방대한 데이터로 딥러닝(심층학습·Deep learning) 작업을 거친 구글 어시스턴트가 막 걸음마를 뗀 빅스비에 비해 경쟁력을 높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구글에 따르면, 이 회사는 음성인식 기술 정확도를 향상해 음성인식 오류 비율을 2013년 23%에서 현재 4.9%까지 낮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