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강화 시 노후 선박, 친환경 선박 교체 경제적
최대 30% 선박 교체대상…"선박 공급과잉 내년에 해소" 전망도

올해 9월부터 선박 평형수(무게 중심을 잡아주기 위해 사용되는 바닷물) 규제가 시작되고 내년에 전 세계 물동량(물자가 이동하는 양) 증가율이 선복량(船腹量·배에 실을 수 있는 화물의 총량) 증가율을 웃돌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올해 하반기 선박 발주가 늘어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선박 발주 물량이 크게 줄어든 영향으로 선박 공급 과잉 현상도 내년쯤 해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

19일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업체 클락슨에 따르면 올해 들어 4월까지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은 471만436CGT(선박 건조 난이도를 고려한 표준 화물선 환산 톤 수)로 지난해 같은 기간 451만3624CGT보다 4.4% 늘었다. 척수는 179척으로 같다.

올해 4월까지 전 세계 발주 물량 중에서 한국 업체가 수주한 물량은 123만623CGT로 작년 같은 기간 18만6262CGT보다 크게 늘었다. 척수로도 작년 1~4월 10척에서 올해 같은 기간 34척으로 증가했다. 선박별로는 유조선(원유·석유제품·화학제품 운반선 등)이 6척에서 22척으로, 가스선(LNG·LPG선)이 1척에서 10척으로 늘었다.

조선사들이 자체적으로 집계한 수주 물량은 더 많다. 각 사에 따르면 현대중공업그룹은 올해 들어 4월까지 총 42척(25억달러·약 2조8100억원)을 수주했고 삼성중공업(010140)과 대우조선해양은 각각 6척(18억4000만달러), 7척(7억7000만달러)을 수주했다.

특히 4월 전 세계 발주 물량은 74만4962CGT로 3월보다 21.3%, 척 수는 59척에서 28척으로 절반 이상 줄었지만, 한국 업체들의 수주 물량은 3월 13만9118CGT(7척)에서 4월 33만6158CGT(12척)으로 오히려 늘었다. 전문가들은 올해 한국 업체가 강점을 가진 가스선과 유조선 발주가 늘면서 한국 업체들의 시장 점유율도 더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LNG 운반선.

◆ 내년 물동량 증가율, 선복량 웃돌아 공급과잉 해소 기대

클락슨과 신한금융투자는 올해의 전년 대비 선복량 증가율(공급)이 물동량 증가율(수요)을 웃돌아 선박 공급과잉이 올해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발주가 과도하게 이뤄진 영향이다. 선박 공급과잉이 심해지면 운임이 낮아져 선주들은 선박 발주를 꺼리게 된다.

그러나 내년에는 물동량 증가율이 선복량 증가율을 넘어서 공급과잉이 다소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신한금융투자는 내년 물동량이 2.9% 증가하는 가운데 선복량 증가율은 1.7%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2016년 발주량이 전년의 30% 수준에 불과한 1234만5130CGT에 불과해 선박 공급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황어연 신한금융투자 책임연구원은 “물동량과 선복량 지표가 좋아지면 운임 상승이 예상된다”며 “선주들은 2018년에 운임 상승 가능성을 보고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발주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내년부터 인도량 기준 수주잔고 지표가 올라가면 조선사들의 배 가격 협상력도 올라가게 된다. 인도량 기준 수주잔고 지표는 수주잔고를 인도량으로 나눈 값이다. 현재 몇년치 일감이 남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미래 일감을 충분히 확보한 조선사들은 가격을 올리면서 수주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또 계속 떨어지던 선박 가격이 이달 초 소폭 반등하면서 가격이 바닥을 다진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 12일 신조선가 지수는 122로 일주일 전보다 1포인트 올랐다. 선가지수는 1998년 선가를 100으로 잡아 전 세계에서 새로 만든 선박값을 평균해 지수화한 것이다. 선가지수는 2014년 11월 139에서 계속 하락해 120 초반을 유지하고 있다. 중고선가 지수도 86으로 일주일 전보다 1포인트 올랐다.

한 조선사 관계자는 “현재 가격이 바닥인지는 지나봐야 알겠지만, 새 배와 중고 배의 가격이 꾸준히 오르면서 가격 반등이 이뤄질 것이란 기대감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 9월부터 평형수 규제…“2020년 규제 본격화되면 최대 30% 선박 교체해야”

선박 환경 규제가 강화되는 것도 조선업체엔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현재 조선업체들이 기다리는 환경 규제는 크게 두 가지다. 선박 평형수 규제와 선박 연료 황산화물(SOx) 함유량을 3.5%에서 0.5%로 낮춰야 하는 규제다. 선박 평형수 규제는 올해 9월부터, 황산화물 규제는 2020년 1월부터 적용된다. 조선업체들은 강화된 환경 규제가 노후 선박 교체 주기를 앞당겨 신규 수주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선박 평형수는 선박의 무게 중심을 잡아주기 위해 사용하는 바닷물이다. 평형수는 출항할 때 배에 넣었다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배출하는데, 평형수에는 해로운 세균이 섞여 있어 국가 간 해양 생태계 교란의 주범으로 꼽히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생태계 교란을 막기 위해 올해 9월부터 평형수 처리 설비 설치를 의무화할 예정이다. 새 배는 건조 과정에서 이 장치 설치가 의무화되고 기존 배는 정기 검사를 할 때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황산화물은 대형 선박이 내뿜는 오염물질 중 하나다. 배가 배출하는 오염물질은 자동차의 수백 배에 달하기 때문에 항구가 많은 유럽은 특히 대기오염이 심각한 수준이다. 황산화물 규제를 지키려면 저유황 연료를 쓰거나 탈황기(Scrubber)를 설치해야 한다. 또 현재 연료로 쓰는 벙커C유 대신 LNG를 연료로 하는 선박으로 바꾸는 방법도 있다.

평형수 설치 장치를 새로 달거나 탈황기를 설치하면 비용을 회수하기까지 평균 5년 정도 걸리기 때문에 20년 이상의 노후 선박은 아예 새 배로 교체하는 게 경제적일 수 있다. 교보증권(030610)에 따르면 선종별로 20년 이상 된 선박의 비중은 벌크선(포장하지 않은 화물을 그대로 적재할 수 있는 화물전용선)이 9%, 유조선이 8% 등이다. 교체 대상을 15년 이상 된 배로 확대하면 LPG 운반선은 24.9%, 원유 운반선 19.4%, LNG 운반선 16.8%, 석유제품 운반선 16.8%, 컨테이너선은 13.4%에 달한다. 전체 배로 보면 약 30%다.

이강록 교보증권 연구원은 “선박과 관련한 다양한 규제가 시행될 예정이어서 선박 교체 시기가 앞당겨질 가능성이 크고 친환경 고효율 선박 기술을 보유한 국내 대형 조선소들이 수혜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