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기 힘들어 애 못 낳는다는 말이 괜한 엄살이나 핑계는 아닌 것 같다. 급여보다 더 빨리 오르는 집값도 우리나라가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기록하는데 한몫했다.

통계청이 올해 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1.17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다. 합계 출산율이란 가임 여성(15~49세)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지표로 나타낸 것이다. 올해뿐 아니라 최근 10여년간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1.07명에서 1.29명 사이를 오갈 정도로 낮다.

우리나라 2004~2015년 합계 출산율 추이.

최근 주택 가격과 출산율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연구 결과가 잇따라 발표되고 있는데, 관련 보고서와 논문을 살펴보면 집값 상승은 출산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출산율이 집값 변동에 좌우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주택 무주택자·세입자의 경우는 주거비 부담이 늘어나 출산율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소유자의 경우 주택 가격이 오르면 재산도 늘어남에 따라 출산율이 늘어났다.

올해 육아정책연구소가 발표한 ‘경기변동에 따른 주택가격 변동이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 논문을 보면 1985년부터 2014년까지 OECD 19개국을 분석한 결과 주택가격이 오를 때 출산율이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다. 무주택자의 경우 주택가격이 오르면 주거비 부담이 늘어나 육아에 쓸 돈이 줄거나 아이가 필요한 주거 공간을 확보하는데 필요한 비용도 늘어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논문에 따르면 주택가격지수가 1%포인트 오를 때, 출산율은 평균적으로 0.072명 감소했다. 주택가격이 많이 오르는 부동산 활황기에는 주택가격지수가 1%포인트 오를 때마다 출산율이 0.087명이 감소했고, 주택 시장 불황기에는 주택가격지수가 1%포인트 오를 때 0.062명이 줄었다. 집값 상승률이 클 때일수록 집값 상승이 출산율 감소에 더 큰 영향을 미친 셈이다.

조선일보 DB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정기 보고서에 실린 ‘주택가격과 출산의 시기와 수준’ 논문도 주택 매매가와 전세가가 오를 때 출산율이 낮아진다고 했다.

2009~2013년 우리나라 16개 시∙도 자료를 분석한 결과 주택가격이 오를수록 출산율은 낮아졌다. 주택 매매가와 합계 출산율과의 상관계수는 -0.70%로 나타났고, 전세가와 합계 출산율과의 상관계수는 -0.68로 조사됐다. 상관계수(-1.00~1.00)가 1에 가까울수록 상관도가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주거에 들어가는 비용이 높아질수록 출산율이 낮아지는 반비례 관계가 뚜렷한 것으로 확인된다.

유럽과 미국에서 실시한 조사에서도 결과는 비슷하다.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의 경제학자 세밧 아크소이가 발표한 논문 ‘영국 주택가격과 출산율’에서도 주택 가격이 오르면 세입자의 출산율이 낮아진다는 상관관계가 증명됐다. 이 논문에 따르면 영국의 경우 주택 가격이 1만파운드 오르면 주택 소유자는 출산율이 3.8% 오르는 반면, 세입자는 4.4% 낮아졌다.

멜리사 커니(Melissa S. Kearney) 미국 메릴랜드대 경제학 교수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연구·통계 수석이코노미스트 리사 데틀링(Lisa J. Dettling)이 공동 집필한 ‘주택 가격과 출산율’이라는 논문에도 집값과 출산율의 상관관계를 설명하고 있는데, 대도시 주택 가격이 10% 오를 때, 집 주인의 출산율은 4% 오르지만, 세입자의 출산율은 1% 정도 하락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집값 상승이 출산율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분명 있다”면서도 “주택 상승률 말고도 출산율을 좌우하는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해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