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 곡물 과자를 생산하는 농업회사 A사는 2015년 동남아시아 바이어로부터 '자유무역협정(FTA) 원산지 증명서'가 필요하단 요청을 받고 고민에 빠졌다. 그간 FTA는 신문에나 나오는 걸로 생각하고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 한국무역협회 FTA 종합지원센터 도움으로 원산지 증명을 받은 A사는 해외 바이어들에게 '공인 한국산'을 강조하며 신뢰를 쌓았다. 2014년 6000여만원에 불과하던 수출액은 작년 3억6000만원으로 6배 늘었고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5년 10%에서 올해는 25%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15년 태국·싱가포르에 이어 중국·베트남에도 수출길을 열었다.

장면 2 경기도 평택에 있는 B사는 2009년부터 자동차 시트에 들어가는 부품을 만들고 있다. 2014년부터 체코에 수출했는데, B사는 한·EU(유럽연합) FTA에 따라 수출자가 원산지 증명서를 받으면 수입자가 관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B사는 관세 당국으로부터 4개 품목에 대한 원산지 수출자 인증을 받았다. B사 제품은 4.5~6.5% 관세가 적용됐는데, 한국 원산지 인증을 받으면서 무관세(0%)가 됐다. 수출액은 2014년 1만4000달러에서 2015년 13만3000달러로 950%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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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는 국가 간 상품·서비스 교역에 대한 관세와 비관세 무역장벽을 없애거나 완화해, 서로 간의 교역을 늘리는 무역협정이다. 2004년 우리나라와 칠레 간 FTA가 처음으로 발효된 뒤 한국은 현재 52개 국가와 15개 FTA를 맺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만 중국을 비롯한 6건 신규 FTA를 타결했으며, 세계 10대 교역국 중 미국, 중국, 유럽연합(EU)과 모두 FTA를 체결한 유일한 나라다. 주요국뿐만 아니라 인도·베트남 등 신흥국까지 FTA를 맺었다.

FTA 체결 국가 시장 규모는 전 세계 총생산 기준으로 2012년 55.2%에서 작년 77%로 크게 늘었다. 세계 3위 수준이다. FTA 체결국과의 교역 비중도 같은 기간 35.4%에서 71.1%로 늘어났다. FTA 체결국으로부터의 외국인 투자 유치 비중은 75.6%에 달하며, 우리 수출 중 73.8%는 FTA 체결국으로 들어가고 있다. 산업과 통상이 연계되면서 기업 의견이 통상협정에 반영됐고 이에 따라 FTA 활용률도 2012년 51.5%에서 지난 해는 65%까지 증가했다.

◇52개국과 FTA… 전 세계 GDP 77%

정부는 FTA로 '경제 영토'를 계속 넓히고 시장을 다변화해,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와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보복을 극복하겠다는 계획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3월 코스타리카,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온두라스, 파나마 등 중미 5개국과 FTA에 가서명했다. 정식 서명과 국회 비준을 거치면 발효된다. 중미 국가들이 아시아 국가와 최초로 체결한 FTA로 북미(한·미, 한·캐나다 FTA)와 남미(한·칠레, 한·페루, 한·콜롬비아 FTA) 시장을 연결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정부는 또 지난 2일 협상 중인 한·이스라엘 FTA가 실질적 타결에 근접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니카라과 수도 마나과에서 한국과 중미 5개국이 FTA 타결에 합의했다. 아르날도 카스티요 온두라스 경제개발부 장관,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올랜도 솔로자노 니카라과 통상산업부 장관, 다이아나 살라사르 파나마 통상산업부 차관, 존 폰세카 코스타리카 대외무역부 차관(왼쪽부터).

정부는 올해 상반기 중 한·메르코수르(MERCOSUR) FTA 협상 개시를 위해 지난달 공청회를 열었다. 메르코수르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 베네수엘라 5개국으로 구성된 남미공동시장(Mercado Comun del Sur)으로, 대외통상협상에 참여하지 않는 베네수엘라를 제외한 4개국과 협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메르코수르 인구는 2억9000만명으로 남미 전체 인구의 70%에 달하고, 총생산은 2조7000억달러로 남미의 76%다. 정부는 메르코수르와 FTA를 체결하면 자동차 및 부품, 전자부품, IT제품, 기계류 등 제조업 중심으로 수출이 약 27억달러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중·남미, 유라시아… 경제 영토 넓힌다

정부는 멕시코,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걸프협력회의(GCC)와의 FTA도 추진 중이다. 유라시아경제연합은 러시아,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키르기스스탄, 아르메니아 등 5개국으로 구성된 경제공동체다. 걸프협력회의는 사우디, 카타르, UAE, 쿠웨이트, 오만, 바레인 등 6개국으로 구성된 지역협력기구이자 관세동맹으로 역외 공동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이 외에도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한·중·일 FTA 등 동아시아 중심의 메가 FTA 협상에도 참여하고 있다.

산업계 입장을 반영해 이미 체결된 FTA 자유화율을 높이는 협상도 진행 중이다. 최근 빠르게 성장하는 아세안(ASEAN) 및 인도와의 무역협정이 그 대상이다. 특히 인도의 경우, 주력 수출품인 철강·석유화학·자동차부품 등을 중심으로 상품 시장 추가 개방과 원산지 기준 개선을 추진 중이다. 아세안의 경우, 올해가 FTA 10주년이 되는 해로 정부는 기업들 아세안 시장 접근을 촉진하기 위해 FTA개선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인도와는 올해, 아세안은 내년 내 타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최근 미·중을 중심으로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FTA 체결을 통한 경제 영토 확대로 시장을 다변화해야 한다"며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한·미 FTA를 체결했던 만큼 새 정부에서도 FTA를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