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준비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은퇴 전문가인 필자를 만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이다. 필자의 대답은 언제나 "은퇴하지 마십시오"이다.

십중팔구 되돌아오는 말은 "에이, 은퇴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다. 월급쟁이뿐 아니라 자영업자나 전문직, 오너 사장도 언젠가는 은퇴하기 마련이다. 물론 자영업자와 전문직, 오너 사장의 경우 자기 재량에 따라 남들보다 좀 더 오래 일할 수도 있다. 월급쟁이로 불리는 임금 근로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자신의 의사가 아니라 회사의 형편에 따라 언젠가는 은퇴를 해야 한다. 이 같은 임금 근로자가 전체 취업자의 75%가 넘는 2000만 명에 달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주된 직장에서 물러나는 나이가 53~54세로 주요국 중에서도 상당히 빠른 편이다. 기대 수명이 82세를 넘어서고 있으니 근로기간도 늘어나면 좋겠지만 오히려 더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2016년부터 정년이 60세로 의무화되기 시작했지만 공무원과 공기업 등을 빼놓고는 근무 기간이 많이 늘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50대 초·중반에 회사를 그만두면 다른 곳에 취직하기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식당이나 커피전문점 등 자영업에 뛰어들지만 성공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는 통계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적응력이 떨어지는 데다 준비가 잘 안 된 상황에서 창업할 뿐 아니라 업종 내 지역 내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치밀한 사전 준비와 시장 조사도 없이 창업에 성공한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은퇴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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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은퇴연령 53~54세로 빨라… 은퇴 준비는 신입사원부터

은퇴 준비의 제1 원칙은 "은퇴 준비는 은퇴할 때쯤 하는 게 아니라 은퇴하기 훨씬 전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르바이트 또는 인턴을 하는 등 내 통장에 소득이 들어오면서부터 곧바로 시작해야 하는 것이 은퇴 설계이고 그에 따른 은퇴 준비다.

30여 년 전 미국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분이 첫 직장으로 벨연구소(Bell Laboratories)에 입사했다. 며칠 후 사내 연수를 받으라고 해서 갔더니 주제가 황당(?)하게도 '당신의 은퇴를 설계하고 준비하라'였다. "아니,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은퇴 준비라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은퇴가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오르는 걸 보면 미국이 은퇴 분야에서도 선진국임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도 은퇴 설계 또는 은퇴 준비는 40~50대가 되어야 시작하는 일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20~30대는 이제 막 돈을 벌기 시작해서 먹고살기도 힘든데 무슨 은퇴 준비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물론 그간에는 은퇴 설계 또는 은퇴 준비라는 단어조차 생소한 환경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100세 시대, 특히 은퇴한 후에도 30~40년 이상을 더 살아야 하는 시대를 맞으면서 은퇴 설계와 그에 따른 은퇴 준비는 하루라도 젊을 때 해야 하는 일생일대의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저금리 시대, 복리 효과 놓쳐서는 안 돼

필자가 은퇴 준비를 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법의 주문이 있다. '천천히 서둘러라(Hurry up slowly)'이다. 큰 욕심 부리지 말고 꾸준히 그러나 긴장을 늦추지 말고 은퇴와 노후를 준비하라는 뜻이다. '천천히'와 '서둘러라'는 서로 모순되는 반대어를 결합시켜서 나름대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다.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좌우명인 이 말은 이후 많은 유명인의 좌우명이자 제시어로 사용되었다.

돈을 벌기 시작하는 20~30대라면 앞으로 적어도 20~30년 이상 소득을 얻을 수 있으므로 크게 서두를 필요가 없다. 하지만 우리 인생이 늘 그렇듯이 별생각 없이 흥청망청 지내다 보면 어느새 40대를 넘어 50대가 되어 은퇴를 눈앞에 두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천천히 준비하면서도 나름 긴장을 늦추지 않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 바로 은퇴 준비인 것이다. 저성장·저소득·저금리 시대일수록 더 다잡아야 하는 것은 물론 먼저 일어나는 새가 되어야 한다. 저금리 시대라고는 하지만 먼저 시작하면 차곡차곡 쌓이는 원금에다 이자에 이자가 붙는 복리(複利)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40~50대인 경우에도 은퇴 준비는 천천히 서둘러야 하는 과제이다. 은퇴 준비에서 너무 늦었다는 말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마음이 급해지기는 하겠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급한 마음에 귀가 얇아지면 다른 직장을 구하거나 창업도 실패로 끝나기에 십상이다. 더욱이 이런 사람들을 노리는 사기꾼들이 널려 있음도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은퇴가 가까울수록 차분하게 은퇴 후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어떻게 되겠지 하는 안이함과 내가 왜 그랬지 하는 후회가 내 노후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