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전북 정읍에 있는 안전성평가연구소(KIT)의 인공 미세 먼지 실험실. 10㎡(약 3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서 방독면과 청정복을 착용한 연구원 2명이 미세 먼지 발생 장치를 점검하고 있었다. 전원을 켜자 기계와 튜브로 연결된 투명 플라스크 안이 10초도 안 돼 뿌연 공기로 가득 찼다. 플라스크 안쪽에 묻은 물질을 긁어내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했더니 가느다란 탄소 구조물이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실제 미세 먼지와 똑같은 모양의 인공 미세 먼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유동현 연구원은 "사진만 놓고 보면 실제 미세 먼지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모양이 흡사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25일 전북 정읍의 안전성평가연구소(KIT) 흡입독성연구센터에서 연구원들이 인공 미세 먼지 제작 과정에서 나온 탄소 찌꺼기를 살펴보고 있다. 연구원들은 중금속이 많은 중국발(發) 미세 먼지를 그대로 모방한 인공 미세 먼지를 만들어 동물을 대상으로 독성 실험을 할 계획이다.

중국발(發) 미세 먼지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미세 먼지가 실제로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규명하는 연구에 착수했다. 중국에서 건너오는 미세 먼지 상당수가 중국 동부 해안 지역 공장 지대에서 배출된 중금속을 대거 포함하고 있다. 연구진은 중금속이 많은 미세 먼지를 인공적으로 만들어 동물실험을 통해 미세 먼지가 어떤 독성을 지니고 있는지 밝히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미세 먼지 연구는 '오염 물질이 많은 지역에서 어떤 병에 걸린 사람이 많았다'는 식의 역학(疫學)조사 위주였다. 미세 먼지가 동물의 몸 안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질병에 관여하는지 밝히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다.

중금속 많은 중국형 인공 먼지로 실험

일상생활 속에서 마시는 미세 먼지는 주성분이 석유나 석탄 같은 화석연료에서 나온 탄소다. 그 밖에 모래에서 나온 규소, 공장에서 발생하는 중금속과 황산염, 질산염 등의 유해 물질이 섞여 있다. 비중은 탄소(50%)에 이어 황산염·질산염·암모늄(30%), 중금속(10%) 순이며, 도시나 농촌 등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KIT 흡입독성연구센터는 입자 크기가 10㎛(마이크로미터·1㎛는 100만분의 1m) 이하인 부유 먼지부터 2.5㎛ 이하 미세 먼지까지 만들 수 있다. 더 나아가 단순 미세 먼지에 중금속이나 황사와 같은 유해 물질을 결합하는 기술도 갖고 있다.

이 기술을 적용한 것이 인공 미세 먼지 발생기다. 올해 개발을 완료한 이 장치는 화력발전소나 공장, 자동차 엔진에서 화석연료가 타는 과정을 모방해 제작했다. 순수 탄소 성분으로 이뤄진 10㎝ 길이의 흑연 덩어리에 강한 전기 스파크를 가하면 미세 먼지 크기의 알갱이들이 떨어져 나온다. 이 검은색 가루를 섭씨 1000도까지 올라가는 용광로에 넣고 가열하면 중금속·황산·질산 등의 물질과 화학반응을 일으켜 서로 엉겨 붙는다.

연구진은 이 발생기를 통해 중국발 미세 먼지 환경을 똑같이 재현하는 데도 성공했다. 국내 미세 먼지 속 중금속은 87%가 중국에서 건너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지난해 서울 도심 공기의 미세 먼지를 분석했더니 납이 다량 발견됐는데, 모두 중국에서 온 것으로 확인됐다. 납은 생산지에 따라 동위원소 비율이 달라진다. 국내에서 검출된 미세 먼지 속 납의 동위원소 비율은 중국의 납과 일치했다. 납·카드뮴·아연 같은 독성 중금속은 코나 기관지를 통해 걸러지지 않고 바로 폐 안에 달라붙기 때문에 인체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유동현 연구원은 "다른 성분보다 납·카드뮴 등 중금속 비중이 높은 미세 먼지를 별도로 만들어 동물실험을 해보면 중국발 미세 먼지가 체내 질환에 악영향을 미치는 원인과 과정을 밝혀낼 수 있다"고 말했다.

◇쥐 실험으로 미세 먼지 독성 분석

KIT는 조만간 쥐가 미세 먼지에 노출되는 시간을 2주와 4주, 13주로 나눠 실험할 계획이다. 미세 먼지 농도도 1㎥당 고(300~500㎍·1㎍은 100만분의 1g)·중(300㎍ 이하)·저(100㎍ 이하)농도로 나눈다. 연구진은 쥐 실험에 이어 덩치가 큰 개나 원숭이에 대한 실험도 검토하고 있다.

이규홍 흡입독성연구센터장은 "인공 미세 먼지로 중국발 미세 먼지의 독성을 밝히면 대기오염이 유발하는 질병을 치료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며 "화장품 제조 업체들도 연구소에 미세 먼지로 인한 피부 독성을 실험할 수 있는지 문의가 오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