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이던 지난달 중소기업중앙회의 정책 발표회에 참여했을 때 적은 방명록. 문 대통령은 “중소기업 천국을 만들겠습니다”라고 썼다.

중소기업청을 중소벤처기업부(部)로 승격하는 정부조직 개편이 향후 문재인 대통령의 중기(中企) 정책 방향을 가늠할 열쇠로 부상할 전망이다. 현재의 중기청 위상과 조직으로는 문 대통령의 각종 중기(中企) 정책을 추진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 활동했던 복수(複數)의 중기 정책 참모들은 10일 "중소벤처부 신설은 역대 정부와 다른 경제 정책 노선을 보여주는 핵심"이라며 "신설 부처가 앞으로 약속어음·연대보증제 폐지 등 주요 중기 정책을 추진하는 주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산업통상자원부, 미래창조과학부 등 여러 부서에서 중소벤처부 신설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전달해오고 있지만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그동안 여러 차례 "정권이 바뀌었다고 정부 조직을 심하게 흔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해온 만큼 정부 조직 개편 전에 '원 포인트'로 중소벤처부만 신설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중소벤처부 신설해 약속어음 폐지 등 친(親)중기정책에 힘 실어

중기청의 부(部) 승격은 중기 정책이 대기업 정책과 같은 위상을 갖는다는 의미다. 현재 중기청은 산업통상자원부 소속의 외청(外廳)이며 차관급인 중기청장은 국무위원이 아니다. 중기청이 중기 관련 법률을 제안하거나 시행령·시행규칙을 고칠 권한이 없다는 뜻이다. 산업부에 보고하면 산업부 장관이 판단해 본인 명의로 안건을 국무회의에 올리고 법안 발의를 한다. 조직도 중기청(본부 기준 고위공무원 8명, 보직 과장 25명 등 총 353명)은 산업부(차관 2명, 고위공무원 29명, 보직 과장 77명 등 860명)의 절반도 안 된다.

지난달 10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중소기업중앙회를 찾은 문재인(가운데) 당시 대통령 후보에게 박성택(오른쪽) 중소기업중앙회장과 한무경(왼쪽) 한국여성경제인협회장이 중기 정책 제안서를 전달하고 있다.

중기청의 한 관료는 "현재는 산업부 눈치 안 보고 일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그는 "작년 말 중기청이 대기업 한 곳에 중소기업과의 불공정 거래를 경고했더니, 다음 날 산업부에서 '알아봤더니 대기업 측 논리도 일리가 있다'고 전화가 왔었다"면서 "현재 중기청은 산업부와 논쟁할 상대가 안 된다"고 말했다.

새로 생길 중소벤처부는 약속어음제·연대보증제의 단계적 폐지를 강하게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중기청은 그동안 대기업이 부도나면 약속어음을 받고 일하는 하도급 기업들이 연쇄 부도나는 부작용을 없애자고 주장해왔다. 중기청은 "납품 즉시 현금 결제 관행을 정착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개인들도 사용하는 약속어음 자체를 없앨 수 없다"(법무부), "주요 담보 수단으로 쓰이는 어음을 폐지하면 부작용이 더 크다"(금융위원회)는 논리에 막혀 별다른 진전을 못 봤던 게 현실이다.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중기 지원 예산도 늘어날 전망이다. 대통령은 임기 내 중소기업 연구개발(R&D) 지원 금액을 2배로 확대하기로 했다. 올해 9018억원인 지원금이 1조8000억원대로 늘어나는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 정책은 중기업계와 갈등의 불씨

중소기업중앙회의 관계자는 "문 대통령 공약은 중소기업계가 바라던 정책들을 대부분 공약으로 채택할 정도로 친(親)중기 성향"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주당(週當)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입장과 중소기업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현재 최대 68시간인 주당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중소기업계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가뜩이나 취약한 중소기업이 인건비 부담을 버티지 못해 와르르 무너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중소 제조업체의 경우 많게는 30% 정도 인건비 부담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기존 직원의 근로시간 감소만큼 추가로 생산직 직원을 고용하려면 외국인 근로자 채용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근로시간 단축 문제는 중소기업계와 충분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고 국회 내 다른 정당과 논의하면서 진행할 것"이라며 "정권 초기에 밀어붙이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