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4월 22~28일)는 '세계 별밤 주간(International Dark Sky Week)'이었다. 2003년 한 미국 여고생이 "100년 전의 어두운 밤하늘을 되찾자"고 제안한 것이 계기가 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해외에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대표적인 과학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지구의 날'(4월 22일)을 시작으로 일주일 동안 미국 전역에서 스타 과학자의 강의가 열리고, 다시 밤하늘을 어둡게 하는 방법을 논의하는 시민·학자 토론회가 개최되는 등 수많은 사람이 별밤을 되찾기 위해 머리를 맞댄다.

사람들이 밤하늘을 지키기 위해 나서는 이유는 갈수록 '빛 공해(light pollution)'가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빛 공해는 지나친 인공 조명으로 인해 밤에도 낮처럼 밝은 상태가 유지되는 현상을 말한다. 생활을 방해할 정도의 눈부신 빛이 미세 먼지나 지구온난화처럼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생태계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빛 공해는 세계적인 환경 이슈로 떠올랐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유럽 인구의 60%, 북미(北美) 인구의 80%가 빛 공해 때문에 더 이상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층 건물에서 밤새 뿜어져 나오는 불빛과 화려한 네온사인 조명이 우리의 시야를 가린 것이다. 지난 50년 동안 전 세계 빛 공해 수준은 매년 6%씩 증가했다. 지난해엔 세계 인구 3분의 1이 맨눈으로는 밤에 은하수를 볼 수 없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밤하늘이 실종된 것이다.

인공 조명이 암 유발하고 생태계도 교란

빛 공해는 단순히 은하수나 별을 볼 수 있느냐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정부의 '빛 방사 허용 기준'은 조명의 밝기가 10럭스(Lux·촛불 한 개에서 1m 떨어진 곳의 밝기) 이상이면 빛 공해로 간주한다. 이 밝기에선 사람의 생체리듬이 흔들리고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가 억제된다. 멜라토닌이 부족한 상태가 오래가면 인체는 수면 부족과 면역력 저하로 건강에 이상이 생긴다. 네덜란드 레이던대 의대 연구진이 지난해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인공조명에 오랫동안 노출된 생쥐는 골밀도와 골격근이 급격히 감소했고, 만성 염증이 나타났다. 최근에는 장기간 야간에 인공 조명에 노출된 여성은 유방암 발생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빛의 범람은 생태계 전반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다. 캐나다의 시민단체 FLAP에 따르면 매년 수억마리의 철새가 밤에 북미 상공을 날아가다가 건물에 충돌해 죽거나 다친다고 한다. 대부분 도시의 밝은 불빛에 시야가 가려지거나 방향을 잃은 탓이다. 농작물 생산량도 떨어진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야간에 20럭스의 인공 조명에 장기간 노출되면 들깨는 98%, 벼는 20%가량 수확량이 줄어든다.

빛 공해는 물에 사는 생물에도 영향을 미친다. 물벼룩은 낮에는 호수 바닥에 있다가 밤이 되면 수면 위로 올라와식물성 플랑크톤을 먹는다. 하지만 야간에도 물가 주변을 밝히는 조명이 늘면 물벼룩이 물 위로 올라오지 않게 되고, 결과적으로 식물성 플랑크톤 번식이 늘어 녹조나 적조로 이어질 수 있다. 이스라엘 바르일란대 연구팀은 지난해 산호초가 해안 도시의 불빛으로 번식률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산호초는 보름달이 뜨는 시기에 맞춰 정자와 난자를 바다로 퍼뜨려 체외 수정을 하는데 인공 조명 때문에 때를 맞추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세계 최악의 빛 공해 지역

빛 공해는 특히 우리나라가 심각하다. 미국과 독일, 이탈리아 국제 공동 연구진은 지난해 6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세계 빛 공해 지도'를 발표했다. 여기에서 한국은 '빛 공해에 가장 많이 노출된 국가'로 분류됐다. 연구진이 지난 10년간 지구관측위성이 세계 3만곳에서 밤에 촬영한 사진을 분석한 결과, 한국은 빛 공해 지역이 전체 국토의 89.4%를 차지해 이탈리아(90.4%)에 이어 주요 20국(G20) 중 2위로 나타났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대도시의 밤거리를 걷다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전문가들은 가로등이나 간판 등 인공 조명이 너무 많고, 빛이 지면뿐 아니라 위로도 향해 있기 때문에 사방으로 빛이 퍼져나간다고 지적한다.

최근 국내에서 심각해지고 있는 미세 먼지와 황사와 같은 대기오염도 빛 공해를 악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 공동 연구진은 "지상의 빛이 미세 먼지 같은 공기 중 입자에 반사되면서 다시 지면으로 돌아가 도시가 더 밝아지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 각국은 빛 공해 해결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서울시는 세종로와 남대문로 등 일부 도로의 가로등에 센서를 달아 심야 시간 교통량에 따라 밝기를 자동으로 조절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기업을 중심으로 오후 8시 이후 사무실 빌딩의 창문을 가려 외부로 나가는 빛을 줄이거나, 최소한의 실내 조명만 남기고 소등하는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일부에선 가로등 사용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도시가 어두워지면 강력 범죄가 늘어난다는 반론도 있지만 미국 법무부 통계국에 따르면 미국에선 폭력·강도 범죄의 67.5%가 낮 시간인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발생한다. 도시의 야간 밝기와 범죄율 상관관계가 생각보다 높지 않다는 뜻이다. 이탈리아 빛공해과학기술연구소의 파비오 팔치 박사는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해 만든 교토 의정서처럼 조명용 전기 사용을 줄여나가려는 국제적 합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