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보안 기술로 기대를 모아온 홍채(虹彩) 인식이 금융·쇼핑·보안 업계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번거로운 공인인증서 없이 눈을 뜨고 스마트폰 카메라를 쳐다보는 것만으로 금융 사이트에 로그인하고 계좌를 이체하거나 온라인 쇼핑몰에서 상품 구매·결제까지 가능한 시대가 열린 것이다. 또 홍채 인식 기능이 탑재된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S8이 인기를 끌면서 중국 화웨이·샤오미, 미국 애플 등도 홍채 인식 스마트폰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마켓앤드마켓에 따르면 홍채 인식 시장은 연평균 23.4%씩 성장해 2020년이면 4조원 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IT 전문매체 와이어드는 "번거롭게 스마트폰을 조작하지 않아도 되는 홍채 인식의 등장은 사람의 몸 자체가 보안카드가 되는 영화 같은 시대를 앞당길 것"이라고 평가했다.

금융업계 앞다퉈 홍채 인식 도입

홍채 인식을 이용한 인증 서비스에 가장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분야는 금융·증권 업계이다. 3일 금융 업계에 따르면 SK증권·유진투자증권·삼성증권이 지난달부터 홍채 인증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들은 공인 인증서나 보안카드, 비밀번호 없이 홍채 인증만으로 모바일 앱(응용 프로그램)에 로그인해 주식거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IBK투자증권·NH투자증권·메리츠종금·하나금융투자증권 등도 홍채 인증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은행권도 앞다퉈 서비스 도입에 나서고 있다. KB국민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은 계좌 이체와 결제 등 모바일뱅킹의 모든 서비스를 홍채 인증만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동부화재·KB손해보험 같은 보험사와 삼성카드·하나카드 등 카드업계도 홍채 인증 서비스를 출시했다. 온라인 쇼핑을 하면서 카드 결제가 필요할 때도 홍채 인증만 하면 된다.

금융·쇼핑 업체들이 앞다퉈 홍채 인증 서비스에 뛰어들고 있는 이유는 홍채 인식이 가장 안전하고 간편한 보안 기술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홍채 인증은 스마트폰 전면에 탑재한 적외선 카메라로 안구(眼球) 속 홍채 주름과 돌기, 굴곡의 형태를 읽어 인증에 사용한다. 김건우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휴먼인식기술연구실장은 "홍채 주름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면서 "일정한 규칙이 없이 자연적으로 형성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특정 모양의 홍채나 만능열쇠 같은 홍채를 만들어낼 수 없다"고 말했다. 개개인의 홍채 정보는 암호화돼 스마트폰에 보관되기 때문에 해킹이나 복제 우려도 거의 없다. 실제로 IT 전문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최근 "삼성전자 갤럭시S8의 홍채 인증 기술은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사용하는 지문 인식보다도 훨씬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FBI의 지문 인식은 열 손가락을 모두 인식한다고 해도 130개 특징만 잡아내지만 갤럭시S8의 홍채 인식 카메라는 한 번에 200개 특징을 잡아낸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홍채 인증 소프트웨어 무료 공개하며 시장 이끌어

홍채 인식 기능을 갖춘 스마트폰은 2015년 일본 후지쓰가 가장 먼저 내놨지만 당시에는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갤럭시노트7에 이 기능을 탑재했지만 발화로 인한 제품 단종으로 빛을 보지 못했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홍채 인식 스마트폰은 삼성전자의 갤럭시S8이 유일하다. 삼성전자는 미국 벤처기업인 프린스턴 아이덴티티가 개발한 홍채 인식 기술을 이용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홍채 인증을 이용한 생체 인증 소프트웨어를 금융사들에 무료 제공하며 서비스 확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금융사 제휴를 통해 모바일 금융거래 서비스인 삼성페이를 활성화할 수 있다"면서 "장기적으로 온라인 쇼핑몰과 의료 서비스 등에도 홍채 인증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스마트폰 업체들도 속속 홍채 인식 기술 채택에 나서고 있다. 애플은 올가을 출시할 차기작 아이폰8에 홍채 인식 기능과 안면 인식 기능을 동시 탑재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화웨이와 샤오미 등은 이미 홍채 인식 스마트폰을 개발 완료하고 출시 시기를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자업계 한 관계자는 "올해가 홍채 인식이 프리미엄 스마트폰의 기본 기능으로 탑재되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