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강원도 강릉에 있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강릉분원. 정문으로 들어서자 2500㎡(약 750평) 규모의 대형 플라스틱 온실 4개동이 눈에 들어왔다. 온실로 들어가니 다소 무더운 느낌이 들었다. 이 날 기온은 섭씨 16도였지만, 온실 안의 온도계는 26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강릉분원에 설치된 스마트팜 연구시설.

밭고랑처럼 나란히 설치된 금속 구조물 위에서는 토마토가 유인줄을 따라 위로 자라고 있었다. 바닥에는 흙이 없다. 토마토는 공중에 떠있는 금속 구조물 위 네모난 상자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고 있었다. 돌에서 추출한 섬유의 일종인 암면에 토마토를 심고 물과 양분이 당긴 양액을 부어가며 키우는 토마토 온실이다.

노주원 SFS(Smart Farm Solution) 융합연구단 단장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온실 같지만 사방에 설치된 각종 센서와 카메라가 온실 환경과 토마토의 생육 상태에 대한 온갖 정보를 실시간으로 측정해 서버로 보내고 있다”’면서 “이를 토대로 정보기술(IT)과 에너지기술, 식품공학, 로봇 등의 각 분야 전문가들이 스마트팜 구축에 필요한 첨단 기술들을 개발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 잎이 내뿜는 미세한 수분까지 측정… “인공지능이 온실 제어”

발달된 기술은 이미 농업에도 상당 부분 적용됐다. 여름철 온실 내 기온이 너무 많이 오르면 자동으로 지붕이 열리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양의 물과 양분을 공급하는 풍경은 이제 한국의 농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연구진은 이를 뛰어넘는 정밀제어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여름에 덥다고 지붕을 열면 온도가 내려가지만 습도가 기준치 이상으로 높아질 수 있다. 얻는 것이 있는 대신 잃는 것도 있는 셈이다. 온도와 습도 뿐만이 아니다. 작물이 자라는 데는 이산화탄소 농도와 현재의 생육 수준 등도 모두 변수로 작용한다. 섣불리 지붕을 열었다가 이 균형이 무너질 수도 있다.

연구진은 센서를 이용해 온도와 습도, 이산화탄소 농도 등을 측정하고, 카메라로 토마토의 크기, 이파리의 상태, 줄기의 생육 정도 등의 정보를 수집한다. 잎의 증산량까지 적외선 센서로 측정해 의사 결정에 활용한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을 활용한 기술도 개발됐다. 연구자가 전용 프로그램이 깔린 스마트폰으로 찰칵 사진만 찍어도 토마토는 물론 줄기가 얼마나 자랐는지까지 각종 정보가 서버로 들어간다.

이렇게 서버로 모인 정도는 데이터베이스가 되고, 소프트웨어의 판단을 통해 온실 제어에 활용된다. 이 시스템은 지식 기반, 인공지능 기반인 것이 특징이다. 김재영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책임연구원은 “예를 들어 23도로 설정해 둔 온도보다 기온이 올라간다고 해도 창문을 열지 않을 수도 있다”면서 “빛의 양 등을 보고 앞으로 실내 환경이 어떻게 변할것인가를 예측해 대응한다”고 설명했다. 노주원 센터장은 “데이터가 쌓이면 스마트폰으로 토마토를 찍는 순간 수확량이 얼마나 될지까지 바로 알 수 있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강릉분원에서 한 연구원이 스마트폰으로 토마토 사진을 찍어 서버로 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 저렴한 한국형 스마트팜 시스템 보급이 목표

바로 옆 온실 바닥에는 마그네틱 선이 차선처럼 그려져 있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연구 중인 무인이송로봇이 다니는 길이다. 로봇은 작업관리 서버와 연결돼 있다. 작업 스케줄을 미리 입력해둔 다음 작업자(인부)가 온실에 들어가 로봇에 스마트폰을 꽂으면 로봇의 움직임이 시작된다.

로봇은 작업자를 따라다니며 수확한 토마토를 받아낸다. 이 로봇은 자율주행 기능, 수동주행 기능, 추종 기능 등으로 상황에 따라 다르게 작동시킬 수 있다. 양승환 박사는 “네덜란드 등 농업 선진국의 대형 온실에서는 이미 사용하는 장비이지만, 너무 비싼 것이 단점”이라면서 “규모가 작은 한국의 농가에서도 쓸 수 있도록 경제성 있는 이송로봇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중앙제어실에서는 한국식품연구원 연구진이 스마트팜 정보활용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었다. 컴퓨터에 이 날(26일) 약간 붉은 빛이 도는 정도로 자란 토마토를 수확해 20도의 온도로 유통한다는 정보를 입력하자 5월 2일에 잘 익은 토마토가 될 예정이라는 답이 나왔다. 거꾸로 유통 온도는 10도라고 입력하고 5월 2일에 잘익은 토마토를 받고싶다고 하자 좀전에 본 것 같은 빛깔의 토마토를 따려면 4월 17일에 수확하면 된다고 알려줬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은 지열 히트펌프를 경제적으로 사용할 방법을 찾고 있다. 지열을 활용해 난방을 하면 에너지 비용이 덜 들지만 설치비가 비싼 것이 단점이다. 연구진은 공기열, 태양열, 온실배열을 모두 끌어다 쓰는 방식으로 땅속에 열교환기를 절반만 설치하고도 같은 효과를 내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장기창 박사는 “효율은 100%를 내면서도 비용은 30% 줄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노주원 단장은 “농업 선진국에서는 스마트팜 기술이 많이 확산됐지만 값이 비싸 한국 농가에서 수입해 쓰기 어려운 것들이 대부분”이라면서 “한국형 스마트 농업 시스템을 개발해 비용을 낮추고, 나아가 우리와 환경이 비슷한 몽골 등에 수출할 산업으로 육성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