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잉크로 장기·피부·연골·심근조직 등 인공 인체조직을 제
독보적인 기술력 앞세워 255조원 시장 정조준

지난 26일 경기도 시흥시 스마트허브 산학융합본부 5층에 위치한 티앤알바이오팹(T&R Bio fab). 한 연구원이 3D 프린터를 조작하자 잉크가 들어있는 헤드가 위 아래로 움직이며 흰색, 빨간색, 파란색 잉크를 순차적으로 분사하기 시작했다.

먼저 투명에 가까운 흰색 잉크가 수차례 움직이며 사각형 틀을 만들었고 이어 틀 내부에 살아있는 세포 배양액이 혼합돼 있는 빨강, 파랑 ‘바이오 잉크’가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며 한층 한층 쌓였다. 흰색 잉크는 생체 고분자 물질의 틀을 만들고 틀 안에 빨간 바이오 잉크는 피부의 진피, 파란 바이오잉크는 표피 조직이 된다. 바이오잉크는 세포의 손상을 막고 프린팅 후 세포가 생존을 유지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3D바이오 프린팅 기술로 인공 피부 모형을 개발하는 과정. 바이오잉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색소를 넣어 시연했다.

잉크에 혼합된 살아있는 세포들이 배양되는 과정을 거치면 피부와 유사한 외형과 구조를 갖는 기능성 인공 피부 조직이 완성된다. 이 인공 피부 조직은 새롭게 개발 중인 치료제와 화장품 등을 반응시켜 효능 및 독성을 평가하고 동물실험을 대체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심진형 티앤알바이오팹 CTO는 “바이오잉크에 살아있는 세포들을 같이 넣어 3차원으로 프린팅하는 방식으로, 마치 두부판으로 두부를 찍어내듯 인공조직을 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티앤알바이오팹은 3차원 세포 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궁극적으로는 독성을 평가하고 질병 모델을 개발, 동물시험을 대체하는 ‘오가노이드(장기유사체·Organoid)’와 생체 조직을 재생시키기 위한 ‘3D 세포프린팅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윤원수 티앤알바이오팹 대표이사

조동우 포항공대 교수는 15년간 세계 최고 수준의 바이오 3D 프린팅 원천 기술을 개발했고, 티앤알바이오팹은 2013년 3월 회사 설립 전 포항공대 측으로부터 기술을 이전받아 상용화를 추진했다.

현재 이 회사가 구축하고 있는 ‘상용 다축 3D프린팅 시스템’, ‘6축 세포 프린팅시스템’, ‘하이브리드 세포 프린팅시스템 버젼1,2’는 국내 및 국외 특허로 출원, 등록돼 있다.

윤원수 티앤알바이오팹 대표이사는 “국내에는 경쟁자가 없다고 감히 말씀드린다”며 “바이오 분야만큼은 선진국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일부 우리나라가 주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미국과 싱가포르 등의 3D세포프린팅업체들은 한 가지의 생체 재료만으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반면, 티앤알바이오팹은 신체 조직 재생 능력이 높은 복합 생체 재료로 인공조직을 만든다"고 덧붙였다.

3D 세포 프린팅 기술의 상용화 속도를 앞당긴 데는 병원 의사들의 역할이 컸다. 이종원·김성원 서울성모병원 교수, 강성수 수의학과 교수, 정호윤 경북대병원 교수, 허중보 부산대치과병원 교수 등 12명의 의학·공학자들이 이 회사의 기술 자문단으로 참여하고 있다.

지난 2014년 9월 서울 성모병원에서 티앤알바이오팹의 바이오잉크를 활용한 환자 맞춤형 안면윤곽 재건 보형물을 제작해 안면윤곽 재건 수술에 성공했다. 3D프린팅으로 맞춤형 생분해성 보형물을 만들어 이식한 것은 세계 최초였다. 티앤알바이오팹과 포항공과대학, 서울성모병원 등이 지금까지 협력해 성공한 수술 사례는 400건이 넘는다.

티앤알바이오팹의 기술 자문단인 이종원 서울성모병원 교수는 "현재 대다수의 체내 이식형 의료용 제재 물질들은 비흡수성 재료로 만들어져 있어 우리 몸에 재료가 영구히 남는 단점이 있는 반면, 이 회사가 만든 제재는 생분해성 고분자 물질로 만들어져 수술 중 쉽게 (구조를) 성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체내에서 2,3년 유지되다 자기 조직으로 대체된 다음 분해돼 없어지므로 안전하게 사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화장품, 제약업계에서도 3D세포프린팅 기술은 새로운 열쇠가 되고 있다.

현재 동물실험 화장품 제조·판매 금지는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4년 전인 지난 2013년 3월 동물실험 화장품 금지법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으며 올해 국내에서도 동물실험을 거쳐 만든 화장품을 유통하거나 판매하면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3D 프린팅으로 만든 미니 피부, 신장, 간, 귀 등 인체 조직과 패치(patch)

윤원수 대표는 “유명 글로벌 화장품 기업은 우리의 기술을 보고 ‘감동적’이라고 얘기했다”며 “현재 이 회사와 인공 피부(Skin)를 공급하는 등의 계약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반창고를 붙이듯 상처에 붙이면 치료되는 패치형 세포 치료제도 개발 중이다. 실제 심장 근육 패치를 만들어 동물 실험을 한 결과 심근경색이 일어난 심장에 심근이 재생돼 정상적으로 심장 박동이 일어났다.

윤 대표는 “주사를 통해 주입하는 기존의 줄기세포 방식과 달리, 세포 프린팅 기술을 이용하면 반창고처럼 붙이는 패치 형태의 치료제도 개발할 수 있다”며 “환자의 손상되거나 죽은 세포 부위가 살아나고 재생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3D 바이오 프린팅 기술을 보유한 이 회사의 주요 타깃 시장 규모는 수백조원 대로 성장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글로벌 시장 예측기관 Markets and markets에 따르면 2021년 세계 생체 소재 분야 시장은 170조원, 재생 의료 분야는 44조원, 오가노이드·바이오칩은 41조원 등 총 약 255조원대 규모가 될 전망이다.

윤 대표는 “3D바이오프린팅은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기술”이라며 “공학 기술과 의료·바이오 기술을 융합해 세계 시장을 주도해 나가고 싶다”고 밝혔다.

이날 티엔알바이오팹 기업 현장을 방문한 손문기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은 “회사의 기술이 상용화 단계에 까지 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시장 현실에 맞게 제도를 개선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덧붙였다.

☞ 티앤알바이오팹(T&R Biofab)
2013년 설립된 티앤알바이오팹은 3D바이오·세포 프린팅 기술을 기반으로 신의료기술과 의료재료를 개발하고 생체 조직을 재생하는 기업으로, 윤원수·심진형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와 조동우 포항공과대학 교수가 공동 창업했다. 지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한국투자파트너스, 한국산업은행, 휴젤, HB인베스트먼트로 총 110억원의 투자를 유치한 이 회사는 3D바이오·세포 프린팅 기술을 독자적으로 확보하고 있다.

2014년 국내 최초로 ‘두개악안면 결손 재생·재건용 의료기기’에 대한 식품의약품안전처 품목 허가를 획득한데 이어 지난해 세계 최초로 개발한 ‘뇌하수체 종양 수술용 메쉬’에 대한 품목과 ‘치조골 재생용 멤브레인’에 대한 품목 허가도 받았다. 지난해 코중격 교정 및 성형용 의료기기에 대한 임상 시험에 진입했으며, 두개골 성형 재료 4개 제품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심사를 받고 있다.

3D 바이오프린팅
인체조직의 재생, 대체, 복원 등을 위해 바이오잉크를 이용해 3차원 구조물을 적층, 성형하는 기술로 장기·피부·연골·심근조직 등 다양한 인공 인체조직을 제작할 수 있다. 살아있는 세포를 원료로 한 3D바이오 프린팅 제품은 현재까지 개발 초기단계에 있다. 세계경제포럼과 삼성경제연구소는 '미래산업을 바꿀 파괴적 혁신 기술'로 꼽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