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속도가 더딘 것으로 유명한 대법원이 지난해 10월에 이어 오는 24일 4차 산업혁명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지난해 심포지엄에서는 4차 산업혁명을 최초로 주창한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WEF) 회장 등을 초청해 전반적인 사회 변화에 대해 논의했다. 이번 심포지엄은 자율주행차, 핀테크, 바이오산업 전문가들을 초청해 분야별 현황과 애로사항 등을 청취하는 자리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도 참석한다.

지난해 심포지엄에서는 인공지능(AI)의 출현으로 법정에 가지 않아도 분쟁을 해결하고 판결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종국에는 판사의 자리도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됐다. 하지만 다수의 법관은 AI가 법관을 대체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사회적 혼란이 커지고 시대 변화에 맞게 판례를 변경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역할은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믿음에 기반을 둔다. 이 때문인지 고위 법관들은 ‘감동을 주는 재판’, ‘따뜻한 사법부’를 강조하고 있다.

지난 2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선의로 180억원을 기부한 생활정보지 수원교차로 설립자 황필상씨에게 140억원의 증여세를 부과한 세무당국의 처분이 부당하다고 판결한 것이 대표적이다. 현행법은 국내 법인 주식의 5% 이상을 공익법인에 기부하면 증여세를 물리고 있다. 공익법인에 기부하는 방식으로 증여세를 회피하려는 것을 막기 위한 법조항이다.

문제는 선의의 기부까지 막대한 세금을 물리는 부작용을 낳았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번에 판례를 바꿔 문제점을 바로잡았다. 하지만 이 판결은 7년이 지나서야 나왔다. 게다가 대법원이 원고 승소 취지로 파기 환송한 것이지만 서울고법의 판결을 또 기다려야 한다.

오락가락하는 판결과 예측 불가능한 판결도 해결 과제로 꼽힌다. 일례로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두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했을 때 첫번째 구속영장은 기각됐지만 재청구에선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논란이 일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이를 사법부 흔들기로 규정했으나 구속영장 발부 기준이 모호한 것은 사실이다.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 기준에서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 등 명확한 기준보다 ‘다툼의 여지가 있다’거나 ‘사안이 중대하다’는 등 판사의 주관이 개입하는 비중이 커 벌어지는 논란이다.

한 사회를 규율하는 법은 모든 상황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허점도 많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다른데 이를 몇 개의 법 조항으로 재단해 결론을 내린다면 승복보다는 사법 불신이 커질 것이다. 법관이 차가운 머리보다 따뜻한 가슴으로 재판해야 사법 불신을 줄인다는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사법 불신을 낳고 있는 것은 판사 비리와 대법원의 불투명한 인사, 수년간 지연되는 피말리는 재판, 예측 불가능한 재판 등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만 법관들이 AI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