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어드바이저로 인해 개인별 투자목표를 달성시켜 줄 수 있는 자산관리, 즉 목표기반 투자(Goal Based Investment)가 맞춤형 서비스의 대중화(mass customization)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면 투자관리(Invest management) 산업에 진정한 산업혁명이 일어날 것이다.”(리오넬 마텔리니 교수)

“1차 산업혁명에서는 증기기관으로 옷을 싸게 만들 수 있었다. 2차 산업혁명에서는 포디즘으로 자동차를 싸게 만들었고, 3차 산업혁명에서는 인터넷 혁명으로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결하고 일반 대중도 고급 정보를 공유할 수 있었다. 금융에서의 4차 산업혁명을 얘기하자면, 1~3차 산업혁명처럼 기술이 사람의 지적 역량을 인공지능(AI)로 대체할 수 있다. 극소수의 고액자산가들만 누릴 수 있었던 자산관리 서비스가 일반 대중에게도 가능해 질 것이다.”(김우창 교수)

26~27일(현지시각) 미국 프린스턴(Princeton)대에서 열린 ‘4개 대학 순회 핀테크 컨퍼런스’에서 로보어드바이저를 통한 개인 자산관리시스템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들이 언급한 내용이다. 이번 컨퍼런스는 한국 카이스트(KAIST), 미국 프린스턴(Princeton)대, 중국 칭화(淸華)대, 프랑스 에덱(EDHEC) 등 4개 대학이 주최한 것으로 삼성자산운용과 알리바바 자회사인 앤트 파이낸셜(Ant Financial)이 후원했다. 올해 프린스턴대 행사를 시작으로 내년 행사는 카이스트와 칭화대가 공동 개최할 예정이다.

◆ 로보어드바이저, ‘수익률 게임’ 아닌 ‘개인 자산관리(WM)’

우리나라에서는 로보어드바이저가 더 높은 수익률을 거두기 위한 도구로 인식돼 있다. 로보어드바이저가 펀드 포트폴리오를 짜서 사람이 하는 것보다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등 선진국은 다르다. 로보어드바이저로 거래(trading)하는 이유는 비용을 낮추기 위해서다. 골드만삭스가 주식을 사고파는 트레이딩을 AI인 ‘켄쇼’에 의존하면서 2000년 초반 600여명에 달했던 뉴욕 본사 트레이더를 2명까지 줄인 게 그런 맥락이다.

또 하나의 흐름은 자산배분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특히 개인 고객을 대상으로 나이, 결혼 유무, 은퇴시점, 자녀 교육이나 결혼 등에 따라 맞춤형으로 생애주기별 자산관리를 해주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금융사들이 10억원 이상 고객 자산가들에게 해주는 프라이빗뱅커(PB) 서비스와 비슷한데,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하면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어 수백만원 또는 수천만원 정도를 맡기는 고객에게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상용화 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으로 보이는데 최근 세계 금융공학 학계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분야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4개 대학이 가장 앞서 있다.

26일 행사에서는 김우창 카이스트 교수와 리오넬 마텔리니 에덱 교수가 기조강연을 했다.

마텔리니 교수는 은퇴자금 목표 달성을 위한 자산관리 방법을 제안했다. 최소한의 생계를 위해 필요한 금액(EG, Essential Goal)을 보장하면서 시장 상황에 따라 더 나은 기대 목표(AG, Aspirational Goal)를 노리기 위한 최적의 자산배분 방법론이다. 현재 나이와 은퇴시점, 매년 불입자산 수준, 자신관리서비스 진입 시점, EG와 AG 목표 수준 등 개인별로 다양한 조건에 맞는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 대한 방법을 제시했다.

마텔리니 교수가 은퇴자금에 한정된 것이라면 김우창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10년후, 20년후 등 다양한 시점에 자녀 교육 또는 결혼자금, 의료비 등 다양한 목표를 설정할 수 있고 그 목표 달성 확률을 최대화할 수 있는 자산관리 방법을 제시했다. 참석자들로부터 실제 사용자 환경에 맞는 실용적인 모형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 교수는 “마텔리니 교수는 투자 의사결정만 고려하지만 카이스트 모델에서는 투자와 소비 계획 등 모든 개인의 상황을 고려해 맞춤형으로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것"이라며 “개인별 맞춤형 서비스 개발은 올해 안에 완료되고 실제 상용화는 내년 중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존 멀비(John Mulvey) 프린스턴대 교수는 “아직은 머신러닝으로 개인 자산관리를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지만 앞으로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머신러닝으로 초과 수익을 내는 것은 요원해 보이지만 고객을 이해하고 그들의 상황에 맞게 재무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 메릴린치 vs 베터먼트...업계 대표들, 패널 토론에서 설전 벌여

이날 행사에서는 글로벌 투자은행(IB)인 메릴린치, 미국 로보어드바이저 선두업체인 베터먼트(Betterment), 이트레이드 파이낸셜그룹, 알리바바의 금융자회사인 앤트파이낸셜 등 업계 대표들도 참석해 ‘로보어드바이저가 자산관리 산업에 위협이 될지, 기회가 될지’에 대해 패널 토론을 벌였다.

특히 아닐 수리(Anil Suri) 메릴린치 자산운용 포트폴리오 분석 및 혁신개발센터 소장과 리사 황(Lisa Huang) 베터먼트 퀀트 투자 담당 이사(Director)가 논쟁을 벌여 눈길을 끌었다. 황 이사는 “로보어드바이저 활용 방안에 대해 로보어드바이저만으로 자산관리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수리 소장은 로보어드바이저에 대해 “금융사 직원을 보조하는 플랫폼으로 활용함으로써 고객에게 저비용 고효율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그런 맥락에서 수리 소장은 “로보어드바이저가 메릴린치와 같은 기존 금융회사에게 당연히 기회가 된다”고 밝혔지만 황 이사는 “기존 금융사에게 기회일 수도 있지만 위협일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알리바바 자회사인 앤트파이낸셜의 알란 치(Alan Qi) 수석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는 “이제까지 앤트파이낸셜에서는 개인신용평가, 부정사용 색출 등에 집중했지만 앞으로는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한 자산관리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청중들의 질문도 많았다. 한 참석자가 ‘자산관리 산업에서도 구글 같은 대형 IT기업이 고객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가지고 빅데이터 분석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금융회사보다 더 잘할 수 있지 않느냐'고 질문하자, 황 이사는 “자산관리는 데이터만 있다고 가능한 게 아니다"며 “금융에서의 경험과 지혜가 필요하기 때문에 IT 기업이 자산관리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또 다른 참석자가 '로보어드바이저가 사람 대 사람으로 한 것보다 떨어질 텐데 가치가 있겠냐'고 묻자
아서 버드(Arthur Berd) 제너럴 퀀터테이티브 대표는 "자율주행차가 있는데 운전을 정말 잘 하는 사람보다는 운전을 못하겠지만 10대 청소년보다는 잘한다"며 "좋은 자산관리를 받는 사람들은 상관 없지만 자산관리를 아예 받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큰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 존 보글 뱅가드그룹 창립자, 고령에도 실시간 원격 영상 강연

세계 최초로 인덱스펀드를 개발, 보급한 존 보글 뱅가드그룹 창립자는 88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실시간 원격 영상 강연을 했다. 보글 회장은 “개별 주식이나 채권 매매에서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인덱스펀드 또는 상장지수펀드(ETF)에 기반해 포트폴리오를 짜는 게 낫다"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보글 회장은 또 “향후 10년 동안 주식이나 채권 수익률은 지난 10년, 지난 20년보다 낮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향후 10년 동안 주식 수익률은 4% 수준으로, 채권 수익률은 3% 수준으로 낮아질 것이라고 봤다.

1990년대 초반 빅데이터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한 존 마시(John Mashey) 테크바이저 컨설턴트는 ‘빅데이터 - 과거, 현재, 미래’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빅데이터의 역사와 그에 대한 기술 발전의 기여도에 대해 설명했다.

컴퓨터공학계의 노벨상으로 일컬어지는 튜링상을 2000년에 수상한 앤드류 야오(Andrew Yao) 칭화대 통섭정보과학연구소 소장은 “개인용컴퓨터, 인터넷 등으로 컴퓨터공학이 각광을 받아왔으나 최근에는 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새로운 황금기가 도래했다"고 강조했다. 야오 교수는 “구글이 IT기업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그 분야 주요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다"며 “컴퓨터공학이 다른 산업의 툴 역할을 했으나 이제는 오히려 컴퓨터공학 분야에서 신산업을 창출하고 기존 업체들보다 더 앞서 가는 사례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게 컴퓨터공학자인 그가 핀테크에 관심을 두는 이유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