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마을에 청년 창업자 몰리며 3년새 땅값 3.3㎡당 4000만원 호가

서울 종로 한복판에 90년 된 한옥마을이 남아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런 한옥마을이 최근 젊은이들의 ‘놀이터’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더 드물다.

90년 전 모습을 그대로 지닌 서울 익선동 166번지 한옥마을은 2000년대 초부터 재개발 구역으로 묶여 도심 속 슬럼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3~4년 전부터 갑자기 찾아온 젊은이들이 특색있는 가게를 열면서 상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한옥의 외관에 좁은 골목, 한국적 이미지를 보여주는 풍경에 인스타그램(Instagram) 등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를 타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 지하철 종로3가역에서 걸어서 5분이면 되는 역세권이라 새로운 것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이어지고 있다.

◆ 90년 된 한옥마을, 젊은 감성 입은 문화공간으로 탈바꿈

서울 익선동 한옥마을은 90년 된 한옥을 리모델링한 가게들이 골목마다 들어서 있다.

지어진 지 90년이 넘은 한옥들은 예스러운 외관을 그대로 지닌 채 현대적이고 세련된 내부를 갖춘 가게들로 탈바꿈하고 있다. 상권 초창기부터 자리를 지켜온 카페 ‘뜰안’과 ‘식물’을 비롯해, ‘열두달’, ‘익선동121’, ‘거북이슈퍼’ 등은 입소문을 타고 찾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기자가 익선동을 찾은 주중 오후 시간에도 꽤 많은 사람들로 동네 골목이 북적였다. 강남구 논현동에 사는 김수진(26)씨는 “따뜻한 봄 날씨에 나들이 갈 곳이 없나 생각하다 최근 SNS에 올라온 사진을 보고 익선동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좁은 한옥 골목이 세 갈래로 갈라져 언뜻 미로 느낌을 주기도 하는 이곳에는 외국인 관광객도 눈에 띈다. 영국 관광객 데이비드 로스(26)씨는 “런던의 닐스야드(Neal’s Yard, 아름다운 가게들로 유명한 런던의 거리)와 비슷한 분위기지만 한국의 정취와 현대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며 “게스트하우스 주인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오게 됐다”고 말했다.

주변에는 호텔이나 호스텔 등 숙박시설이 많아 외국인 관광객이 쉽게 찾을 수 있고, 종로3가역 4번 출구에서 걸어서 1~2분 정도면 도착해 접근성도 좋다.

젠트리피케이션 그늘을 피하다

상권이 형성되면서 임대료도 3~4년 전보다 올랐다. 부동산 관계자에 따르면 “주거용으로 쓰일 땐 월세가 20만원 선이었다”며 “지금은 대지 66㎡짜리 한옥 주택이 보증금 3000만원에 임대료 100만~150만원 수준이며, 권리금은 없다”고 말했다.

익선동에는 주거용 주택과 상가 점포로 바꾼 가게형 주택이 공존하고 있다. 주거 세입자를 찾는 전단(왼쪽)과 카페 등 가게 임차인을 구하는 안내지.

임대료가 오르면서 일각에서는 익선동의 젠트리피케이션(급격한 땅값·임대료 상승으로 세입자가 밀려나는 현상)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상인들은 상권 임대료를 노후 주택의 월세와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익선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김모(33)씨는 “상권이 발달하면 임대료가 오르는 것은 당연하지만, 20만~30만원 정도 월세를 받던 예전과는 비교할 수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익선동에서 새로 자리를 잡는 상인들은 이곳 임대료가 서울 주요 지역 상권과 비교하면 여전히 상대적으로 낮다고 여긴다. ‘열두달’, ‘경양식 1920’ 등을 운영하는 박한아 익선다다 대표는 “종로 거리로만 나가도 여기보다 임대료가 두 배가 된다”며 “익선동은 상인들과 건물주인들이 한옥마을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상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익선동의 평균 임대료는 지난해 4분기 기준 1㎡당 2만3000원으로 상권이 형성된 2013년 이후에도 4년 가까이 큰 변화가 없다. 인근 인사동(5만4000원)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상인들은 이곳의 정체성을 지키고 젠트리피케이션 등에 대응하기 위해 ‘익선다락’이라는 상인회를 통해 급격한 임대료 오름세를 막는다는 계획이다. 카페 식물과 익선다락의 대표인 루이스 박씨는 “익선동은 건물 주인이 직접 가게를 운영하는 경우가 절반 정도 돼, 임대료 오름세가 크지 않다”며 “임대료가 급상승하면 오히려 상권이 망가질 수도 있는 만큼, 한옥마을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 상권 형성되며 땅값도 올라…올해 지구단위계획 수립 예정

익선동 한옥마을의 유래와 역사를 설명하는 안내판. 익선동 한옥마을은 1920년대 초 우리나라 최초의 부동산 개발업자로 알려진 고 정세권씨가 개발한 대규모 주택단지다.

익선동 한옥마을은 1920년대 초 우리나라의 최초의 부동산 개발업자인 고 정세권씨가 개발한 대규모 주택단지다.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110여 가구의 계획형 주택단지로, 장면 부통령과 유한양행을 창업한 유일한 박사 일가, 정형식 일양약품 명예회장 등이 이곳을 거쳐 갔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특별한 리모델링 없이 오랜 시간이 지나며 지역이 슬럼화됐다.

90년대 중반부터 재개발을 추진했지만, 한옥 보존 문제 등으로 20년 가까이 표류하다가 2015년 재개발 추진위원회가 재개발 자격을 반납했다.

2014년 패션 사진작가 루이스 박이 카페 ‘식물’을 열고, 현재 ‘열두달’, ‘경양식 1920’ 등을 운영하는 익선다다의 ‘익동다방’ 등이 입소문이 나면서 상권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2014년 1개뿐이던 가게는 3년 만에 50여 개로 늘었다.

서울 익선동 골목길이 옛 한옥을 특색있게 바꾼 가게들을 찾는 내∙외국인들로 붐비고 있다.

가게가 생기면서 집주인과 땅주인들은 신이 났다. 2000년대 중반 재건축이 좌초되면서 거래가 끊겼던 땅이 갑자기 팔리기 시작하고 가격도 덩달아 올랐다.

천명수 익선동 성도부동산 대표는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됐던 10년 전에는 땅값이 3.3㎡당 3000만원까지 거래가 됐다가 그 후 7~8년간 거래가 뚝 끊겼고, 3.3㎡당 1900만원 정도에 팔려는 사람도 있었다”며 “상권이 생기면서 가격이 회복돼 최근에는 3.3㎡당 4000만원 정도 호가한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 사이에선 한옥을 보존해 상권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지만, 여전히 재개발에 대한 움직임도 있다. 한옥마을의 구조상 길이 끊겨 상권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곳에서는 여전히 재개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용민 서울시 역사도심재생과 도시재생팀장은 “올해 중순쯤 정비구역을 해제하고 익선동에 새로운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해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