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4일은 UN(국제연합)에서 정한 '세계 실험동물의 날'이다. 화장품이나 신약 개발에 동원되는 실험동물들의 희생을 줄이자는 취지로 1979년 제정됐다. 동물실험은 사람을 대신해 약품과 화장품의 안정성과 효과를 알아보는 필수 단계이지만, 최근 동물 보호 목소리가 높아지고 효용성의 한계도 지적되면서 대체 기술이 모색되고 있다. 사람의 장기와 피부를 본뜬 칩을 만들거나 초소형 인공 장기를 만드는 방법들도 등장했다. 실험동물들이 해방될 날이 머지않았다.

칩 위의 장기, 세포로 동물실험 대체

최근 동물실험 대체 연구의 중요한 흐름은 '3D(입체)'이다. 세포로 미니 장기를 만들거나, 세포들을 플라스틱 칩 위에 입체로 배치하는 '인공 생체 칩(organ on a chip)' 기술이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3차원 조직은 평평한 접시 위에 세포를 배양하는 방식보다 정확한 인체 반응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 11일 생명공학 기업 에뮬레이트(Emulate)가 개발한 인공 생체 칩으로 식품·의약품·화장품의 독성을 확인하는 실험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기관이 공식적으로는 처음 독성실험에서 실험동물 대신 사람의 장기와 같은 형태로 만든 인공 칩을 사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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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생체 칩은 2010년 미국 하버드대의 잉버 교수와 허동은 박사(현 펜실베이니아대 교수)가 '칩 위의 허파'를 폐부종 치료제 실험에 사용하면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인공 생체 칩은 마이크로미터 수준의 작은 관에 인공 장기 조직을 넣기 때문에 독성 여부를 빠르게 알 수 있다. 대량생산하면 비교적 저렴한 비용에 독성을 확인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미니 장기' 연구도 이뤄지고 있다. 세포를 배양해 실험용 미니 장기인 '오가노이드(organoids)'를 만드는 것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정초록 책임연구원은 2015년부터 배양접시에 사람 장기를 모방해 만든 인공 실험체를 개발 중이다. 지난해 지름 6㎝ 크기의 배양접시 4개에 각각 간과 소장, 피를 만드는 골수 조직, 그리고 약물이 작용할 장기를 배양한 뒤 각각을 실리콘 관으로 연결했다. 혈액으로 주입된 약물이 소장에 흡수됐다가 간에서 처리되고, 또 특정 장기에서 약효를 내는지 알아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연구진은 올해부터 사람의 장기 조직에 한층 더 가까운 인공 실험체 제작에 돌입했다. 배양접시를 연결하는 실리콘 관 안쪽 면을 사람의 혈관세포로 코팅해 각각의 장기가 혈관으로 연결된 환경을 만들려고 한다. 인공 장기의 생체 신호를 인식할 수 있는 기술도 연구 중이다. 정초록 박사는 "사람과 거의 흡사한 장기 조직을 실험실에서 구현하는 게 핵심 기술"이라며 "이 기술로 2020년까지 쥐와 같은 설치류의 동물실험을 대체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동물연구 92%가 인체에 효과 없어

미국 농무부에 따르면 전 세계 동물실험에 쓰이는 동물은 한 해 1억 마리가 넘는다. 국내에선 한 해 250만7157마리(2015년 기준)의 동물이 희생되고 있다. 하지만 동물 보호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면서 세계 각국은 점차 동물실험을 줄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13년, 우리나라는 지난해 3월 모든 화장품 원료 등에 대한 동물실험을 없앴다. 지난달 15일 국회에서는 어린이·청소년의 동물 해부 실험·실습을 금지하는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일각에선 동물실험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미국 FDA는 최근 동물 연구에서 효과가 확인된 약물 중 92%가 인체 대상의 임상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김민경 이화여대 약대 교수는 "동물실험은 인간의 독성 문제를 예측하는 데 널리 사용됐지만 완벽한 실험 방법은 아니다"며 "사람 장기와 비슷한 대체 실험물을 개발한다면 비용을 크게 줄이면서 동물실험보다 더 효율적이고 안전한 독성·효능 검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