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김병성(36)씨는 지난달 해외여행을 준비하며 여행용 가방을 사는 대신 백화점에서 빌렸다. 일주일간 여행 가려면 30인치형(가로·세로·폭 52·73·31㎝) 대형 캐리어가 필요한데, 평균 가격이 50만원을 훌쩍 넘었기 때문이다. 이를 사는 대신 사용료로 9만원만 내고 빌렸다. 김씨는 "당분간 또 여행을 갈 계획도 없는데 비싼 제품을 구매하기 부담스럽고, 집에 보관할 공간도 마땅치 않아 대여 서비스를 이용했다"고 했다.

여행용 캐리어, 의류, 미술품… 확산되는 렌털 서비스

경기 침체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자 유통업체들이 다양한 렌털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비싼 물건이 필요하지만, 구매하기는 부담스러운 소비자들의 수요를 흡수하기 위해 '빌려주는 백화점'으로 변신하는 셈이다.

서울 현대백화점 목동점 지하 1층 맨투고 매장에서 4일 한 남성이 고급 여행 가방 대여 서비스 상담을 받고 있다. 경기 침체로 소비 심리가 위축되자 유통업체들은 고가 제품을 빌려주는 서비스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현대백화점 판교점은 지난 2월 미술품 렌털 서비스를 내놨다. 이용자는 유화·동양화 등 100만원이 넘는 미술품을 구매하는 대신 마음에 드는 작품을 선정하면 빌려 쓰고, 3개월마다 작품을 교체할 수도 있다. 이용료는 3개월에 9만9000원이다. 현대백화점 측은 "그림을 사는 대신 주기적으로 그림을 바꿔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30대 전·월세 주택 거주자가 많이 이용한다"고 했다. 지난달엔 여행용 가방 대여 사업도 시작했는데, 이용자가 매장을 방문해 빌릴 제품을 고르면 원하는 장소로 캐리어를 배송까지 해준다. 비용은 하루 기준 1만3000원~2만3000원.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2~3년에 한 번 가는 해외여행 때문에 비싼 캐리어를 구매하기 망설이는 소비자가 많다는 점에 착안했다"며 "이용자의 70% 정도가 30대 남성"이라고 했다.

앞서 롯데백화점은 지난해 8월 서울 소공동 본점에서 의류 렌털숍을 업계 최초로 열었다. 고급 의류나 핸드백 등 잡화를 2박3일 기준 10만~30만원 정도에 빌려준다. 롯데백화점 측은 "백화점 제품을 빌려서 쓸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며 이용객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며 "조만간 다른 지점에도 의류 렌털숍을 입점시킬 계획"이라고 했다.

편의점, 인터넷 쇼핑몰도 대여사업에 뛰어들어

백화점 뿐만 아니다. 편의점과 인터넷 쇼핑몰도 가세했다. G마켓은 지난해 유모차 렌털 서비스를 내놓았다. 아이가 크면 무용지물이 되는 유모차를 사는 대신 필요한 기간만큼만 빌려 쓰는 것이 경제적이라는 것이다. 편의점 GS25를 운영하는 GS리테일는 최근 정관을 변경해 사업 목적에 '렌털 임대업'을 추가했다. GS리테일 측은 "렌털 산업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편의점에서도 각종 생활용품 등을 빌려주는 서비스를 구상 중"이라고 했다.

렌털 산업은 꾸준히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2011년 3조7000억원 규모였던 국내 렌털(차량·산업기계 렌털은 제외) 시장은 지난해 5조5000억원 규모로 성장했고, 2020년에는 1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보다 앞서 장기 불황을 경험한 일본에서는 의류, 각종 생활용품 등에서 렌털 서비스가 확산돼있다. 지난 2014년 문을 연 일본의 의류 렌털 업체 '에어클로짓' 현재 이용 회원 수가 8만명을 넘어섰다. 국내 백화점이 도입한 여행용 캐리어 렌털 서비스도 일본의 '웨어하우스 테라다'가 내놓은 여행용품 대여 서비스에서 착안했다. 김재필 KT경제경영연구소 팀장은 "불황이 지속되는 데다 소비자들의 대여 수요를 파악할 수 있는 빅데이터 기술도 발전, 렌털 시장은 새로운 체험과 가치를 제공해주는 서비스 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