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후 중국 베이징(北京) 번화가 현대자동차 판매장. 농구장보다 큰 매장 안에서 판매원들이 서성거리며 손님을 기다렸지만 1시간 동안 아무도 이곳을 찾지 않았다. 매장 직원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결정 이후 손님이 절반 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는 지난달 중국 판매량이 7만2032대로 작년 3월 대비 52.2% 줄었다고 4일 밝혔다. 중국 정부 사드 보복 조치가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현대·기아차 공장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현대차는 지난달 말부터 베이징 공장 야간 조업을 중단했고 허베이(河北)성 창저우(滄州) 공장은 지난달 24일부터 12일간 가동을 중단했다. 장쑤(江蘇)성 옌청(鹽城) 기아자동차 생산 라인도 지난달 1·2·3공장이 돌아가면서 1주일씩 가동을 멈췄다. 3월 들어 중국 내 기아차 주문량이 작년 같은 달보다 70% 가까이 급감하면서 옌청 공장은 지난달 월별 생산 목표치의 30%에도 못 미치는 1만6006대를 생산하는 데 그쳤다. 기아차 관계자는 "이런 식으로라면 추가로 가동을 중단하는 생산라인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당초 하반기 가동 예정이던 현대차 충칭(重慶) 공장도 가동 시기를 잡지 못하고 있다. 현대·기아차 '판매 절벽'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우려도 있다. 이미 일본 자동차업체도 2012년 일본과 중국이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문제로 갈등을 빚었을 때 중국 판매량이 많게는 70%까지 빠졌던 적이 있다.

기아차 3월 판매량 70% 급감

현대·기아차 중국 월 판매 실적은 지난 2월 9만1222대로 지난해 2월 이후 처음 10만대 선이 깨졌고, 3월엔 7만여 대를 기록, 더 줄었다. 현대차는 44.3%, 기아차는 68.0% 줄었다. 현대차 관계자는 "2월 말 우리 정부가 사드 부지를 확정·발표하고 난 뒤 중국에서 한국 제품 불매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며 "3월부터 신규 주문이 눈에 띄게 줄고 계약했던 주문도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일 오후 중국 베이징에 있는 현대자동차 판매점. 손님이 찾지 않아 매장 내부는 한산했다. 사드 배치 이후 중국 내 반한(反韓) 정서가 번지면서 현대·기아차 지난달 중국 지역 판매량은 작년 3월 대비 52.2% 감소했다.

현대·기아차와 같이 중국에 진출한 금융 계열사나 협력업체도 고민이 크다. 차량 금융을 주로 하는 현대캐피탈은 3월부터 자동차 금융 상품 판매가 급락하면서 주재원들은 "이러다 한국으로 불려가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하고 있다.

현지 업체 '상업적 쇼비니즘' 선동

상당수 중국 소비자가 반한(反韓) 분위기 때문에 한국차 구매를 꺼리는 상황에서 현지 자동차 업체들은 '상업적 쇼비니즘(배타적 애국주의)'을 선동하면서 '사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중국 토종 자동차 업체 A사는 한국 차를 주문했다가 취소하면 방향제 등 '애국 선물'을 증정하겠다고 나섰고, 또 다른 현지 자동차 업체 B사는 자사 차량에 "한국 브랜드를 반대한다"는 깃발을 달고 시위를 벌였다. 독일 폴크스바겐 중국 딜러들은 한국 차를 팔고 자사 차를 사면 3000~1만6000위안(약 50만~260만원)을 할인해주는 특별 판촉에 들어갔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센카쿠 분쟁 당시 일본 자동차 업체가 이전 판매량 수준을 회복하는 데에는 6개월 정도 걸렸다"며 "현대·기아차도 당분간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뾰족한 해법 없어 고민

현대·기아차는 초비상이다. 중국은 현대·기아차 전체 판매 대수의 23%를 차지하는 최대 시장이기 때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3일 임원 회의를 소집, 사드 사태로 인한 영향을 보고받고 조속한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뾰족한 해법이 없다는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 위기감이 크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는 올해 중국 내 판매량 목표치(195만대)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특히 3~4년 전부터 중국 시장 점유율이 하락세를 보여오는 상황에서 사드 사태가 주는 충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올 들어 2월 현재 현대·기아차 중국 시장 점유율은 5.7%로 한창 잘나가던 2014년 10%대의 절반 수준까지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지난달 두 번째 큰 시장인 미국 지역 판매량이 11% 줄면서 중국 시장 부진은 더 뼈아픈 처지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사드 사태는 기업이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경쟁력 있는 제품 출시와 고객 신뢰 구축을 위한 사회 공헌 활동 강화 등을 통해 극복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는 중국에서 지난달 출시한 '위에둥'을 포함해 올해 6개 신모델을 투입하고 현금 할인을 검토하는 등 마케팅을 강화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