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부처 A국장은 최근 직원들에게 4월 중 해외 출장 건을 만들어보라고 지시를 내렸다. 직원들은 "느닷없이 해외 출장 일정을 잡으라고 해 정신이 없다"며 "5월에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외국에서 여유있는 시간을 즐기려는 심사가 아니겠느냐"고 했다.

요즘 세종 관가(官街)에는 A국장처럼 새 정부 출범 전에 해외 출장을 가려는 관료들이 줄을 섰다. 이런 분위기는 고위 관료들이 주도하고 있다. 경제 부처의 모 간부는 최근 4차 산업혁명 현장을 살펴보기 위해 유럽에 다녀왔고, 또 다른 간부는 관광산업 인프라를 살펴보기 위해 동남아에 다녀왔다.

장관들도 부쩍 해외 출장이 잦다. 강호인 국토교통부장관은 지난달 해외 수주 지원차 터키와 스페인에 다녀왔는데 국토부 공무원들 사이에선 "장관이 직접 해외 출장을 떠나 의외였다"는 반응이 나왔다. 국토부는 지난달 장관과 1·2차관이 모두 해외 출장을 다녀왔고 장관과 2차관이 동시에 자리를 비우기도 했다.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지난달 말 수교 25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을 찾았다. 대선 후보들이 교육부 폐지를 주장하는 가운데 수장이 해외 출장으로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자 교육부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 여부가 판가름 나는 민감한 시기였기에 더욱 그랬다.

경제 부처 B장관은 잦은 해외 출장으로 출장비 예산을 이미 다 써버려 실무자들이 고심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B장관은 이달에도 해외 출장이 예정돼 있다.

고위 관료들의 잦은 해외 출장은 임시 대행 정부 체제에서 공직 기강 해이를 더 부추기고 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지난달 G20 재무장관 회의(독일 바덴바덴)에 참석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일부 간부들이 외부 강연을 나가는 등 개인 일정을 소화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유 부총리는 이달에도 세계은행 연차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행정학 교수는 "정권 말에 대통령까지 없으니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공직자들의 이런 행태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