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 세계 최대 이커머스 기업인 중국의 알리바바는 지난해 4월 동남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라즈다(Lazda)를 인수했다. 알리바바가 이 회사를 인수한 것은 단순한 매출 증대가 아닌, 매일 6000만건씩 발생하는 상거래를 통해 아시아에서의 생산과 유통, 소비 데이터를 자본으로 축적해 새로운 부를 창출하기 위해서였다.

장면 2. 2015년 2월, 백악관은 DJ 패틸(Patil) 박사를 미국 행정부 최초로 CDS(Chief Data Scientist)로 임명했다. 그는 미국 정부에서 생성되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서 정책을 수립하는 역할을 맡았다.

기업은 물론이고 정부도 축적된 데이터를 미래의 자본으로 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글로벌 리서치 기관인 가트너는 데이터를 ‘21세기 석유’라고 부른다. 데이터가 기업에 새 기회를 만들어줄 것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패스트패션의 대명사 자라는 미국 MIT의 전문가와 함께 세계 70여개국에서 나오는 데이터를 통해 수요를 예측하고 적시에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시제품이 아닌 예측된 상품으로 글로벌 패스트패션 선두자리를 지키고 있다.

고속 성장하는 한국계 스타트업 미미박스 역시 스스로를 ‘데이터 기반 화장품 기업’으로 부르고 있다. 미미박스는 스마트폰 앱에서의 클릭 순서와 검색어, 리뷰댓글까지 모든 것을 축적해서 분석하고 있고,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체 상품을 개발하고 출시하고 있다. 미미박스에는 지금까지 영화 1000편 분량인 1테라바이트(TB)의 데이터가 축적되어 있다.

데이터가 자본을 만드는 금광으로 부각되면서, 세계는 지금 데이터 주권을 둘러싼 보호무역주의 물결이 거세다. 당장 우리에게는 오는 6월부터 발효되는 중국의 네트워크 안전법이 발등의 불이 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네트워크 안전법의 시행에 대해 사이버공격과 유해정보 확산 차단, 개인정보 보호를 통해서 국가안보를 수호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해외 기업들로서는 외국기업 감시와 진입장벽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중국인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거나 처리하는 기업은 해당 서버를 중국에 둬야하기 때문이다. 해외에 저장하는 데이터는 중국 정부의 광범위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 아직 중국 네트워크 안전법의 세부 시행령이 마련되지 않았지만, 국내 기업들은 중국 정부가 어떤 기업을 핵심 정보 인프라 운영자로 정할 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만약 핵심 정보 인프라 운영자로 지정되면 보안 심사는 물론이고 안전 평가와 함께 핵심 정보 인프라와 관련된 개인정보는 반드시 중국 현지에 설치된 서버에 저장해야 한다. 이와 관련 주중 미국상공회의소는 “네트워크 안전법이 외국기업의 진입장벽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하고, 보안보다는 보호주의를 강조하고 있다”면서 비판하기도 했다.

실제로 국내 5대 기업에 진입한 모 화장품 기업은 그동안 중국 사업에서 나오는 데이터는 송도의 데이터 센터에 저장됐지만, 네트워크 안전법 발효에 맞춰 중국 사업장에서 나오는 데이터의 모든 분리 작업을 마쳤다. 이 회사의 16개 브랜드의 중국 사업 데이터는 모두 중국 데이터 센터에 저장되어 있다.

한한령 이후 엔터테인먼트로 시작된 중국의 무역 보복은 관광과 식품, 유통 등 거의 모든 분야로 확대되고 있고 , 중국은 정부가 문서화하고 있지 않지만, 구두 지침을 통해 교묘하고 집요하게 무역보복을 행하고 있다.

한한령 이후의 무역 보복처럼 네트워크 안전법 역시 우리 기업들에게는 위협적인 요소이다. 네트워크 안전법이 공식 입법 절차를 통해서 법적 근거를 갖게 되면 오는 6월 법 발효 이후에 본보기로 해외 기업에 철퇴를 내릴 가능성이 있다.

삼성, LG 등 대기업들은 계열사인 SI기업을 통해서 영향을 파악하고 시스템 개편 작업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사실 손을 놓고 있다. 지난해 대중국 수출액은 1244억 달러로 전체 수출액의 25%를 차지하는 등 갈수록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한령 이후 중국의 무역보복 파도에 한국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여기에 네트워크 안전법의 파고까지 더해진다면 한국 경제의 시름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이제 중국의 네트워크 안전법 발효까지 두 달 밖에 남지 않았다. 이제라도 네트워크 안전법 시대를 어떻게 헤쳐갈 것인지에 대한 한국기업과 정부의 각성과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