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4일 자정. 도쿄 시부야 구에 있는 다이칸야마 쓰타야서점(蔦谷書店)은 무라카미 하루키 신간 출시일에 맞춰 카운트다운 이벤트를 벌였다. 주 7일 오전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영업하는 서점인 만큼 가장 먼저 하루키 신간 판매에 들어간 것이다. 100명 넘는 쓰타야 회원들이 전날 밤부터 서점에 나와 줄을 섰고, 책더미를 덮어둔 가림막을 제거한 제막식에는 300여 명이 몰렸다.

쓰타야는 출판업 불황이 남의 얘기다. 일본 출판산업 전체 매출은 감소하는 추세지만 쓰타야의 매출은 서점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한 1994년부터 22년 연속 늘었다. 쓰타야의 모기업인 컬처컨비니언스클럽(CCC)은 2015년에 최대 매출(2392억엔, 한화 약 2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보다 22% 늘어난 수치다.

지난 2월 24일 자정. 무라카미 하루키 신간 출시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 도쿄 다이칸야마 쓰타야서점에 몰려든 회원들. 쓰타야서점은 라이브 공연, 토크 콘서트, 박람회, 사진전 등 회원을 위한 다양한 이벤트를 열고 있다.

불황을 이겨낸 비결은 뭘까. 타카기 히로유키(高木裕之) 노무라종합연구소 상석 컨설턴트는 지난 16일 제5회 유통산업 포럼에서 “저성장기에도 계속 성장한 일본 기업은 공통적으로 높은 고객 충성도를 유지했다”고 말했다. CCC, 세븐일레븐, 유니클로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포럼 후 조선비즈와 가진 인터뷰에서 고객 충성도를 높이기 위한 핵심 요건으로 ‘데이터·카이젠(改善)·전문성’을 꼽았다.

① 데이터

-고객 충성도를 높이는 방법은.
"대부분 주요 소매 업체는 고객 프로파일과 판매시점(POS)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좋은 유통기업은 이것을 분석하고 활용한다.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 변화를 포착해 개인화된 형태로 프로모션·할인행사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방식으로 고객의 참여를 끌어낼 수 있다."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축적·활용한 사례를 소개한다면.
"CCC는 자체 포인트 카드인 T카드를 통해 편의점, 수퍼마켓, 백화점, 레스토랑 등 수많은 제휴 업체들로부터 데이터를 수집한다. 스타벅스, 패밀리마트, 레스토랑, 여행사, 반려동물숍, 자전거숍, 병원, 쓰타야서점 등이 모여 있는 다이칸야마 T사이트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도쿄 다이칸야마 쓰타야서점이 있는 T사이트 전경. 스타벅스, 패밀리마트, 레스토랑, 여행사, 반려동물숍, 자전거숍, 병원 등이 모여 있으며 모든 곳에서 T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

CCC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T카드 회원 수는 6132만명으로 일본 인구 절반에 해당한다. T포인트 적용 가능 제휴 업체 수는 159개(점포 수 59만4484개)에 이른다. CCC는 작년 초 일본 최대 백화점인 미쓰코시 이세탄과도 T포인트 사용 협약을 체결했다.

②카이젠(개선)

세븐일레븐 재팬은 일본 특유의 ‘카이젠(개선)’ 전략으로 불황을 극복했다. 타카기 컨설턴트는 저성장기에는 혁신 못지않게 점진적 개선이 중요하다고 했다.

-일본 편의점은 불황에도 성장했다.
"세븐일레븐 재팬은 새로운 시장을 창조했다. 20~30년 전 편의점은 단순한 미니 수퍼마켓이었으나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받아들였다. 고령화도 기회였다. 일본의 경우 고령층의 객단가가 젊은층보다 낮지만 이들은 더 자주 매장을 방문했다. 나이가 들수록 대형마트나 수퍼마켓에 가기 힘들어지기 때문에 편의점이 고령층 소비를 흡수할 수 있다."

타카기 히로유키 노무라종합연구소 상석 컨설턴트.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고령층 고객은 보수적이라 한 번 편의점에 발을 들이기 시작하면 계속 방문한다. 상징적 상품으로 신뢰를 얻는 게 중요하다. 일본의 경우 바나나의 품질을 꾸준히 개선하자 수퍼마켓에서 과일과 야채를 사던 고령층이 편의점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작년 기준 세븐일레븐 고급 PB(자체 브랜드)인 ‘세븐 프리미엄’ 품목 수는 3650개, 매출은 1조1500억엔(한화 약 11조6000억원)에 이른다. 그는 개선이 계속된다면 편의점 업계 호황이 20년 이상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③전문성

유니클로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편리한 상품을 개발해 고객 충성도를 높였다.

-저성장기에도 가격보다 편의성이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지난 10~15년간 일본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지만, 편하고 좋은 품질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한 유통업체는 꾸준히 소비자를 유치했다. 아무리 불황이라고 해도 한 번 맛있는 음식, 편한 제품을 경험한 소비자는 거꾸로 되돌아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제품을 선보이려면 어떤 요건을 갖춰야 할까.
"유니클로는 지난 5~10년간 히트텍, 울트라 라이트 다운 등 새로운 소재를 활용한 제품, 편리한 기능의 제품을 선보였다. 유니클로 등 SPA(제조·유통 일괄형 의류) 업체는 기술력과 전문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백화점은 그렇지 못했다."

세븐일레븐 프리미엄(최고급) PB ‘세븐 골드’ 제품(위), 도쿄 긴자에 있는 유니클로 플래그십 스토어(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