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의 맛집 락희옥은 최근 배달의민족 자회사 배민프레시와 제휴를 맺었다. 락희옥이 보쌈, 육전 등 주력 메뉴의 레시피(조리법)를 제공하면 배민이 직접 생산해 판매하기로 했다. 락희옥 보쌈은 4월부터 배민프레시 앱을 통해 주문할 수 있다. 김선희 락희옥 사장은 “우리는 로열티만 받는 구조”라며 “배민 김봉진 사장이 여러번 찾아와 설득하는 바람에 수락하게 됐다”고 말했다.

배달의민족이 자회사 배민프레시를 통해 ‘배달’을 넘어 직접 음식 조리에 나서고 있다. 기존에는 제휴된 음식점의 주방에서 생산한 제품을 가져온 뒤 배달해야 하는 물리적 한계가 있었는데, 직접 제조에 나서며 이 한계를 뛰어넘었다. 배민프레시는 이를 위해 2015년 7월 인수한 부천의 도시락 공장을 반찬 생산 공장으로 최근 전환했다. 배민의 계획대로 된다면 국내 반찬, 맛집 시장을 상당 부분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 설득하고 또 설득하고…모바일로 들어온 ‘맛집’

배민프레시는 올해 들어 회사 슬로건을 ‘내 손 안의 반찬가게’로 바꿨다. 기존의 신선식품 배달업체 사어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인식한 것이다.

배민프레시 R&D센터. 이곳에서 유명 맛집의 음식이나 반찬을 개발하고, 합격점을 받으면 부천의 공장에서 생산하게 된다.

반찬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배민프레시의 전략 변화에 힘을 실어줬다. 배민프레시에 따르면 지난해 2월 앱을 출시한 이후 반찬 판매량은 1년 새 10배 가까이 늘었다. 배민프레시 관계자는 “출근길에 ‘내일은 뭐 먹지?’라고 고민하다가 앱을 통해 반찬을 구매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면서 “반찬에만 집중해도 성공할 수 있다고 보고 변신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온라인 반찬 시장은 오프라인의 1%도 안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성장 여력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배민프레시가 맛집 유치에 나선 것은 타사와 차별화하기 위한 목적이다. 배민프레시에 가장 먼저 입점한 맛집은 서울 서대문구의 한옥집이다. 한옥집은 조성우 배민프레시 대표가 ‘삼고초려’한 끝에 지난해 5월 유치한 맛집이다. 조 대표는 한옥집의 김치찜을 먹다가 “이 음식은 반드시 배민프레시 반찬 메뉴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라 막무가내로 한옥집 대표를 설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배민프레시는 한옥집 김치찜을 유치한 이후 10개월이 된 현재까지 7만인분 이상을 판매했다고 밝혔다.

배민프레시는 이후 부처스컷, 김판조닭강정, 락희옥 등을 유치해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고 있다. 김봉진 사장과 조성우 대표 등이 수시로 전국 맛집 탐방을 다니며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다.

음식점들은 레시피 제공에 부담을 느껴 배민 측의 제안을 쉽게 수락할 수 없었다고 설명한다. 또 배민프레시 공장에서 생산한 요리의 맛이 본점 맛과 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본점 이미지만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배민프레시 관계자는 “단순히 레시피 공유만으로는 그 맛이 나오지 않는다”면서 “해당 음식점 대표와 수석 셰프가 만족할 때까지 몇 차례 검수하고 점검한 과정을 거친 후 고객 판매 여부를 결정한다”고 했다.

배민프레시가 판매 중인 한옥집 음식들.

◆ 카카오 등 경쟁사 범람…배민 측 “맛으로 승부”

배민프레시는 지난해 15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 매출 목표는 350억~400억원으로 잡았다. 올 하반기부터는 월 기준으로 흑자 전환할 것으로 예상된다.

모회사 배달의민족(법인명 우아한형제들)은 지난해 800억원가량의 매출에 소폭 흑자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는 탄탄대로를 밟고 있지만 ‘메신저 공룡’ 카카오의 음식 배달 시장 진출이 위기 요인으로 지목된다. 일부에서는 카카오뿐 아니라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는 O2O(Online to Offline·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연계) 업체가 너무 많아져 과열 경쟁이 우려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배민프레시 또한 11번가의 헬로네이처, 티켓몬스터의 슈퍼마트, 위메프의 신선생, 마켓컬리 등 경쟁사가 많아진 상황이다.

이에 대해 배민 측은 소비자 중심의 경영으로 경쟁력을 입증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배민프레시 최고운영책임자(COO) 이진호 이사는 “고객들이 앱을 더욱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개선하고, 소문난 맛집이나 반찬가게를 계속 발굴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