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중구 보수동에는 1969년 지어진 A아파트가 있다. 지난 21일 찾은 이곳엔 각 동 출입구마다 '재난위험시설(D등급) 지정 안내'라고 적힌 노란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복도 창문은 창틀이 어그러져 닫히지 않았고, 복도 끝 구석은 곳곳에 금이 가 '출입 금지'라고 쓴 노란 테이프로 통행을 못 하게 막아놓았다. 천장이 내려앉을까 봐 녹슨 쇠파이프를 지지대 삼아 받쳐놓았지만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집에 화장실이 없어 층마다 있는 공용 화장실을 16가구가 함께 쓴다. 한 집 건너 한 집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공가(空家)였고, 주민들 대부분은 70대 이상 노인이었다. 5층짜리 5개 동(棟)에 430여 가구가 살며 대부분 30㎡ 이하 소규모 가구다. 부동산 거래는 전혀 없고, 주민들은 전세 1000만원 또는 월세 7만원을 내고 이곳에 기거한다. 40년째 이곳에 산다는 79세 한 할머니는 "주민이 세상을 떠나거나 이사하면 그대로 빈집이 된다"며 "갈 데가 없어 살긴 하지만 언제 무너질지 몰라 하루하루가 불안하다"고 말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 인근의 한 아파트. 단지 내 공터에 산처럼 쌓인 폐가구와 쓰레기가 눈에 띈다. 창문이 없거나 깨진 집이 보이고 외벽 곳곳에서 콘크리트 덩어리가 떨어져 내린다.

전국 노후 아파트가 '슬럼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울 강남 등 일부 지역의 노후 아파트는 재건축 사업이 진행되면서 아파트값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지만, 사업성이 낮은 지역에선 안전 진단에서 '위험' 판정을 받고도 방치된 단지가 대부분이다.

부산 보수동 A아파트 역시 노후 주택이 밀집한 '달동네' 꼭대기에 있어 건설사들이 재건축 사업지로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부산 중구청 담당자는 "40~50년 된 노후 아파트 주민들은 재건축 조합을 만들어도 건설사들이 관심이 없고, 이사를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 가는 저소득층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15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지은 지 30년이 넘은 아파트가 전국에 49만9548가구, 40년 이상은 3만2494가구에 달한다. 문제는 이런 노후 아파트들이 조만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데 있다. 2025년엔 30년 이상 아파트가 320만 가구, 40년 이상 아파트가 40만 가구를 넘어선다.

이런 노후 아파트 문제는 고령화와 맞닿아 있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아파트 노후화와 거주자 고령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관리 부실로 슬럼화되는 '한계(限界) 아파트'가 쏟아지고 있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지은 지 40년 넘은 노후 아파트가 2014년 43만 가구에서 2034년엔 277만 가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노후 아파트가 제대로 관리가 되질 않아 슬럼화하면 빈집이 늘고 범죄 위험이 커진다"면서 "수도권은 사정이 그나마 낫지만, 지방 구도심 아파트는 대책 없이 노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