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이 정부부처 장관들의 활동과 지출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법이 시행된지 지난 28일로 6개월이 지났지만 업무추진비 지출이 크게 늘거나 줄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제부처에서 업무추진비를 가장 많이 쓴 장관은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었고, 건당 사용 금액도 주 장관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조선비즈가 고용노동부, 공정거래위원회, 국토교통부,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 농림축산식품부, 미래창조과학부, 보건복지부, 산업통상자원부, 해양수산부 등 경제부처 10곳의 지난해 장관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을 분석한 결과다.

◆ 산업부장관 업추비 금융위원장보다 두 배 써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장관 업무추진비로 총 9425만원을 집행했다. 업무추진비는 부처내를 비롯해 유관기관, 정치권, 언론 등과 업무협의를 할 때 사용하는 예산이다. 식대로 쓰이는 경우가 많으며 체육대회 등 행사의 경비로도 쓸 수 있다. 유흥업종, 위생업종, 사행업종, 레저업종 등에서는 쓸 수 없다. 공휴일이나 23시 이후에도 원칙적으로 쓸 수 없다.

산업부에 이어 업무추진비 집행이 많았던 곳은 농림축산식품부였다.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이동필 전 장관에 이어 지난해 9월부터 김재수 장관이 맡고 있다. 농식품부는 지난해 9305만원의 장관 업무추진비를 집행했다.

이어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과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은 지난해 각각 8426만원과 8293만원의 업무추진비를 썼고,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은 각각 7627만원과 7160만원을 업무추진비로 지출했다.

이 밖에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과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은 각각 6400만원과 6256만원을 썼고,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10개부처 중 가장 적은 4534만원을 업무추진비로 집행했다. 주형환 장관의 절반도 쓰지 않은 셈이다. 10개 부처의 평균 지출액은 7224만원이었다. 장관들이 월 평균 600만원 정도를 업무추진비로 쓴 셈이다.

업무추진비 집행액을 총 사용 건수로 나눈 건당 사용금액도 산업부가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부장관은 총 235건을 집행하며 건당 평균 40만원을 썼다. 사용 내역은 각종 현안과 관련된 회의, 유관기관 및 언론과의 업무협의, 부서 직원 격려 등으로 다양했다.

이어 금융위원장(37만2000원)과 기획재정부장관(35만5000원), 공정거래위원장(31만1000원) 등의 평균지출액이 30만원대였고 나머지 부처는 모두 건당 20만원대를 지출했다. 건당 지출액이 가장 적은 부처는 미래창조과학부(23만3000원)였다.

50만원 넘는 지출 거의 없어… 편법 지출 의혹도

업무추진비를 가장 빨리 공개한 곳은 금융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였다. 이들은 올해 2월 업무추진비 현황까지 공개한 상태다. 반면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0월 이후 장관의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을 아직 공개하지 않았다.

업무추진비를 가장 자세히 공개한 곳은 보건복지부였다. 대부분 부처가 사용 날짜와 '주요정책 추진 논의 간담회' 등 추상적인 사용내역, 금액만 공개한 것과 달리 복지부는 사용처의 상호까지 공개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지출한 곳의 상호 대신 업종까지 공개하기도 했다.
장관들의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에서 50만원 이상 지출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상대방의 소속과 상대방을 기재하도록 규정돼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대신 50만원에 근접한 금액으로 처리한 것이 다수 발견됐는데 짜맞춘 듯한 인상을 주는 지출건도 여럿 눈에 띄었다. 예를 들어 A 장관은 작년 1월 업무추진비를 22건 집행하며 47만원 3건, 49만원 2건 등을 결제했다. 업무추진비 사용은 50만원 이하로 맞추고 일부는 다른 방법으로 결제했을 가능성이 있는 지출들이다. B 장관은 열흘도 안 되는 기간에 48만7000원이라는 금액을 세 번 결제하기도 했다.

주요 정책이 몰린 달에 업무추진비 사용이 커지는 경향도 있었다. 기재부장관의 경우 2017년 예산안 통과를 위한 국회 협의와 2017년 경제정책방향 수립 등 굵직한 업무가 몰린 연말에 이들 업무와 관련된 업무추진비 지출 증가로 전체 지출이 크게 늘었다. 기재부장관은 10월까지 평균 550여만원의 업무추진비를 썼지만 11월과 12월에는 각각 1034만원과 813만원의 업무추진비를 썼다.

이 밖에 산업통상자원부는 작년 상반기까지 경조화환을 장관 업무추진비로 처리하다 7월부터 중단한 것이 눈에 띈다.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은 업무추진비의 절반 이상을 ‘직원 격려’ 명목으로 썼다.

기재부 한 관계자는 “김영란법이 생기기 이전에도 공무원의 업무추진비 사용 규정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었다”면서 “기존에 규정을 지켰던 공무원은 별다른 변화를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식사에 참여한 인원 수를 늘리거나 식사 금액을 분할해 결제하는 등의 편법을 쓰는 경우도 여전히 있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