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만원을 주식으로 굴리고 있는 회사원 이모(34)씨는 지난 1월 이용하고 있던 증권사 HTS(홈트레이딩시스템)에서 '관심종목'을 모두 교체했다. 다름 아닌 '대선 테마주'에 투자하기 위해서였다.

인터넷을 뒤져 문재인 테마주, 반기문 테마주 등 후보별로 종목을 정리해 놓고 매일 수시로 들여다봤다. 이씨는 "가치투자네, 장기투자네 해서 추천받아 들어간 종목들은 이미 박살이 난 상태고, 삼성전자처럼 덩치 큰 종목은 들어갈 엄두가 안 난다"면서 "대선 여론조사 결과나 정치인들의 출마 선언이 나올 때마다 출렁거리는 대선 테마주로 돈 좀 벌어보자 싶었다"고 했다.

이씨는 대선 여론조사 관련 지라시(사설 정보지)를 구해서 보고 지지율이 오른 후보 관련주를 다음 날 오전에 사들이는 식으로 대선 테마주 투자를 시작했다. 마침 한창 뜨고 있던 안희정 충남지사 관련주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좀체 수익을 낼 수가 없었다. 장 초반부터 7~8% 상승으로 시작한 종목에 뒤늦게 올라타고 나면 결국 장 막판엔 상승 폭이 줄어 4~5% 상승에 그치기 일쑤였다. 대선 지지율에 따라 주가가 춤을 추니 급등락이 다반사였다. 이씨는 "막상 투자를 하고나면 생각만큼 안 올랐고, 덜컥 겁이 나 4~5% 손해 본 채 팔고 나면 며칠 뒤 급등해 있는 경우가 많아 분통이 터졌다"고 했다. 그렇게 실패만 반복한 끝에 이씨는 결국 한 달여 만에 20% 넘는 손해를 보고 대선 테마주 투자를 접었다.

장미 대선에 들썩이는 대선 테마주… 5년마다 돌아오는 로또판

일부 투자자들 사이에선 '5년에 한 번 오는 로또'라고도 불리는 대선 테마주가 대선을 40여일 앞둔 요즘도 여지없이 들썩거리고 있다. 기존 대권 주자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쪽은 문재인 전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테마주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국민의 당은 안철수 전 대표, 바른정당은 유승민, 남경필 의원, 자유한국당에서는 홍준표 경남지사와 김진태 의원까지 테마주로 등장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이 깊은 우리들병원으로 인해 문재인 테마주로 분류된 우리들제약은 지난 대선 이후 4년여 만에 다시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대표적인 안철수 테마주인 안랩 주가는 연초 대비 120% 넘게 급등했다.

테마주라지만, 대선 후보와 실제 어떤 인연이 있나 들여다보면 황당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남 밀양에 땅을 갖고 있는 세우글로벌은 홍준표 경남지사와 유승민 의원이 영남권 신공항 후보지로 밀양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홍준표·유승민 관련주로 불렸다. 또 서울제약은 김진태 의원의 고교(춘천 성수고) 동문이 대표라는 이유에서 김진태 관련주로 묶였다. 세우글로벌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달 15일, 서울제약은 김진태 의원이 출마를 선언한 14일 20% 넘는 급등세를 보였다.

과대포장된 주가… 수익률 급락 일쑤

문제는 롤러코스터처럼 주가가 급등락하니 큰 손실을 입기 일쑤라는 점이다. 반기문 테마주가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달 초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돌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관련 테마주가 줄줄이 폭락했다. 당일 시간외 거래에서 매도 물량이 쏟아졌고, 이튿날엔 바로 하한가로 곤두박질쳤다.

회사의 한 임원이 반 전 총장과 함께 국제회의를 개최했다는 이유로 반기문 테마주로 묶였던 성문전자는 올 초 1만원대였던 주가가 현재 2800원대로 70% 넘게 폭락했다. 또 다른 반기문 테마주인 한창도 같은 기간 6000원대에서 1900원대로 고꾸라졌다. 반면 반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과 동시에 안희정·유승민 테마주가 급등했다. 최근 주가가 급등락한 기업들은 오히려 당황하며 "우리는 대선 주자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해명 공시를 내놓는 판이다.

실제 대선 테마주는 실적과 무관하게 주가가 올라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최근 대선 테마주로 언급된 종목 82개 중 23개 기업은 지난해 영업손실을 봤고, 전년 대비 영업이익이 감소한 곳도 25개에 달했다. 영업손실을 냈거나 영업이익이 줄어든 기업이 10곳 중 6곳(59%)이란 얘기다. 한국거래소가 작년 9월부터 11월까지 정치 테마주 16개 종목을 분석한 결과, 개인투자자 10명 중 7명은 손해를 봤다.

전문가들 "테마주는 '거품주', 쳐다보지도 말라"

대선 테마주는 이른바 '작전 세력'의 단골 먹잇감이다. 인터넷 증권 방송 등을 통해 엉뚱한 종목을 대선 테마주로 지목하고 각종 거짓 정보를 퍼뜨려 테마주를 만드는 식이다.

이런 증시 교란 등을 막기 위해 금융 당국은 최근 150개 종목을 대선 테마주로 분류하고 집중 감시하기로 했다. 국내 상장 기업 약 2000개 가운데 약 7.5%를 테마주로 분류했다. 금융 당국은 작전 세력 개입, 주가 조작 여부를 집중 감시하면서 이상 징후가 보이면 해당 종목을 공개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테마주는 실적과 무관한 '거품주'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지기호 케이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테마주는 거품을 사는 투기"라며 "대선이 임박한 가운데 이미 상당수 테마주들의 가격이 올라있는 상태인 데다 결국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주가가 급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아예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