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추가 지원안을 놓고 시끄럽다. 4조2000억원 규모의 사실상 혈세를 지원한지 1년 반도 안 돼 또다시 2조8000억원의 자금을 넣어야 파산의 위기를 넘길 수 있다니 답답한 노릇이다. 이 기간에 출자전환까지 합치면 무려 13조원에 달하는 지원이 이뤄지는 것이다. 2015년 10월 4조2000억원을 지원할 당시 “추가 지원은 없다"고 장담했던 정부를 향해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이 당장 파산하면 59조원의 막대한 손실로 국민경제가 파탄날 것처럼 과장한 정부를 보면서 참담함을 느끼지만 부실기업 구조조정 결정 과정에서는 이른바 ‘도덕적 근본주의'도 경계해야 한다. 도덕적 근본주의는 경제 사회적 파장의 크기를 고려하지 않고 형평성 잣대로만 기업구조조정을 판단하려는 것을 일컫는다.

대우조선해양은 세계 1위의 선박 수주 잔량(지난해말 기준 114척)과 직원 5만명(사내협력사 포함), 금융권 익스포저 19조5000억원(은행대출 18조원, 회사채・기업어음 1조5000억원)을 지닌 공룡 조선사다. 이 회사가 파산하면 금융시장 혼란, 협력업체 연쇄 부도 등 경제적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가 한진해운을 죽여놓고서 대우조선해양은 살리기로 해 ‘이중잣대',‘대마불사' 논란이 또다시 일고 있으나 국민경제 차원에서 대우조선해양을 연착륙시켜야 한다는 호소를 꼼수로 폄훼할 일만은 아니다. 우리 모두 냉철해질 필요가 있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과 관련한 정부의 모호한 방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부실기업의 회생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너죽고 나살기식' 저가 수주(계약) 경쟁을 초래해 해당 산업 경쟁력을 악화시킨 건설 플랜트, 화학섬유 등 과거의 잘못된 구조조정의 전철을 밟지나 않을까 염려된다.

이런 문제점이 발생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번째는 채무만기연장, 금리감면, 출자전환, 신규자금 등 채권단의 수혈로 연명하는 부실기업은 필연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저가수주에 나서게 된다. 이로 인해 기업들간 저가수주 경쟁이 격화되면 멀쩡한 기업까지 출혈경쟁으로 부실화하는 악순환의 수렁에 빠져들 수 있다. 과거의 사례를 보면 부실기업 구조조정이 성공하는 것과 해당 산업이 살아나는 것은 별개의 사안인 경우가 허다했다.

대우조선해양 추가 지원안이 나오자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이 일제히 저가수주 후폭풍을 우려한 것은 결코 엄살이 아니다. 중국, 일본과 경쟁하기도 벅찬 상황에서 우리끼리 피터지게 싸우는 설상가상의 상황이 되면 수주절벽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조선산업이 더 어려운 국면을 맞을 수 있다.

특히 조선, 건설 등 이른바 수주산업에 있어 저가수주 출혈경쟁의 폐해는 남다르다. 한번 매겨진 최저 수주가격이 그 이후로는 시장가격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선업체들의 경영난으로 저가수주의 유혹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할 수밖에 없다. 조선사들은 해양플랜트 사업에서 저가 출혈경쟁을 벌이면서 작금의 부실사태를 낳는 뼈아픈 경험도 했다. 그나마 채권단이 해양금융종합센터를 통해 조선 3사의 수주 내용을 검토해 저가수주에 따른 부실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힌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가시지 않고 있다.

두번째는 채권단의 관심이 금융회사 특성상 온통 꿔준 돈을 받는 데 있다는 점이다. 채권단이 산업 경쟁력까지 고려해 기업을 구조조정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애당초 무리다. 자신의 채권만 회수할 수 있다면 저가수주 경쟁이 벌어지든, 경쟁사가 부실화되든 크게 상관하지 않았던 게 금융회사들이다. 금융당국도 채권금융회사의 건전성 감독에만 치중해왔지 부처 특성상 산업경쟁력은 안중에 별로 없었다.

정부는 이번 구조조정방안에서 대우조선해양을 정상화한 뒤 M&A(인수합병)를 통해 주인찾기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선업의 장기불황을 감안하면 대우조선해양 정상화 시점도 가늠하기 어려울뿐더러 M&A야말로 요원한 일일 수 있다. 조선사 빅3의 빅2 체제 전환을 검토하겠다는 정부의 발표가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더군다나 오는 5월이면 새 정부가 들어선다. 정부 정책의 연속성이 이어질지도 불투명하다.

단기간에 조선업이 호황기로 접어드는 요행이 아니고서는 저성장 뉴노멀 시대에 빅3 체제와 조선산업 경쟁력이 양립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조선업 전체 구조조정(구조개편)이라는 큰 틀에서 대우조선해양의 구조조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방향성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구조조정은 대우조선해양의 연착륙을 넘어 조선산업 살리기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대우조선해양의 사업장별 분리를 통한 매각 등 특단의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이 대승적인 차원에서 협력해야 하는 상황도 올 수 있다. 핵심 인력과 기술 유출을 막는 대책도 강구해야 한다. 대우조선해양 노사는 고통 분담을 솔선수범해야 한다.

기업(산업) 구조조정에서는 ‘혼자 살려고 하면 모두 죽고, 죽기를 각오하면 모두 산다’는 뜻의 ‘생즉사 사즉생(生則死 死則生)’의 법칙이 통한다고 한다. 20년 이상 세계 조선시장을 호령한 대한민국 조선산업을 원래 자리로 되돌려놓기 위해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