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종 컴퓨팅 기술로 또 한번 도약 예고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무려 35조원이나 주고 산 ARM이 또한번 일을 낼 지 주목됩니다.

이 회사가 지난 21일(현지시간) 신기술 '다이내믹(DynamIQ)' 기술을 발표하면서 전 세계 IT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기술 덕분에 2~3년 내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작은 칩의 연산 능력이 50배 이상 향상될 것으로 관측됩니다.

영국의 반도체 설계 지적재산권(IP) 기업인 ARM은 모바일 프로세서 칩 설계 디자인과 특허를 판매하면서 스마트폰 칩 시장을 석권했습니다. 아이폰, 갤럭시 등 스마트폰의 두뇌 격인 모바일 애플리케션프로세서(AP)는 사실상 모두 ARM이 코어(Core) 설계를 바탕으로 한 제품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애플, 퀄컴, 삼성전자 등 대부분의 회사가 ARM으로부터 천문학적인 사용료를 내고 칩 설계 디자인을 구매하죠.

ARM의 모기업인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

ARM은 이번에 선보인 다이내믹 기술로 데이터센터 정도 운영해야 가능했던 고도의 인공지능(AI) 서비스를 손안의 PC인 스마트폰에서도 구현할 수 있게 됐다며 호언장담하고 있습니다. ARM의 다이내믹 IP를 구매하는 애플, 퀄컴, 삼성전자, 화웨이 등 글로벌 기업들이 인공지능(AI) 구현이 가능한 칩셋을 자유자재로 설계해 판매하거나 이를 토대로 제품을 설계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지요.

◆ 이기종 컴퓨팅, 마이크로프로세서의 한계 돌파한다

현재 컴퓨터의 운용 방식은 생각보다 비효율적입니다. 컴퓨터 구동의 핵심인 반도체 구성요소를 살펴보면, 하나의 중앙처리장치(CPU) 섹터를 컨트롤타워로 두고 그 주변에 그래픽처리장치(GPU), D램, 스토리지 등이 수직적 명령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스포츠로 비유를 하자면, 한 명의 스타플레이어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원맨팀(one man team)'인 셈입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시대에 들어서면서 하나의 CPU 섹터에 데이터 연산을 전적으로 의존해야하는 ‘원맨팀’ 컴퓨팅 기술은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수많은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이기종 컴퓨팅(Heterogeneous Computing) 기술을 끊임없이 연구해왔습니다.

이기종 컴퓨팅은 기존의 수직적 명령 관계를 가진 CPU를 병렬로 활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컴퓨팅 기술의 혁신으로 불립니다.

가령 사람의 뇌는 서로 다른 2개의 반구(좌뇌와 우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좌뇌는 논리적인 정보, 우뇌는 창의적인 생각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두 반구는 함께 작용하면서도 또 각각 정보를 다르게 처리합니다. 좌뇌와 우뇌가 더 유기적으로 연결돼 효율적으로 작용한다면, 훨씬 더 빠르고 수월하게 정보를 처리할 것은 자명합니다.

ARM이 21일 공개한 새로운 이기종 컴퓨팅 기술 ‘다이내믹’((DynamIQ).

이기종 컴퓨팅이란 바로 이같은 ‘병렬 연결’의 논리를 마이크로프로세서에 적용한 것입니다. 기본적인 논리 연산 과정을 맡는 CPU와 더 창의적이고 고난이도 작업에 특화한 GPU를 유기적으로 혼용해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고성능 CPU와 중간 성능의 CPU, 저성능 CPU를 연결해 더 효율적인 방식으로 컴퓨터를 구성하는 것도 가능해집니다. 원맨팀이 아니라 쓰리맨팀(three men team), 포맨팀(four men team)이 되는 셈이죠.

◆ARM의 도약과 함께 다가올 AI '춘추전국시대'

그동안 이기종 컴퓨팅 기술은 인텔의 라이벌 회사인 AMD를 중심으로 이뤄져 왔습니다. 이기종 컴퓨팅 기술 표준화를 위한 연합인 HSA(Heterogeneous System Architecture)도 AMD 주도로 퀄컴, ARM, 삼성전자, 오라클, 미디어텍 등의 대형 기업이 따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10여년간 AMD가 실적 부진에 허덕이며 관련 연구개발(R&D)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ARM이 데이터센터에서나 가능했던 이기종 컴퓨팅 파워를 모바일기기로도 구현할 수 있는 ‘다이나믹’ 기술을 들고 나왔습니다. 지난 2011년 ARM이 공개한 빅리틀(big.LITTLE) 설계 방식이 이기종 컴퓨팅의 ‘시조새’ 격입니다. ARM은 빅리틀 설계 방식으로 옥타코어(Octa-Core: 8개의 코어로 운영되는 프로세서)’를 만들어 스마트폰의 성능을 고도화했습니다.

이번에 ARM이 공개한 다이내믹 기술은 그동안 고성능·저전력 두 가지로 기능을 나눠 운용했던 빅리틀 설계를 고도화해 8개의 코어가 각각 최적화된 일을 세분화해 수행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또 프로세서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가속기(GPU) 추가 공간도 마련했습니다.

그동안 전력 효율성에 특화한 칩 설계를 주력으로 삼아왔던 ARM이 이기종 컴퓨팅 기술을 활용한 고성능 칩 설계 IP를 판매하면, 애플, 퀄컴, 삼성전자 등은 인공지능 기기 등 새로운 전자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는 전자·IT 생태계의 확장을 의미합니다.

ARM의 기술 확장에 대한 우려도 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고객사를 대상으로 '박리다매'식으로 사업을 해온 ARM이 이기종 컴퓨팅 설계와 함께 라이선스 가격을 크게 올린다면, 이를 구매하는기업 입장에서도 부담이 커집니다.

특히 삼성은 모바일 AP 사업뿐만 아니라 자동차용 프로세서, 바이오 프로세서, IoT용 프로세서 등 대부분의 시스템 반도체 사업 분야에서 ARM의 설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ARM을 포함한 해외 기업에 대한 특허 사용이 많아지면서 삼성전자의 기술사용액은 최근 3년간 2배 이상 증가해 4조~5조원에 달합니다.

소프트뱅크는 2016년 7월 무려 주당 43%의 프리미엄을 주고 주당 17파운드에 ARM 주식을 사들였습니다. 소프트뱅크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M&A)였죠. ARM이 다이내믹 기술로 스마트폰 칩에 이어 인공지능 칩까지 장악하며 손정의의 베팅이 옳았음을 입증하게 될까요. 이번에 나온 이기종 컴퓨팅 기술의 파급 효과가 얼마나 될 지 궁금해집니다.